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국립극장서 수궁가, 새타령 부르는 웅산…“번개처럼 국악이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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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한남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재즈 보컬 웅산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듯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악인들의 주 무대인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재즈 선율이 울려 퍼진다. 다음 달 5일 열리는 웅산(52·雄山·본명 김은영) 콘서트 ‘올 댓 재즈’에서다. 해오름극장에서 재즈 뮤지션의 단독 공연이 열리는 건 2017년 나윤선 이후 8년 만이다. 웅산은 이곳에서 스탠더드 재즈, 본인의 자작곡뿐 아니라 국악인 이재하(거문고), 방지원(장구)과 함께 수궁가, 광대가, 새타령 등 우리 가락을 노래할 예정이다. 지난 4일 서울 한남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웅산은 “금남의 집에 당당하게 허락 받고 들어가는 느낌”이라며 “국립극장의 엄격한 대관 심사에서 국악을 향한 제 진심과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웅산의 목소리를 히트곡 ‘예스터데이(yesterday)’로만 기억하는 이들에게 국악은 의외의 선택일 수 있다. 본인의 자작곡인 이 노래에 얹힌 웅산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거칠고 단단한 국악 창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항상 ‘의외의 길’을 걸어왔던 웅산의 인생을 떠올려보면 그리 놀랍지도 않다. 한때는 출가를 결심하고 절에서 수행 생활을 하던 그였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노래 ‘누구 없소’ 때문에 절에서 나왔고, 이후 대학에서 록 보컬로 활약했다. 어느 날 빌리 홀리데이의 ‘아임 어 풀 투 원트 유(I’m a fool to want you)’를 듣고 재즈에 빠졌다. 국악에 대한 열정도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번개 맞듯 찾아왔다”고 했다.

다음달 5일 열리는 웅산의 단독 콘서트 포스터. 제이피컴퍼니 제공
“2016년 장구 연주자 김덕수 선생님, 현대 무용가 이루다씨와 셋이서 8분의 18박자의 국악을 연주한 적이 있어요. 김덕수 선생님의 장구 소리를 들으며, 까만 토슈즈를 신고 즉흥으로 춤을 추는 무용수를 보며 온몸의 세포가 다 열리는 것 같았어요. 세 명이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연주에 강력한 영감을 받았죠. 저도 모르게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스캣(가사 대신 뜻 없는 말로 즉흥적으로 프레이즈를 만들면서 부르는 것)이 흘러나왔어요. 그런데 공연을 영상으로 남겨 놓지 않아 다시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제대로 국악을 배워서 또 그런 공연을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죠.”

웅산은 이번 공연에 대해 "금남의 집에 당당히 허락 받고 들어가는 기분"이라며 "국악인들의 무대에서 재즈를 풀어낼 수 있는 게 기쁘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후 웅산은 “다양한 명창들을 찾아 심 봉사 젖동냥 하듯” 국악을 공부했다. 그는 “이날치 보컬이었던 신유진, 소리꾼 김준수·박애리 등 지난 10년 간 제게 소리를 가르쳐 주신 분만 10여 분”이라고 했다.
재즈와 국악은 즉흥 연주가 많고, 멜로디의 근간인 음계가 비슷하다는 등의 이유로 자주 콜라보 되는 조합이다. 국악 연주에 재즈 스캣이 얹히거나 재즈 반주에 국악기 선율이 더해지는 식이다. 그러나 웅산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아예 통성(몸 전체를 울리는 판소리의 주요 창법)의 발성 방식을 체득했다. 2023년 발매한 ‘후 스톨 더 스카이(Who stole the sky)’ 앨범에선 아예 10개 트랙 중 절반을 국악으로 채웠다. 단독 콘서트 때도 국악인들을 불러 꾸준히 협연해왔다. 지난 1월엔 소리꾼 이봉근, 래퍼 MC 스나이퍼, 현대 무용가 이루다 등과 함께한 크로스오버 프로젝트 ‘SPACE 난장’으로 싱글앨범 ‘비나리’를 발매했다. 웅산은 “재즈와 국악이 만나면 엄청난 ‘자유의 시너지’가 생긴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웅산(중간 빨간 드레스)이 직접 기획한 '스페이스 난장 프로젝트'의 멤버들. 이들은 지난 1월 유니버셜 뮤직을 통해 싱글앨범 '비나리'를 발표했다. 스페이스 난장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혁신적 무대를 선보이는 총체 예술 프로젝트로 국악과 재즈, 힙합, 현대 무용이 융합된 게 특징이다. 제이피컴퍼니 제공
그렇다고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잃는 건 아니다”라고도 강조했다. “국악을 시작하며 가장 신경 썼던 건 목 관리였어요. 원래의 목소리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판소리 명창들이 하는 ‘산 공부’도 하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국악에 흥미가 생길 때쯤 목에 폴립(혹 같은 조직)이 생겼어요. 병원들을 돌아다녔는데, 모두 수술을 권했죠. 그런데 세 곳 중 한 곳의 의사 선생님께서 저를 알아보시고는 ‘다른 사람에겐 수술하라고 하겠는데 보컬에겐 그러질 못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관리만으로 버텼는데, 기적적으로 회복이 됐죠. 요새도 많이 할 땐 최대 3시간까지도 연습하지만, 평소엔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내년에 데뷔 30주년을 맞는 웅산은 “내게 음악적 영감을 줬던 아티스트들을 불러 잔치 같은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배우고 싶은 게 많아요. 국악 중에선 판소리와 다르게 소리 내는 궁중음악 ‘정가’를 불러보고 싶고요. 인도의 라가, 몽골의 흐미 등 제3세계의 전통 음악까지도 레이더를 세우고 있어요. 물론 미국의 재즈 보컬 베로니카 스위프트 같은 젊은 아티스트들의 활동도 눈여겨보고 있고요. 목소리가 허락하는 한, 자유의 음악 재즈의 품에서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만나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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