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배달왔어유~" 충남 고령화 1위 청양군의 '心부름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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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전 11시 충남 청양군 정산면 농협하나로마트. 신연옥씨가(57·여)가 카트를 끌고 마트 여기저기를 다니며 물건을 담았다. 카트에는 전날 주민이 구매를 요청한 설탕과 식초, 생수, 일회용 접시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담겨 있었다. 장보기를 마친 신씨는 차량에 물건을 싣고 인근 목면 신흥2리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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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5일 충남 청양군 지역활성화재단 직원 신연옥씨(왼쪽)가 농협하나로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왕복 2차선 국도와 시골 농로를 따라 도착한 곳은 정태곤씨(65·여) 집. 마트가 있는 정산면과 멀리 떨어진 데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정씨는 생필품이 필요할 때면 청양군 지역활성화재단에 연락해 구매를 신청한다. 보통 물건을 받기 하루 이틀 전 신청하면 이튿날 배달이 이뤄진다. 전달받은 물건과 마트 영수증을 꼼꼼히 확인한 정씨는 신용카드를 건넸고 신씨는 카드단말기를 통해 결제했다. 마트에서 구매한 가격 그대로였다. 오랜 왕래로 두 사람의 호칭은 ‘언니, 동생’이 됐다고 한다.

외진 마을 주민 대신해 물건 구입·배달

정씨는 “마을이 외진 곳이라 승용차가 아니고는 장을 보러 마트에 가기가 쉽지 않다”며 “전화 한 통화면 필요한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주니 주민 입장에서는 이보다 편한 서비스가 없다”고 말했다.

신씨를 비롯해 재단에 소속된 2명의 직원은 청양군 10개 읍·면을 두 개 지역으로 나눠 주민이 요청한 물건을 대신 구매한 뒤 배달까지 해준다. 청양군이 지난해 시작한 ‘주민 心부름꾼, 부르면 달려가유’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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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5일 청양군 지역활성화재단 직원 신연옥씨가 농협하나로마트에서 물건을 주민에게 전달한 뒤 품목을 확인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충남 청양군은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이 사업을 도입했다. 청양에 사는 주민이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물건을 주문할 수 있고 이를 대신 구매, 전달하는 맞춤형 서비스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 농사로 시간이 부족한 주민,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에 사는 주민을 위해 시작했다. 지난해 8~10월 3개 면(面)에서 시범 사업을 거쳐 11월부터는 전 지역으로 확대했다.

청양군, 시범운영 거쳐 전 지역으로 확산 

청양군은 인구 3만여 명 가운데 40%가 65세 이상이다. 고령화 비율이 충남지역 15개 시·군 가운데 가장 높다.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도 도시보다 열악해 읍내까지 나가려면 편도 1시간 30분이 넘게 걸리는 마을도 있다. 특히 노인들에게 농기구나 설탕과 소금, 생수 등 무거운 생필품을 구매한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집에 다녀갈 때 부모가 필요한 물건을 사다 주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물건이 당장 필요할 경우에는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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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충남 청양군이 시작한 '주민 心부름꾼, 부르면 달려가유' 사업. 청양에 사는 주민이면 누구나 전화 한 통화로 물건 구입과 가전 수리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사진 청양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게 心부름꾼 사업이다. 사업은 청양군 지역활성화재단이 수행한다. 주민 누구나 전화 한 통으로 서비스를 신청하면 지역 내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연계해 생필품 배송이나 가전제품 수리, 청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역활성화재단 직원이 물건을 구입할 때 먼저 결제한 뒤 배달 후 주민에게서 비용을 받는 구조다. 다만 배달이나 출장 수수료는 무료로 지원한다.

주민 10중 4명 노인…생활민원도 해결 

이 사업에는 청양 지역 17개 사회적 경제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모두 청양에 사업장을 둔 업체로 지역활성화재단과 협약을 체결한 뒤 주민이 필요한 물건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한다. 생활민원 해결부터 지역경제 선순환까지 ‘1석 2조’ 이상의 효과를 거둔다는 게 청양군의 설명이다. 온라인·모바일 앱과 오프라인 플랫폼을 병행,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어르신은 물론 젊은 세대까지 손쉽게 사업을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8~10월 석 달간 이뤄진 시범 운영 기간 107건(월평균 35건)에 불과했던 이용 건수는 올해 1~9월 1980건(월평균 220건)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농촌에서 필수품이 된 전동차(노인용) 수리 서비스도 증가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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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5일 청양군 지역활성화재단 직원 신연옥씨가 농협하나로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신연옥씨는 “물건을 배달해주는 것을 넘어 혼자 사는 노인이나 주민의 안부를 확인하고 민원도 대신 신청해주고 있다”며 “1인 가구, 노인이 많이 청양에서 가장 필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心부름꿈 사업에 대한 주민 만족도가 높아지자 청양군은 애초 올해 말까지 운영하려던 계획을 변경, 내년까지 1년 연장했다. 지난해 시범 사업부터 내년까지 투입하는 예산은 모두 5억6800만원이다. 이 돈은 정부가 지원한 지방소멸대응기금에서 마련했다.

김돈곤 청양군수 "새로운 행정서비스 모델" 

김돈곤 청양군수는 “심부름꾼 사업은 단순한 생활편의 제공이 아니라 주민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새로운 행정서비스 모델”이라며 “앞으로 주민 목소리를 더 세심하게 듣고 촘촘한 생활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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