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름 모를 밴드가 아이유보다 팬 많다…해외로 눈 돌리는 ‘K인디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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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최대 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 무대에 오른 웨이브 투 어스. 사진 웨이비

최근 중소형 엔터테인먼트 A사는 소속 가수 B씨의 해외 진출을 준비하며 그에게 영어를 가르칠 과외 교사를 붙여줬다. A사 관계자는 “첫 목표 시장은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지역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한국은 장르적으로는 K팝에, 마케팅 면에서는 대형 기획사 쏠림이 크다 보니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해외 진출을 준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데뷔한 록 밴드 ‘투 모 로우(To more raw)’는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리며 한국어·영어·태국어 3개 국어 자막을 달았다. 이 밴드의 베이스 연주자 양준혁씨는 “멤버 3명 모두 직장을 다니면서 활동을 이어가는 와중에 영어 공부도 틈틈이 하고 있다”며 “어떤 특정 국가 데뷔를 목표로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음악이 영어로도 이해할 수 있는 콘텐트가 되면 그만큼 기회가 더 넓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인디 뮤지션들이 국내 음악 시장의 경쟁을 피해 전략적으로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바이럴 마케팅이 활성화돼있어 진출의 문턱이 낮아졌고, 한 번 흐름을 타면 국내보다 훨씬 많은 리스너들을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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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너티브 팝 밴드 ‘더 로즈(The Rose)’의 앨범 자켓. 사진 윈드폴

이전에도 ‘잠비나이’ 등 국악을 접목한 밴드들이 해외에서 인기를 끈 사례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유튜브 뮤직, 쇼츠 등 온라인을 통한 음악 청취와 홍보가 활발해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엔 모던 록 밴드 ‘웨이브 투 어스(Wave to Earth)’, 얼터너티브 팝 밴드 ‘더 로즈(The Rose)’, 신스팝 밴드 ‘아도이(ADOY)’, 서프 록 밴드 ‘세이수미(Say Sue Me)’, R&B·발라드 싱어송라이터 ‘뎁트(Debt)’, 전자음악 힙합 듀오 ‘힙노스시테라피’ 등 다양한 팀들이 해외에 진출해 성과를 얻고 있다.

웨이브 투 어스는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들의 스포티파이 월간 청취자 수(11월 기준)는 700만명이며, 최대 900만명을 기록한 적도 있다. 가수 아이유의 청취자(약 400만명)보다 많다. 웨이브 투 어스는 2023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베리 페스티벌 무대를 시작으로 두 차례 해외 월드 투어를 진행하며 107개의 해외 공연에서 20만 관객을 끌어들였다. 특히 북미권에서 진행된 두 차례 투어(51개) 콘서트는 전석 매진됐으며 앵콜 투어(7개)도 따로 진행할 정도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처럼 한국 음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지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비롯해 대만, 유럽, 북미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 음악의 공통점은 대부분 가사가 영어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멤버 1명 이상이 영어 능통자이면서 작사, 작곡을 책임지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후 페스티벌→월드 투어 순으로 인기 몰이에 쐐기를 박은 과정도 비슷하다. 더로즈가 소속된 윈드폴 관계자는 “데뷔곡 ‘쏘리(Sorry)’ 등으로 유럽에서 입소문을 타며 현지에서 투어 콘서트 제의가 왔다”며 “관객 500명 규모의 작은 공연부터 차근히 밟아나간 덕에 지금은 각 공연 당 5000~7000명의 관객이 더 로즈를 보러 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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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국내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이 이처럼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요인은 뭘까. 김학선 평론가는 “기본적으로 해외에서는 리스너에게 소비되는 음악 장르, 뮤지션의 국적이 국내보다 다양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부터 올 7월까지 스포티파이의 청취자 톱 200의 음악들을 독일의 데이터 기관 데이터펄스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지 뮤지션의 음악을 듣는 비중이 높은 편(6위, 77.4%)이다. 프랑스(17위, 61.9%), 스페인(39위, 27.6%) 등 유럽 지역도 우리나라보다는 자국 뮤지션의 소비율이 낮은 편이다.

같은 통계에서 K팝을 소비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는 대만(36.3%), 홍콩(28.8%), 싱가포르(21.6%), 태국(17.4%), 일본(14.5%), 말레이시아(13.6%) 등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지역의 호응이 큰 것에 대해 임희윤 평론가는 “2030세대 인구가 많아 동영상 소비와 바이럴 활동이 활발하며 한국 문화에 대해 충성도가 높다”며 “BTS, 블랙핑크의 해외 성공에서 보듯 동남아시아 팬들은 영상을 통한 K팝, K인디음악 전파에 있어서도 든든한 발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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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벨기에서 열린 '도어 페스티벌'에 참여한 힙노시스테라피의 공연. 사진 CJ문화재단

향후 인디 뮤지션의 해외 진출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2018년 영국 최대 음악 축제 글래스톤 베리 페스티벌 기획자가 참석해 화제를 모았던 홍대 잔다리 페스타의 올해 무대엔 스페인, 독일, 슬로바키아, 인도네시아, 대만 등 해외 뮤지션들이 대거 무대에 올랐다. 국경을 뛰어넘은 뮤지션, 레이블 간 상호 교류가 그만큼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콘텐츠진흥원, CJ문화재단 등 민·관의 해외 진출 지원 사업도 꾸준한 추세다.

다만 긍정적인 흐름이 지속되려면 통역 등 현지 활동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웨이비 관계자는 “이를테면 동남아 지역 공연 계약서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방송 동시 송출 및 녹화 조항 등이 뒤늦게 발견된 적이 있었다”며 “이런 일들이 해외에 나가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한국 음악 시장의 발전을 위해 이들의 활동이 한국으로 ‘역수입’ 되는 선순환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학선 평론가는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더 뜬 뮤지션들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국내 음악 시장의 홍보 경쟁이 치열하고 이름을 알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라며 “K팝 외에도 음악 장르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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