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지 귀여워서가 아니다"…미피가 건드린 MZ '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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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경북 경주시에 있는 미피스토어 한정 상품 '찰보리빵 에디션'이 품절된 모습. 사진 이유리씨 제공
지난달 초, 경북 경주시의 토끼 인형 매장 ‘미피스토어’를 찾은 직장인 이유리(28)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인기라길래 들렀을 뿐인데, ‘경주 한정판’인 찰보리빵 에디션 굿즈가 전부 품절이었거든요. 이씨는 “서울에서도 미피 굿즈를 쉽게 살 수 있지만, 경주에서만 파는 인형 제품이 너무 귀여워서 사고 싶었다”며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죠. 실제로 경주를 비롯한 제주·부산에 있는 미피 카페와 스토어 등 매장은 ‘오픈런’이 일상입니다. 지난 추석 연휴 무렵 문을 연 서울 성수동 미피스토어 역시 공식 오픈 공지나 지도 등록 없이도 수십 미터 대기 줄이 늘어섰죠.

미피 굿즈 구매 인증 관련 SNS 콘텐트. 인스타그램, 유튜브 캡처
네덜란드 작가 딕 브루너가 미피 캐릭터를 선보인 건 70년 전. 그래서 이 새삼스러운 인기가 더 눈길이 갑니다. 지금 한국의 20·30세대에게 미피는 단순한 토끼 인형이 아니아 ‘귀여움의 교과서’로 통합니다. 일종의 ‘감성 오브제’로 재해석된 거죠. 인스타그램 ‘#미피’ 해시태그는 18만 개를 넘어섰고, 대부분이 지역 한정판 인증샷이나 ‘가챠깡’(캡슐토이 개봉 영상) 같은 소비 인증 콘텐트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단순한 ‘키덜트’ 열풍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어른들이 캐릭터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지 귀여워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거죠. 감정이 하나의 소비 대상이 된 시대, 비크닉은 왜 지금 ‘미피’ 같은 캐릭터 굿즈의 힘이 더 세졌는지, 그 이면의 감정 소비 구조를 들여다봤습니다.
로컬리즘 입혔더니 감정 소비 이끌었다

미피카페 부산에서 판매되는 미피 부산 에디션 인형 키링 상품들. 신기산업
미피가 한국에서 새롭게 읽히는 핵심은 글로벌 지식재산권(IP)에 ‘로컬 감성 입히기’에 있습니다. 청자·자개·달빛 같은 한국적 소재가 미피 세계관과 만나 ‘반가사유상 미피’, ‘석굴암 미피’ 같은 전례 없는 조합을 만들었죠. 그 결과, 지역마다 출시되는 로컬 에디션은 매번 품절되고 재입고를 기다리는 풍경이 반복됩니다.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미니멀한 디자인에 지역의 서사와 정서가 담긴 ‘희귀한 아이템’으로 소비되고 있는 겁니다.
국내 라이선스를 맡은 서울머천다이징컴퍼니(SMC)는 “지역의 상징을 미피의 언어로 번역한다”고 표현했습니다. 현장 구현은 스토어·제조 파트너인 신기산업, 콘셉트 기획 파트너인 썸니즈가 맡고 있는데요, 이성민 신기산업 대표는 “로컬 에디션은 ‘그 장소가 주는 감정’을 미피의 세계로 옮기는 과정”이라며 “굿즈숍이 아니라 귀여움이 체험되는 구조로 공간을 설계한다”고 설명했어요. 실제로 ‘자갈치 시장 미피’(부산) ‘석굴암 미피’(경주)처럼 지역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반영한 상품은 이름만으로도 소비자 공감을 얻고 있죠.

최근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미피스토어 서울 전경. 서울의 감성에 초점을 맞춘 외관 디자인이다. 김세린
미피의 로컬 전략은 전통의 무게보다 감정의 결에 집중한다는 겁니다. 소비자는 특정 지역의 정서를 ‘소장’하는 경험을 하게 되죠. 거제는 몽돌의 질감으로, 부산은 여름의 활기로, 경주는 고요한 돌의 온기로 표현됩니다. 성수 미피스토어에서는 ‘워커 미피’, ‘데님 미피’ 같은 도시형 감성의 신제품이 준비 중입니다. 이 대표는 “아이의 눈높이와 어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도록 조명과 소재를 통일해, 시각의 귀여움이 감정으로 이어지게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인형 키링, 감정을 휴대하는 최소 단위

서울 성수동 미피스토어에서 인기 제품(구운 미피) 인형 키링을 둘러보고 있는 방문객. 김세린
여기에 ‘인형 키링(열쇠고리)’ 열풍도 인기에 한몫 합니다. 가방이나 휴대폰 어디든 달 수 있는 작은 오브제 하나로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지난 10월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6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2.9%가 “주변에서 키링을 자주 본다”고 답했고, 절반 가까이(48.8%)가 최근 6개월 내 구매 경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여성과 10~20대일수록 보유량과 착용 빈도가 높게 나타났죠.
키링을 착용하는 이유로는 “기분이 좋아진다”(60.9%), “작은 위안을 준다”(52.4%)는 응답이 가장 높았는데요. 인형과 굿즈를 다루는 인스타그램을 운영 중인 대학생 김세영(24)씨는 “키링은 가방에 달고, 잠깐 보는 행위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아이템이다. 작고 귀여워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환기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 작은 액세서리는 감정과 경험을 동시에 유통하는 감정 소비의 매개체가 된 셈입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키링은 나를 표현하는 동시에 나와 동반하는 물건”이라며 “귀여운 걸 달고 다닌다는 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자기위로·자기표현·타인과의 소통을 동시에 충족하는 행위”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최근 한정판 유행이 빠른 것도 ‘이슈를 함께 체험한다’는 감정적 만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덧붙였죠.
단순하지 않은 귀여움…‘감정 IP’의 시대

경주 미피스토어에서 판매되고 있는 로컬 에디션 상품 등을 구매한 모습. 사진 이유리씨 제공
왜 MZ세대는 ‘귀여움’에 반응할까요. 미피를 통해 보면, 단순하고 순한 얼굴, 말없이 정지한 표정에 번아웃된 세대가 마음을 투영하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석굴암 에디션을 보고 ‘인형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해운대 미피엔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다”며 “결국 소비자가 캐릭터 인형을 집어 들었을 때 받는 귀여움은 첫인상이고, 그 뒤에 남는 건 공감”이라고 말했어요. 이어 “우리가 말하는 귀여움은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하는 힘인데, 미피로 전하고 싶은 건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기분”이라며 “그러려면 캐릭터와 관련해 제품(키링·인형) → 공간(카페·스토어) → 콘텐트(SNS 인증)로 이어지는 체험 곡선의 모든 지점이 같은 감정 톤을 내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습니다.
또 젊은 세대는 귀여움을 통해 감정을 시각화하고, 위로받으며, 자기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소셜미디어(SNS) 시대엔 ‘귀여운 나의 세계’를 큐레이션 하는 행위 자체가 콘텐트가 되죠. 이 교수는 “귀여움은 자기 동일화의 언어이자,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의 감정 방패”라고 덧붙였어요. 결국 “귀엽다”는 말은 ‘이건 나 같다’는 자기 확인의 문장이고, ‘내 감정의 표면’을 드러내는 행위가 되는 셈이죠.

지역 정체성과 브랜드 정체성이 어우러진 국내 미피 공식 스토어의 모습. 신기산업
이제 캐릭터 IP는 감정 IP로 진화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정체성·위로·소속감을 설계하는 브랜드만이 살아남는 시대라는 뜻이죠. 미피처럼 로컬의 감정, 공간의 경험, SNS 확산을 한 줄로 엮은 감정 디자인 사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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