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땅 자르면 화석, 숲 자르면 강 나오는 천과 가위질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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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언제 행복을 느끼나요? 맛있는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과 떠난 여행지에서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도 있고, 또 운동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이렇듯 행복은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죠. 이런 소소한 행복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심리적 안정, 일상에 대한 만족감 증대 등 다양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처럼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는 경험이 쌓이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도 기를 수 있고요.

히무로 유리는 디자인과 직조, 가위질이 만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가 탄생하는 독창적인 작업, ‘스닙 스냅’(SNIP SNAP) 시리즈를 선보인다. 사진은 히무로 유리의 작품.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텍스타일 디자이너’ 히무로 유리는 매일 일상 속 기쁨을 찾아 자신의 작품 소재로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선보이는 텍스타일 디자인(textile design)은 섬유·실·패브릭 등 얇고 유연한 재료 또는 이를 활용해 만든 원단과 제품을 의미해요. 원단을 짜거나 편직하는 직조 과정뿐 아니라, 염색·무늬 디자인·가공 등 원단에 디자인과 기능을 부여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며 옷·커튼·이불부터 기능성 의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죠. 히무로 유리는 ‘천’이 지닌 이야기와 변화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꽃밭·땅속·하늘·바다·마을·겨울 호수 등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천 위에 표현합니다.
디자인과 직조, 가위질이 만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가 탄생하는 독창적인 작업, ‘스닙 스냅(SNIP SNAP·천의 겉면을 자르면 안쪽에 새로운 무늬가 드러나는 이중 구조의 직물) 시리즈는 누구에게나 비슷해 보이는 일상에도 나만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마치 파란 실을 자르면 넘실대는 파도가 되고, 풀잎 사이에서는 작은 동물이 불쑥 얼굴을 내미는 귀여운 모습처럼요. 이렇듯 자르는 방식에 따라 하늘에 원하는 형태의 구름을 만들 수 있는 그의 작품을 한데 모은 전시 '히무로 유리 오늘의 기쁨'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그라운드시소 한남에서 오는 3월 29일까지 열려요.

작가가 일본 오카야마현의 ‘니시아와쿠라’ 마을을 방문했을 때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 ‘마을 산’.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텍스타일 작품 170여 점이 공개되는 이번 전시는 '기쁨이 피어나는 정원' '땅속의 비밀' '하늘 극장' '바다의 노래' '춤추는 패턴' '정겨운 마을' '겨울 놀이터' '유리의 방' 총 여덟 챕터로 구성돼 있어요. 실 한 올이 엮어낸 눈부신 디테일의 텍스타일은 가까이 볼수록 그 진가가 발휘되죠. 작가가 경험했던 유년 시절과 유학 시절 그리고 자연과 일상을 모두 천에 표현한 ‘히무로 유리’만의 독특한 시각을 느낄 수 있어요.
첫 번째 챕터 '기쁨이 피어나는 정원'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인사하는 듯한 작품들이 전시됐죠. 앞면에는 생생하고 강렬한 꽃무늬가 가득하고 뒷면에는 줄기와 잎이 어우러진 패턴을 담은 다양한 텍스타일 작품은 봄을 닮았어요. 이 챕터에 전시된 작품들은 울과 면 소재를 사용하고 수축가공을 더해 부드럽고 매끈함을 자랑해요. '잔디' 시리즈는 히무로 유리가 어린 시절 할머니네에 놀러 가 할머니와 함께 잔디를 깎은 추억이 담긴 작품으로 잔디를 깎다 만난 곤충들을 천 곳곳에 심어 놔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노란 실을 가위로 자르면 땅을 판 것처럼 그 아래에서 공룡 뼈, 고대의 토기 등이 숨겨 있는 작품 ‘발굴’.
이어 풀잎을 열면 작고 부지런한 생명이 살아가는 비밀 정원이 펼쳐지는 두 번째 챕터 '땅속의 비밀'입니다. 이 챕터에는 알록달록한 곤충과 오래전 공룡의 흔적까지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이 천에 모습을 드러내요. 재미있는 주제를 찾다가 문득 '공룡 발굴'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만든 '발굴'은 숨어 있는 아이템을 찾는 즐거움을 선사하죠. 노란 실을 가위로 자르면 땅을 판 것처럼 그 아래에서 공룡 뼈, 고대의 토기 등 묻혀 있던 신비한 무언가가 나타나는 작품이에요. 작가는 들판의 잔디를 깎듯, 유적지의 땅을 파듯, 숨겨진 기쁨을 발굴해 천에 수놓았습니다.
세 번째 챕터는 청량한 하늘이 우리를 더 높이 이끌어 줄 무대 '하늘 극장'이에요. 비행기가 하늘 위를 수놓은 '하늘'은 친구가 미국에서 열린 연날리기 축제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져요. 하늘을 가득 메운 수많은 연이 하나의 무늬처럼 보였고 하늘을 바라보며 비행기의 궤적을 쫓거나 구름의 재미난 모양을 상상한 재미를 '하늘'에 투여했다고 히무로 유리는 설명했죠. 가위질로 표현한 순간의 설렘 속 하늘을 바라보며 꿈꾸고 그려왔던 장면들이 펼쳐지는 찰나입니다.

'텍스타일 디자이너’ 히무로 유리는 섬유·실·패브릭 등 얇고 유연한 재료를 활용해 작품을 만든다.
넓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조그만 사람들 모습을 좋아하는 히무로 유리는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을 스케치했고, 그렇게 켜켜이 쌓인 바다의 추억을 천에 옮겼죠. 네 번째 챕터 '바다의 노래'에서는 넓게 펼쳐진 수평선을 보며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순간을 표현했는데, 가위질한 천 사이에 물고기·게·오징어 등을 숨겨 놓은 작가의 장난스러움이 미소 짓게 해요. 수면 아래 숨겨진 바닷속 친구들과 평화롭고도 설레는 순간을 담은 작품은 관객들에게 잠깐의 여유를 선사하죠.
무언가가 ‘변화’하는 순간 ‘기쁨’이 생겨난다고 믿는 작가의 작업 철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다섯 번째 챕터 ‘춤추는 패턴’은 반짝이는 색의 흐름, 움직임에 따라 바뀌는 무늬, 끝없이 이어지는 다채로운 실의 향연이 펼쳐져요. 숫자·이니셜·기호 등 다양한 모양에 기하학 패턴을 더해 정돈된 듯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히무로 유리는 "천의 유연성에 주목해 만든 작품들이에요. 수축하는 실을 활용해서 마치 아코디언처럼 접혔다 펴지는 주름 같은 디자인을 개발했죠"라고 소개했어요.

'라플란드'는 교환 학생 시절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 일부에 걸친 지역 라플란드를 여행 하면서 생긴 추억을 천에다 표현했다.
여섯 번째 챕터 ‘정겨운 마을’은 낯선 곳에서 만나는 정겨운 풍경을 주제로 합니다. '마을 산'은 작가가 일본 오카야마현의 '니시아와쿠라' 마을을 방문했을 때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인데요. 그곳에서 히무로 유리는 산책하다 마을의 숲은 모두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사람이 관리하지 않으면 나무가 너무 빽빽하게 자라 결국엔 햇빛을 가로막고 죽게 된다는 얘길 들었다고 해요. 인간은 숲을 돌보고, 숲은 사람들에게 풍요를 나눠주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사람과 산의 관계를 작품으로 표현했죠. 초록색 숲을 가위로 자르면 그 안에서 강줄기가 나타나고 그 강은 상류부터 하류까지 길게 흐를 수도 있고 호수가 되기도 하죠. 이렇듯 산 정상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줄기가 숲을 지나 사람들이 사는 마을까지 이어지고 사람들은 다시 숲속에서 삶을 지속하는 게 자연의 이치인 셈인데요. '마을 산'은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순환을 반복되는 패턴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다음은 온통 흰 눈으로 덮이고 얼어붙은 호숫가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야기를 담은 '겨울 놀이터'입니다. 2012년 8월 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핀란드 헬싱키의 알토 대학교에서 한 학기를 교환학생으로 보낸 히무로 유리는 그해 12월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 일부에 걸친 지역 라플란드로 여행을 가게 됐죠. 여름에는 한밤중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로 유명하지만, 겨울은 정반대 풍경을 자랑하는 그곳의 모습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었다고 해요. 당시 추억을 천에다 표현한 작품이 바로 '라플란드(LAPLAND)'이고요. 작가는 난생처음 경험해본 겨울 사우나, 겨울 북극해에서의 수영, 스키 슬로프 등 당시 느낀 색감과 분위기 등 모든 기억을 텍스타일 패턴 안에 그대로 녹아냈죠.
작가 이름을 딴 마지막 챕터 '유리의 방'은 그의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도록 꾸며놨습니다. 이곳에서 마주한 '티니 모멘트 시리즈(tiny moment series)'는 조용하지만 선명한 일상의 순간에서 영감받은 작품 모음으로 한국 전시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소형 시리즈라고 해요. 해 뜨기 전에 반려견 '고마'와 함께하는 산책, 이른 아침 연꽃이 만발한 연못에서 낚시하는 사람과 공원 잔디에 누워 책 읽는 사람 등을 봤을 때 마음이 편해지고 아름답다고 느낀 히무로 유리는 이런 모습을 부드러운 직물 위에 옮겨 작품을 완성했죠.

히무로 유리만의 독특한 시각이 느껴지는 텍스타일 작품 170여 점이 전시됐다.
작가는 이런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자신의 기억에서 출발한다고 해요. 여행 중 만난 풍경, 오래전의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 또 영감을 자극하는 장난감이나 팝업북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구상하죠. 이어 펜 태블릿을 활용해 디지털로 그림을 그리는데 이때 중요한 건 직조 규칙이 있다는 점입니다. 세로 50㎝를 기준으로 위쪽으로 세 번 패턴이 반복돼야 탁 트인 풍경과 같은 디자인이 나오기 때문이죠. 디자인을 정하면 색깔을 고르고 직조 구조를 설계하죠. 예를 들어 자카드 직조 방식은 날실(세로 실)과 씨실(가로 실)이 교차하는 방식을 조절해서 복잡한 무늬를 만들어요. 직조 구조에 따라 천의 색감과 질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샘플을 만들어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원하는 디자인에 최대한 가깝게 구현하기 위해 여러 번 샘플을 만든 후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다고 해요.
이처럼 일상에서 스케치한 즐거운 순간을 천 위에 옮겨놓고, 세심하게 색과 형태를 선택한 뒤 어디를 어떻게 자를지 결정하는 그 순간, 히무로 유리의 오늘의 기쁨이 비로소 완성됩니다. 여러분도 평범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과 기쁨을 찾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전시 마지막에는 히무로 유리처럼 직접 가위질을 할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마련돼 있으니 직접 스닙 스냅 작품을 완성해 보세요.
'히무로 유리 오늘의 기쁨'
장소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91그라운드시소 한남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명절 휴관, 입장은 오후 6시 마감)
관람료 성인∙아동∙청소년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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