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100년 전 파리행 기차표 사던 서울역, 문화·예술도 즐기는 대한민국 관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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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통일로 1. 어디인지 짐작 가나요. 바로 옛 서울역사의 주소입니다. 서울역은 우리 철도 역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곳이에요. 옛 서울역사는 2004년 고속철도(KTX) 개통에 따라 지금의 서울역사로 철도역 기능이 이관되기 전까지 100년에 걸쳐 큰 역할을 맡아왔죠. 현재는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로 활용 중인 옛 서울역사 준공 100주년을 맞아 소중 학생기자단이 서울역의 역할과 그 가치, 100년에 걸친 역사적 순간들을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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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로 활용 중인 옛 서울역사 준공 100주년을 맞아 서울역의 역할과 가치, 100년에 걸친 역사적 순간들을 짚어본 이주호(서울 아주초 5)·장이안(서울 사대부초 5)·박서현(인천 중산초 5·왼쪽부터) 학생기자.

1925년 준공된 옛 서울역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 중 하나예요. 옛 서울역사는 한국 철도의 시작과 그 역사(歷史)를 함께해 왔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1899년 9월 노량진역~인천역 구간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1900년 남대문역까지 진입해 경성~인천 전 구간을 개통했죠. 당시 목조로 설계된 역사(驛舍)를 남대문정거장이라고 불렀는데요. 이후 남대문역은 경성역으로 이름을 바꿨고, 1925년에는 일본이 대륙 침략과 식민 지배를 위해 설립한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유럽풍 건물로 새로 지은 경성역사가 문을 열었죠.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된 석재 혼합 벽돌조건물 본채와 3개의 승강장 및 부속동 등을 갖춘 연면적 총 1만7269㎡(약 5221평)의 건축물로, 일제강점기 당시 도쿄역에 이은 동양 제2역으로 꼽혔던 경성역은 해방 직후인 1946년 일제의 명칭인 경성부를 서울시로 바꿔 부르면서 1947년 공식적으로 서울역이 됐어요. 2004년 서울역의 기능을 새로운 역사에 넘겨주기 전까지 옛 서울역사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관문으로 교통과 물류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수많은 열차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었던 옛 서울역사는 2003년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한 해 2635만여 명이 이용했죠. 2004년 그 기능을 이어받으며 KTX를 더해 규모를 키운 현 서울역은 20년 동안 성장을 거듭하며 2024년 한 해 4233만여 명이 이용,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기차역임을 입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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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울역 100년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이 오간 옛 서울역사는 2011년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로 변신한 지금도 여전히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문화역서울284는 올해 준공 100주년을 기념해 문화역서울284 전관과 커넥트플레이스 서울역점 야외 공간에서 11월 30일까지 특별기획전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를 열어요. 박서현·이주호·장이안 학생기자가 옛 서울역의 100년을 살피고, 앞으로의 100년을 상상하는 특별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과거: 경성역과 서울역

문화역서울284에 들어선 소중 학생기자단은 먼저 옛 서울역 매표소로 향했어요. 예전 호남선 열차 여객 운임표가 크게 붙어 있는 창구에서 역장을 떠올리게 하는 차림새의 직원이 맞이했죠. 옆에는 흑백사진이 한 장 놓여 있었는데, 매표소에 붙어 있는 운임표·안내판 등을 그 사진처럼 재현한 것을 알아챈 세 사람은 감탄했죠. 명절에는 서울역을 통해 고향에 가려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역 바깥에까지 매표소를 뒀다고 합니다. 사진 속 사람들처럼 여정을 시작하려는 소중 학생기자단의 길잡이는 전시를 기획한 이동훈 총괄 큐레이터가 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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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호남선 열차 여객 운임표, 안내판 등 옛 서울역을 떠올리게 재현한 매표소 창구에서 포즈를 취한 이주호·박서현·장이안(왼쪽부터) 학생기자.

이 큐레이터는 먼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서울역에 와 본 적 있는지 물었어요. 주호 학생기자는 “서울역이 좀 멀어서 더 가까운 용산역이나 수서역을 이용한다”고 했고, 집이 근처인 이안 학생기자는 “이전에도 전시를 보러 문화역서울284에 온 적 있다”고 했죠. 이 큐레이터는 “예전에 서울역을 이용한 사람들은 여기 중앙홀에 들어와 매표소에서 표를 사거나 바로 열차를 타러 가거나 옆에 있는 대기실에서 기다렸다”며 중앙홀에 전시된 작품 ‘서울역, 100년의 얼굴’(권민호 작가)을 소개했어요. 옛 서울역의 구조를 틀로 삼아 그동안 쌓인 풍경을 그려 LED 패널에 함께 송출하고, 전면에 놓인 11m 테이블에 새 서울역의 도면과 옛날 사진들, 역장실 팻말 같은 오브제를 배치한 작품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했죠. 사방에 설치된 옛 서울역 샹들리에는 서울역 준공 100주년을 축하하는 듯했고요.

옛 서울역사가 간직한 100년의 기억을 살펴보기 위해 과거 기차 일반석을 이용한 승객들이 모였던 3등 대합실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옛 서울역이 갖는 역사적 키워드를 현대미술 작가 7인의 작품으로 선보이죠. 이 큐레이터는 “사료 등을 훑어보며 주요 개념을 분석하고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과 시기를 나타낼 수 있도록 키워드를 뽑았다”고 설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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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뒷줄) 큐레이터와 중앙홀에 전시된 작품 ‘서울역, 100년의 얼굴’을 살펴본 이주호·장이안·박서현(왼쪽부터) 학생기자.

일제의 침략과 수탈의 수단으로 시작했지만 사람·물자·정보 등이 ‘확산’하는 중심지로서의 서울역은 그처럼 철도를 통해 유입·확산한 개망초를 활용한 작품 ‘새로운 꽃의 탄생’(전혜주 작가)으로 느껴볼 수 있고요. 약속된 시간에 맞춰 출발하는 기차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든 시간 개념이라는 하나의 ‘기준’은 시계의 탑으로 나타낸 작품 ‘고유시’(이완 작가)로 시각화됐죠. 서울역은 유럽으로 갈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분단과 단절로 갇힌 ‘경계’를 상징하기도 하는데요. 이는 그 세월을 지켜본 돌을 금빛으로 덮어 희망을 드러낸 작품 ‘그곳에 있었다_알 아인 2024’(이수경 작가)로 표현됐죠.

서울역은 일제에 항거하고 군부독재의 억압과 통제에 ‘저항’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3자루의 총과 복잡한 기판으로 저항의 움직임을 구현한 ‘거울내장’ 시리즈(박경근 작가)를 두고 이 큐레이터는 “제식군무를 하듯 총이 움직이는 퍼포먼스를 하는 작품”이라고 귀띔했죠. 수많은 사람이 꿈과 애환을 안고 서울역을 통해 ‘이동’하는 이미지는 ‘떠도는 도시들-2727㎞ 보따리 트럭’(김수자 작가) 영상을 통해 사실적으로 나타납니다. 사회 개발과 경제 발전 과정에서 서울은 늘 공사 중이었고, 서울역은 이런 ‘구축’의 물자가 오가는 곳이자 그 상징이기도 했는데요. 이를 은유한 작품 ‘8개의 대칭정원’(김병호 작가)을 지나면 복합문화공간으로 ‘전환’한 서울역을 ‘트랜스레이션 연작’(신미경 작가)을 통해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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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3등 대합실에선 옛 서울역이 갖는 역사적 키워드 7개를 현대미술 작가 7인의 작품으로 선보인다.

7개의 키워드와 예술작품으로 둘러본 역사의 흔적은, 실제 사진·영상·유물을 통해 현실로 다가옵니다. 1925년 준공 당시 서울역 사진이 실린 신성기념사진첩을 살피고, 1910년 한중일 철도 노선도와 1930~40년대 기차 시간표는 너무 복잡하다며 갸우뚱하던 소중 학생기자단은 1936년 마라톤 영웅 손기정이 사용한 유라시아 횡단 철도 티켓을 보며 신기해했죠. 그는 당시 베를린올림픽 출전을 위해 경성을 출발해 신의주를 거쳐 독일 베를린까지 기차로 14일 만에 도착했는데, 이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어요. 이 큐레이터는 “그보다 앞선 1927년 신여성의 선구자로 화가이자 작가였던 나혜석이 경성역에서 파리까지 간 적 있다”고 덧붙였죠.

1945년 8월 15일, 경성역 앞에는 수만 군중이 모여 광복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즐거움도 잠시, 전쟁이 일어나며 피난민은 철길을 따라 남하했고 서울역 역시 상당한 피해를 봤죠. 휴전이 되며 외국의 원조를 받아 시작된 재건 사업의 중심에 있던 서울역과 철도 복구는 빠르게 진행됐고, 이는 경제 개발로 이어졌죠. 많은 사람이 서울로 몰려들며 서울역은 남부역사와 서부역사를 신축했는데, 1975년 서부역사 준공기념 승차권을 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요금이 40원이라며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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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기획한 이동훈 총괄 큐레이터(왼쪽)가 서울역 100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영상‧유물을 소개했다.

1919년 3·1운동과 강우규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유서 깊은 항일운동 현장 서울역 광장에서, 1980년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만여 명의 학생·시민들이 거센 민주화 물결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의 봄과 서울역 회군이 있었던 그해,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기도 했죠. 명절 귀성을 위해 몰려든 인파 사진 옆에는 승객 수를 세는 계수기와 승차권 검표기가 전시됐는데, 소중 학생기자단은 그걸 다 수동으로 했느냐며 눈이 동그래졌어요. 중간중간 배치된 대한뉴스 등의 영상도 유심히 보던 서현 학생기자는 “아까는 예술작품이라 좀 느낌이 덜했는데, 사진·영상·유물을 보다 보니 이게 다 AI가 아니라 놀랍고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게 확 느껴진다”고 했죠.

현재: 서울역과 문화역

2004년 새 서울역의 KTX 개통 사진과 2009년 서울역사 복원 및 문화공간화 사업을 거쳐 문화역서울284이 된 2019년 사진까지 보며 현재로 돌아온 소중 학생기자단은 1·2등 대합실로 향했습니다. 지금의 특실 개념인 1·2등칸 기차표를 산 승객들이 대기하던 곳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 첨단 유행이 오가던 서울역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됐어요.

“1925년 문을 연 경성역은 스위스의 루체른역을 모델로 역사주의·절충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어요. 당시 첨단 기술인 콘크리트 공법을 쓰고 벽돌벽을 올리고 돔형 지붕을 얹는 등 고전적인 장식 요소를 바탕으로 근대적인 감각이 가득한 건축물이었죠. 아까 사진으로 봤던 서양식 식당 ‘그릴’은 커피·맥주 등 서양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모던’의 상징이자, 일제강점기부터 20세기 후반까지 경양식 문화의 상징적 장소였죠. 대합실에서 신식 맥주를 팔기도 했고요. 당시 풍경을 되살려 여러 브랜드와 협업해 현대적 식음의 감각을 경험할 수 있게 꾸몄습니다. 날짜별로 시식·시음 프로그램을 맡은 브랜드가 달라지니 문화역서울284 홈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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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을 주제로 재구성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오아시스레코드 코너.

이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서현·주호·이안 학생기자는 브릭샌드의 벽돌 모양 빵과 차를 즐겼습니다. 좌석에는 경성역과 서울역이 등장하는 과거 신문 기사를 칸막이처럼 배치해 그 시절 열차를 기다리며 간식을 사 먹고 신문을 읽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죠. 경성역에 끽다점다방(식당 겸 찻집)이 생겼다는 기사, 올림픽 권투 경기에 출전한 이규환 선수 귀국 기사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어요. 주호 학생기자가 “누가 서울역을 디자인했으며 왜 루체른역을 모델로 삼아 이곳에 지었는지” 묻자 문화역서울284 박여진 주임이 답변했죠.

“옛 서울역, 즉 경성역을 디자인한 건축가가 누구라고 공식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어요. 다만 당시 일본 건축가들은 근대화를 이룬 서양을 선망해 유학을 많이 갔고, 유럽 건축양식을 많이 활용했어요. 스위스에서 유학한 자료도 남아 있죠. 경성역에 앞서 지은 일본 도쿄역도 유럽 건축양식을 차용해 이러한 흐름에서 스위스 루체른역을 모델로 했을 것이라 봅니다. 경성역은 경인선이 개통되며 지어졌고, 인천항으로 들어온 물자를 한양도성 안으로 옮기는 데 적합해 남대문(숭례문) 앞인 이곳에 자리했어요. 그 이전의 남대문역 유적은 남아있지 않지만요. 지금 문화역서울284의 모습은 아까 봤던 신성기념사진첩 등의 자료를 참고해서 2009년부터 약 2년간 1925년 준공 때 모습으로 복원한 것으로, 당시와 건축 자재가 많이 달라 어려움을 겪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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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서울 최대 규모의 패션시장이었던 옛 서울역사 뒤편 염천교 일대서 착안해 현대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한 패션 전시.

이안 학생기자는 “서울역이 문화역서울284가 된 후로는 어디에서 관리하는지, 이름의 284는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했죠. 박 주임은 “옛 서울역사 건물은 국가유산으로 1981년에 사적으로 지정됐는데, 당시 사적번호가 284호였죠. 이를 활용한 것으로, 문화역서울284 명칭 자체는 국민 공모로 정해졌어요. 이후 사적을 비롯해 국보·보물 등 국가유산에 붙은 번호가 중요도를 나타내는 것처럼 혼란을 주기에 폐지됐죠. 현재 문화역서울284는 국가유산청이 관리하고, 전시 등 콘텐트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위탁을 받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운영해요”라고 설명했죠.

요새 카페에 배경 음악이 필수이듯, 이곳에서도 음악소리가 들리고 있었는데요. 식음 공간 옆 오아시스레코드 코너가 그 진원지였습니다. 1952년 창립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중가요 레이블 오아시스레코드와 박민준 프로듀서가 서울역을 주제로 선정해 재구성한 음악이죠. 이난영·나훈아·문주란·설운도·주현미 등 수많은 뮤지션이 오아시스를 통해 탄생하며 한국 가요사의 황금기를 장식했어요. 현재 오아시스레코드는 아날로그 음반을 디지털 아카이빙해 국내외 플랫폼에서 제공하고 복각 LP·CD 등도 선보이는데요. 그중 일부가 실물 음반과 앨범 재킷, 악보, 또 음악 그 자체로 공간을 채우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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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인테리어로 꾸며진 옛 서울역사 귀빈실과 귀빈 예비실은 현대 가구·패션 전시가 펼쳐져 일종의 포토존이 됐다.

이어 옛 서울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귀빈실과 귀빈 예비실에 가자 화려한 패턴으로 꾸며진 공간에 멋진 의상을 입은 마네킹들이 서 있어 소중 학생기자단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죠. “옛 서울역사 뒤편 염천교 일대엔 당시 서울 최대 규모의 패션·가죽 시장이 있었어요. 철도로 들어온 수입원단을 비롯해 신발·옷감·의류 등이 활발하게 거래되며 미적 감각과 유행이 발산하는 곳이었죠. 그러한 서울역의 배경에 착안해 현대 브랜드와 함께 꾸민 공간입니다. 옛 서울역사의 파사드나 중앙홀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해석한 패턴과 패션 디자인을 만날 수 있죠.” 이 큐레이터의 말에 서현·이안 학생기자는 한복과 양장을 넘나드는 의상과 옷감, 벽지를 유심히 살피며 “너무 예쁘다”며 눈을 빛냈어요. 대리석 벽난로와 고급 벽지, 샹들리에로 장식된 귀빈실에 놓인 현대적 디자인의 가구에 앉아 보기도 했죠. 이 큐레이터는 “포토존을 따로 마련하진 않았는데, 관람객들이 이곳에서 많이들 인증샷을 찍는다”고 귀띔했어요.

과거 이발소·화장실로 사용했던 공간은 서울역사 복원 과정을 보여주는 복원전시실이 됐습니다. 상설전시관이지만 전시 및 행사 중일 때만 관람이 가능해 소중 학생기자단도 이번 기회에 둘러볼 수 있었죠. 서울역을 지탱하는 붉은 벽돌벽과 목재 벽체에 타일을 붙인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어 눈길을 끕니다. 복원 과정에서 폐기된 목재 창틀·문틀을 재사용한 전시대 안에는 목재 부자재·문손잡이 등의 유물이 전시됐어요. 이발소 거울이 달렸던 흔적, 복원 과정에서 나온 조명, 흑백사진과 그림엽서·기차표·도면 등도 흥미로웠죠.

미래: ‘문화역’ 서울과 세계

서울역은 대한민국의 중심 철도시설로 전국 각지를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다양한 인물의 역사가 머문 장소이기도 합니다. 옛 역장실에서 실제 서울역장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국한문혼용된 예전 서울역 관련 신문 기사를 읽기 편하게 에세이처럼 재구성한 전시물, 소설·수필·시 등에서 서울역을 언급하거나 배경이 된 부분을 발췌한 전시물을 하나씩 보다 보면 나혜석·손기정 등 서울역을 거쳐 간 사람들의 기억을 엿본 느낌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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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이발소·화장실이었던 공간은 서울역사 복원 과정을 보여주는 복원전시실이 됐다.

이는 서울역의 미래를 상상하는 토대가 됩니다. 국동완·박솔뫼·안희연·윤혜정·정성갑·최유수 작가가 미래 서울역에 관해 쓴 글은 읽는 이 또한 문학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하죠. 또 다섯 서점이 큐레이션한 100여 점의 서적을 거대한 책장 오브제와 함께 배치했는데요. 책을 읽으며 쉴 수 있고 강연·공연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이곳은 예전 ‘그릴’ 자리예요. 이상이 자신의 소설인 『날개』에 “돈은 없어도 꼭 머물고 싶은 꿈의 공간”으로 묘사했던 곳이라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에 그만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기도 잠시, 저쪽 구석이 신경 쓰입니다. 어두컴컴한 방 한가운데에는 낡은 책들이 전시됐어요. 바로 대표적인 국어사전인 『조선말 큰사전』과 그 원고(복제본)입니다. 해방 후인 1947년 한글날 발행된 1권부터 1957년까지 6권에 걸쳐 나온 『조선말 큰사전』(3권부터 지은이는 한글학회, 제목은 『큰사전』으로 변경) 작업은 일제강점기 조선어말살정책에 맞서 우리말을 지키는 항일투쟁이자 후대에 전승해 한글을 영구히 유지하고자 하는 민족운동의 연장선에 있었죠.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 발족과 함께 시작, 방대한 어휘를 수집·정리하고 맞춤법 통일과 표준어 제정을 거치는 과정은 학자들의 노고는 물론 시민사회의 관심 속에 진행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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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국어사전인 『조선말 큰사전』은 해방 후 서울역 창고에서 일제가 압수했던 원고를 발견하며 한글학회로 이어져 완간할 수 있었다.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이 독립투쟁임을 간파한 일제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켰고, 사전 편찬 작업은 중단됐습니다. 일제는 사전 원고와 관련 서적을 전부 압수하고 조선어학회 인사들을 처벌했죠. 좌절된 것으로 보였던 사전 편찬 작업은 1945년 9월 경성역(옛 서울역사) 운송부 창고에서 사전 원고가 발견되며 한글학회로 이어져 완간, 이후 한국어학 연구의 초석이 됐어요.
“당시 일제는 조선어학회 사건 최종심 재판을 앞두고 압수했던 원고를 증거물로 재판장에 보내려고 했는데, 보내기 직전 해방을 맞으면서 역 창고에 남게 된 거예요. 이 원고가 발견되며 빠르게 우리말 사전이 편찬될 수 있었죠. 그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가 누리는 언어의 자유와 미래를 위한 상상력의 토대를 보여주기 위해 이번 전시에 『조선말 큰사전』과 그 원고를 소개한 겁니다.”
이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은 서현 학생기자는 “그럼 『조선말 큰사전』 원고 발견 외에 100년 동안 서울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 중 유명한 것으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나요”라고 물었죠. 박 주임은 “여러분이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는 사건이자 영화로도 나온 ‘서울의 봄’을 들 수 있다”며 “1980년 전두환 정부의 계엄 해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학생·시민 10만여 명이 서울역 광장에 모여 시위를 벌였던 것으로 전시 초반에 현대 예술작품과 실제 사진으로도 살펴봤다”고 덧붙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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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당 ‘그릴’은 다섯 서점이 큐레이션한 100여 점의 책으로 문학적 상상의 공간으로 꾸며졌다.

통로처럼 보이는 예전 소식당을 지나면 옛 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유럽으로 향하는 여정이 그려집니다. 옛 서울역에서 모스크바나 파리로 가는 기차표를 살 수 있었던 지난 세기를 넘어, 앞으로 서울역에서 파리·로마·런던 등으로 이어지는 철도여행을 꿈꾸게 하죠. 벅찬 마음을 안고 소중 학생기자단은 좁은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옛 서울역 준공 100주년을 맞아 한시적으로 개방한 비밀 통로예요. 3분도 채 안 돼 현재 고속철도를 비롯한 열차들이 오가는 서울역 4번 플랫폼이 나타났죠. 이를 기념하는 스탬프 엽서를 만들기도 잠시, 진짜로 열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여기서 나가 기차를 타고 싶다”며 탄성을 질렀죠.

주호 학생기자가 “외국에선 오래된 기차역을 아직도 쓰던데, 옛 서울역을 계속 쓰자는 의견은 없었는지, 혹시 지금과 같은 복합문화공간 외 다른 용도로 쓰자는 의견은 없었는지” 궁금해했어요. “고속철도 도입으로 KTX만의 철로가 필요해서 역을 새로 지어야 했어요. 연결될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운영 및 예산 등의 문제로 지금처럼 분리됐죠. 옛 서울역사는 철도박물관으로 쓰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2004~2006년 활용방안 연구와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앞으로 문화가 중요해질 것이니 미래 세대를 위해 문화공간으로 만들자고 결론지은 거예요. 이번 특별전에서 비밀 통로를 개방, 어떻게 연결되는지 예전에 연결했었다면 이랬겠다고 느껴볼 수 있는데 어떤가요.” 박 주임의 말에 소중 학생기자단은 “연결하는 게 좋은 것 같다”고 입을 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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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속철도를 비롯한 열차들이 오가는 서울역 4번 플랫폼으로 가는 비밀 통로가 옛 서울역사 준공 100주년 기념으로 특별히 공개됐다.

“서울역이 다른 역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은 이안 학생기자는 “문화역서울284의 앞으로 계획”도 알려달라고 했죠. 박 주임은 “서울역은 존재한 모든 시대에 중요한 역으로 기능했다”고 운을 뗐어요. “경성역 당시에도 외국인을 위한 환전소가 있을 정도로 서울역은 대한민국의 관문이자 중앙역 역할을 했죠. 일제 수탈의 현장이면서 독립운동의 염원, 해방의 기쁨과 분단의 아픔, 산업화와 민주화 열망이 어린 곳이자 여행의 추억 등으로 역사는 물론 우리 국민의 일상 속에 의미 있게 자리해왔어요. 옛 서울역사는 건물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는 국가유산이고요. 만약 통일이 되거나 안 돼도 교류가 가능해진다면 100년 전엔 다녔지만 지금은 못 가는 신의주역을 거쳐 베이징·모스크바·파리로 여행이 가능해질 수 있죠. 문화역서울284는 앞으로도 근현대 역사의 흔적이 새겨진 문화유산을 잘 지키면서 이번 전시처럼 여러 예술가와 협업해 연간 4회 이상 전시를 열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체험·투어 프로그램도 주기적으로 마련해 시민과 만나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으로 운영할 테니 많이 찾아와 주세요.”
동행취재=박서현(인천 중산초 5)·이주호(서울 아주초 5)·장이안(서울 사대부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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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4번 플랫폼에서 실제로 들어오는 열차를 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저 기차를 타고 싶다”며 탄성을 질렀다.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
기간: 11월 30일까지
관람시간: 화~일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매주 월요일 휴관, 30분 전 입장 마감)
장소: 서울 중구 통일로 1 문화역서울284
관람료: 무료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우리나라 역사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옛 서울역 취재였습니다. 서울역은 단순한 기차역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아픈 시간과 행복한 순간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적인 장소였어요. 특히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광복의 기쁨과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생생하게 느껴졌죠. 또 서울역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어(국어) 사전의 원고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서울역에서 출발해 기차를 타고 프랑스 파리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덕분에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생겼습니다. 바로 통일이 이루어진 뒤 기차를 타고 파리까지 여행하는 거예요.
-박서현(인천 중산초 5) 학생기자

어릴 적부터 기차와 철도에 관심이 많아 삼청기차박물관, 철도박물관 등 다양한 곳을 다녀왔어요. 기차를 이용해야 할 때는 집에서 가까운 수서역이나 용산역을 주로 이용하다 보니 서울역을 이용한 경우는 많이 없었죠. 그래서 서울역 준공 100주년 기념전시 ‘백년과 하루’를 취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100년이 된 옛 서울역을 이렇게 잘 보존해 전시관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전시에선 북한에서 가져온 돌 작품과 이번에 처음으로 개방된 4번 플랫폼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가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KTX가 다니는 4번 플랫폼이 좁은 계단을 내려가서 통로 끝에 바로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그 뒤편으로 여러 플랫폼이 전부 보이고 열차가 들어오고 떠나는 것을 본 것도 좋았어요. 앞으로도 계속 개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주호(서울 아주초 5) 학생기자

서울역 준공 100주년을 맞아 열린 '백년과 하루' 전시를 취재했어요. 전시가 진행된 문화역서울284는 어릴 적부터 가족들과 함께 전시를 보러 자주 찾던 익숙한 공간인데요. 그런 공간의 의미를 되짚어본다니 더욱 기대됐죠. 서울역이 세워진 지 1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떤 역할을 해왔고, 어떻게 사용됐는지 설명을 들으며 여러 공간을 돌아봤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조선의 여성 나혜석이 서울역에서 출발해 파리까지 기차로 여행을 갔다는 이야기였죠. 저도 언젠가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기대가 되면서도,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어요.
-장이안(서울 사대부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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