[문화] 국립중앙박물관 유료화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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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논설위원

지난달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내년 이후 유료화 추진 방침을 밝히면서 그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무료화될 당시, 반대 측의 걱정은 수입 감소보다 ‘문화유산에 관심 없는 이들까지 공짜인 박물관을 놀이터 삼아 결국 진지한 관람객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었다. 기자 역시 이러한 걱정이 컸다. 시민의 문화 향유와 교육 기회를 위해 입장료가 비싸서는 안 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안 된다고 주변에 주장하곤 했다.

경제학적으로 박물관은 순수 공공재가 아니라 ‘준(準)공공재’ 혹은 ‘혼잡 공공재’다. 순수 공공재는 마치 가로등 불빛처럼 누구나 공짜로 이용하는 걸 막을 수 없고(비배제성) 누군가 이용한다고 소모되거나 다른 사람이 못 이용하는 게 아닌(비경합성) 재화를 가리킨다. 박물관 문화유산은 많이 본다고 닳지 않지만, 루브르의 ‘모나리자’처럼 인파가 몰리면 관람 기회가 줄어 경합성 혹은 혼잡이 발생한다. 입장료는 적절한 배제로 이러한 혼잡의 비용을 줄이는 수단이 된다.

무료화 전환 후 관객 크게 증가
관객 데이터 없는 점은 문제
“돈 내야 더 열심히 관람” 의견도
지방 공공박물관 등 예의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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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람객으로 붐비고 있다. 올해 누적 관람객 수가 지난 10월 15일 500만 명을 돌파했다. 연간 관람객이 500만 명을 넘은 것은 개관 이후 처음이다. [연합뉴스]

그러나 기자의 ‘박물관 유료주의’는 런던 유학 시절 흔들렸다. 런던은 국공립 뮤지엄이 모두 무료다.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은 약탈 의혹 문화유산이 많으니 속죄의 의미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약탈 의혹과 상관없는 미술관들, 가령 서양미술의 보물창고인 내셔널갤러리, 발전소를 개조한 현대미술관으로서 세계적인 ‘핫 스팟’이 된 테이트 모던도 상설전은 무료이며 특별전만 유료이다.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은 요금 구조다.

기자는 이들 미술관을 사나흘에 한 번씩 찾아 꼼꼼히 보며 공부하고 즐겼다. 특정 시간대와 구역을 제외하면 혼잡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길에 불쑥 들어가 특히 좋아하는 작품만 보고 힐링하는 일도 있었다. 무료였기에 가능한 경험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국 문화예술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런던에 호감이 증가했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긍정적 외부효과’가 컸던 것이다.

무료화 영국, 국가 이미지 높였지만 재유료화 목소리 나오기도
영국이 2001년 파격적으로 국공립 뮤지엄을 무료화한 것은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멋진 영국)’ 슬로건을 내걸고 문화산업을 통해 국가 경쟁력 제고를 추진하면서였다. 그 결과, 영국은 ‘낡은 제국’에서 ‘포용적 문화 강국’으로 이미지 전환에 성공했고 런던은 현대미술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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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관광객 급증 이후 영국 내에서도 유료화 주장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일본 등 여러 국가의 대표 뮤지엄은 대부분 유료이며, 미국도 수도 워싱턴 DC의 국공립 뮤지엄들은 모두 무료지만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2018년부터 유료로 전환했다. 〈표 참조〉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국립중앙박물관 유료화는 찬반 입장을 정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다. 유홍준 관장은 기자의 이런 의견에 대해 “과밀 억제를 위해 유료화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화유산은 많은 사람이 볼수록 좋은 것이며 그것은 박물관 규모와 역량을 늘려서 해결할 문제”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유 관장은 유료화의 핵심은 “문화 향유에 돈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들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어마어마한 문화유산을 무료로 보니까 사람들이 좋은 기획전에 돈 몇천 원 내는 것도 아까워하고 다른 박물관·미술관도 다 무료이길 바랍니다. 이걸 바꿔야 합니다.”

이것은 행동경제학에서 사람들이 대가를 지불했을 때 그 대상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심리와도 연결된다. 문화유산·예술 관람에 적절한 대가를 지불해야 그 대상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 관람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도 “문화예술은 공공자산으로서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지만, 향유하려면 최소한의 자본주의적 기여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있어야 한다”며 “무상 권리로만 인식하면 자칫 공급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산을 포함해 지자체 운영 박물관·미술관들이 현재는 대부분 무료이지만, 관장들이 유료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무료 정책의 장단점이 있다. 사람들이 우리 미술관에 호감을 표하는 소셜미디어 글에 ‘좋은 전시인데 무료’라는 언급이 특히 많다”며 “반면에 무료의 단점은 발권 과정이 없어 관람객 분석이 안 되고 그런 분석에 기초한 관람객 서비스 향상이 어렵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홍준 관장도 관람객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료화를 결정하기 전에 일단 내년에 무료 예약 및 현장 발권 시스템을 도입해서 관람객 수 및 연령·성별·국적 분포 등을 정확히 파악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결정은 각 지자체 미술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전망했다.

이례적으로 인터넷 여론이 유료화에 호의적
흥미롭게도 뉴스 댓글과 소셜미디어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유료화 찬성이 좀 더 우세하다. 일반적으로 여론이 공공서비스 유료화에 부정적인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이러한 분위기면 유료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 다만 몇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첫째, 소셜미디어에 ‘외국인은 세금을 내지 않으니 더 높은 입장료를 적용하자’는 주장이 많이 보이지만 이는 위험하다. 유네스코 협약이 말하듯 문화유산은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게다가 한국은 영국의 ‘쿨 브리타니아’ 정책처럼 K컬처로 국가 경쟁력 제고를 추진하는 시점인데 이때 내외국인 입장료 차등 정책은 국가 이미지와 관광산업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외국 관광객 비중은 3.7%밖에 되지 않는다. 유홍준 관장 역시 “(내외국인 요금에 차등을 두면) 세계적으로 망신당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둘째, 박물관을 연구 목적 등으로 자주 찾는 이들을 위해서는 연간 이용권 등 제도를 통해 유료화가 큰 경제적 부담이 되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료화는 양날의 검이다. 그것이 박물관 역량을 높이고 국민의 문화 향유를 더욱 풍요롭게 하며 국가 브랜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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