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응급실 이송 지연으로 숨진 고교생…1시간 동안 치료 못 받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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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응급환자를 이송한 구급차가 서 있다. 중앙포토
부산 도심에서 쓰러진 고등학생이 응급실을 제때 찾지 못해 숨진 사건을 둘러싸고 당시 이송 과정과 의료기관의 대응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생명에 대한 기본 윤리를 저버린 일”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오전 6시 17분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A군(18)이 심한 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A군은 경련과 호흡 곤란을 보였고 119 구조대는 인근 8개 병원에 잇따라 수용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 그러나 해운대백병원, 동아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부산백병원 등 4곳은 소아신경과 전문의 부재 등을 이유로 수용을 거절했다. 이후 구급대원이 부산소방재난본부 구급상황관리센터에 협조를 요청했고, 센터는 부산대병원·동의병원·고신대병원·창원한마음병원 등을 포함해 8곳에 요청했으나 대부분 “소아신경과 배후 진료가 어렵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을 찾는 과정에서 약 1시간이 지나자 A군은 결국 구급차 안에서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구급대원은 중증도를 ‘소생’ 단계인 1등급으로 상향하고 오전 7시 30분쯤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했다. 심정지 환자는 근접 병원이 반드시 수용해야 한다.
간질증세 후 심정지 상황 병원서 외상 발견
이송 후 의사가 옷을 벗겨 확인한 결과 A군의 꼬리뼈 부위에서 큰 외상이 발견됐다. 외상은 신고 당시 시민과 구급대원 모두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알고 보니 해당 학생은 시민에게 발견되기 전 크게 다쳤는데 외상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 환자와의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에서 격심한 발작 증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A군은 결국 신고 후 약 1시간 만에 숨졌다. 유족 요청 등으로 부검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이 한 달 뒤에야 알려지자 의료계 일각에서는 병원과 구급대 양쪽 모두의 대응을 두고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조미료 없다고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밥 안주나”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응급 상황에서 생명을 구하는 ‘ABC’ 원칙은 의사라면 가장 기본으로 배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Airway(기도 확보), Breathing(호흡 보조), Circulation(순환 유지)는 어느 병원이든 제공할 수 있는 조치인데, D(Drug)가 없다는 이유로 기본 ABC를 거부해 아이가 죽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식당이 조미료 하나 없다고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밥을 안 주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소아신경전문의가 없다? 그래서 ABC를 안 해 준다? 그래서 죽으면 피가 거꾸로 쏟을 일 아닌가”라며 “생명은 다 똑같고 부모 입장에서 생각하면 입이 백개라도 할말이 없는 참사”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구급대원이 환자의 상태가 병원에 어떻다고 말했는지가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구급대원도 환자의 상태가 불안정해지면 현장에서 기도삽관 등 조치를 할 수 있다”며 “병원을 수배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위중한 상태를 알렸다면 병원에서 오라고 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고 말했다.
“치료 못한 이유 따져봐야”…‘방어 진료’ 탓 지적도
병원들의 ‘수용 불가’ 결정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반론도 나온다.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경련 치료는 경련을 멈추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원인에 따라 전문의가 모두 다른데, 이를 완벽히 감당하려면 병원은 사실상 ‘올스타팀’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양 과장은 최근 법원 판례 역시 병원들의 소극적 판단을 부추긴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응급이라도 해당 세부 전문의가 아니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이어지며, 90%의 치료 역량을 가진 의사들도 모두 퇴장하게 된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병원들은 학생을 받지 않았다. 의사가 없어서가 아니었다”며 “법원의 기준을 충족할 자신이 없어서였다”고 했다.
병원들의 ‘방어 진료’와 관련, 앞서 서울고법은 2023년 10월 장이 꼬여 구토하던 생후 5일 된 신생아를 응급 수술한 외과 의사 등에게 “환자에게 1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소방 당국과 병원 사이에 오간 정확한 대화 내용을 들어봐야겠지만, 학생을 제때 치료하지 못한 원인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며 “외상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소방 당국의 실수일지, 고등학생인데 굳이 소아 신경과 담당 의사가 없다고 돌려보낸 병원 측 문제일지는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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