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코너 몰린 트럼프, '엡스타인 법안'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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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정계를 뒤흔들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는 ‘엡스타인 문건’을 공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전날 연방하원이 427 대 1의 압도적 차이로 표결한 데 이어, 상원이 만장일치로 법안을 통과시킨지 단 하루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사우디 투자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당초 문건 공개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표결을 앞두고 당내 이탈표를 막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오히려 “문건 공개에 찬성표를 던지라”며 전략을 바꿨고, 이날 법안에 서명한 뒤에는 “오히려 민주당이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엡스타인은 민주당원…역풍 맞을 것”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엡스타인 문건 공개 법안에 서명한 뒤 소셜미디어(SNS)에 “2019년 트럼프 법무부에 기소된 엡스타인은 평생 민주당원이었고 민주당 정치인에게 수천 달러를 기부했다”며 “민주당 인사들과 엡스타인의 연관성에 대한 진실이 곧 밝혀질 것”이라고 적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제프리 엡스타인을 형상화한 동상이 워싱턴 의사당 인근 내셔널 몰에 서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 옹호자들이 제작한 항의 예술 작품이다. AP=연합뉴스
그러면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정치 활동가 리드 호프만,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스테이시 플라스켓 민주당 의원 등 민주당 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은 엡스타인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억만장자 엡스타인은 자신의 자택과 별장 등에서 미성년자 수십 명을 비롯한 여성 다수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는 성범죄 혐의로 체포된 뒤 2019년 수감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국 워싱턴 의사당 앞에 엡스타인의 이메일에서 확인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한 문장을 내건 트럭이 항의의 차원으로 주차돼 있다. EPA=엽합뉴스
이후 그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유력 인사들의 리스트가 존재한다거나, 심지어 사인이 자살이 아니라 핵폭탄급 리스트 등을 은폐하기 위해 벌인 타살이라는 등의 음모론까지 제기돼 왔다.
30일 내 공개…‘짖지 않는 개’로 불린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법안에 서명하면서 법무부는 30일 이내에 “모든 기밀 기록, 문서, 통신 및 수사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다만 피해자 이름이나 수사를 방해할 수 있는 정보는 편집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뉴욕타임스(NYT)는 “법안이 모든 자료의 공개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뉴욕의 부동산 사업가로 있던 1997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헤지펀드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찍은 사진.
엡스타인 문건이 재차 정계를 뒤흔든 배경은 지난주 민주당이 공개한 엡스타인의 이메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성범죄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내용이 확인되면서다.
엡스타인은 2011년 4월 미성년자 성착취를 도운 연인 길레인 맥스웰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트럼프를 “짖지 않는 개”라고 칭하며 “○○○(피해자)가 그(트럼프)와 함께 내 집에서 수 시간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고 했다. 2019년 이메일엔 “그(트럼프)는 당연히 소녀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한 내용도 확인됐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감독위원회 민주당 측이 공개한 자료.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이 보낸 이메일에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이 언급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2000년대 초까지 엡스타인과 공공연히 어울렸다. 이 때문에 성범죄에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지만, 그는 2004년무렵 엡스타인과 결별했고 부적절한 행동도 없었다고 반박해왔다. 그러나 문건 공개 청원에 동참한 ‘핵심 마가(MAGA)’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을 ‘배신자’로 낙인찍는 등 문건 공개를 막으려는 움직임을 공공연히 보였다.
“정치적 패배…레임덕 근접 가능성”
CNN은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안에 서명한 것에 대해 “여론에 의한 (트럼프의) 정치적 패배이자 레임덕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사우디 투자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엡스타인 문건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공화당의 지지율은 3년여만에 처음 민주당에 역전됐다. NPR·PBS가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지금 선거가 치러지면 어디에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55%가 민주당을 꼽았다. 공화당을 찍겠다는 응답은 41%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39%로 2021년 1·6 의회 폭동 사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의 조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1%로, 9월(46%)보다 5%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3월 92%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공화당원들의 지지율이 86%로 하락하며 당내 지지율 이탈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1년 뒤 중간선거를 치러야 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기존의 지지층까지 동요하는 가운데 대중이 의혹을 가지고 있는 엡스타인 사건에 대해 맹목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며 문건 공개에 반대하기가 어려웠을 거란 해석이 나온다.

현지시간 19일 미국 워싱턴 의사당 상원 회의장 밖에서 기자회견 중인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민주당, 뉴욕주). 상원은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기록 전체를 공개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EPA=엽합뉴스
전략 수정?…“외국 인력 수용이 진짜 마가”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엡스타인 관련 법안에 서명하기에 앞서 강성 ‘마가 세력’들을 의식한 극단적 고립주의에서 물러서는 발언을 했다.

MAGA 모자를 쓰고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이날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개최된 미·사우디 투자포럼 연설에서 “내 여론조사 수치는 떨어졌지만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선 (지지율이) 크게 올랐다”고 주장했다. ‘똑똑한 사람’이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지난 9월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사건을 비판하며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사람들이 많은 인력을 데려와 공장을 가동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바보 같은 짓(구금)을 그만두라’고 해서 문제를 해결했다”며 “나는 마가를 사랑하지만, 이것(외국 전문인력 수용)이 (진정한)마가”라고 강조했다.
외국인 전문 인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러한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인 마가 진영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논리로 반대해왔던 사안이다.
전날 만찬에 이어 이틀 연속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것도 주목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전기차 세액공제와 관련한 말을 하던 중 “테슬라를 사려고 돈을 빌리면 대출 이자를 공제받을 수 있다”며 “당신(머스크)은 운이 좋다. 나는 당신의 편(I‘m with you)”이라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기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사우디 투자 포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머스크는 트럼프의 ’퍼스트 버디‘로 불리며 2기 행정부의 실세로 떠올랐다가 트럼프의 감세 법안 등에 대한 이견으로 갈등을 빚은 끝에 사이가 틀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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