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네스코가 종묘 지킴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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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 문화선임기자
열차 선로처럼 평행을 달리는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의 ‘종묘-세운4구역’ 갈등을 따라가다 보면 드는 의문.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영향평가(HIA) 요구를 서울시에 전달하는 것 외에 국가유산청이 가진 수단은 없는가. “수백 년의 완전함을 지켜오며, 자연을 존중하는 경관과 정제된 건축에서 나오는 고요함이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유산”(허민 청장 입장문)이라면서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법적 장치를 여태 마련하지 않은, 혹은 하지 못한 이유는 뭔가.
알려진 대로 서울시는 2023년 문화재보호법의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하 역보지역, 서울시는 100m) 바깥의 개발 행위와 관련한 문화재위원회의 사전 심의 조례 조항을 삭제했다. 이 삭제가 위법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종묘 경계 170m상에 위치하는 세운4구역 개발이 날개를 단 분위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전에서 바라본 높이 142m 건물의 시뮬레이션을 공개하면서 “숨이 턱 막힐 정도냐?”고 되물었다. 숨만 쉬면 되는 게 종묘 경관의 가치였던가.

서울 세운 4구역의 초고층 재개발로 인해 경관 훼손 논란에 흽싸인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의 전경. [사진 국가유산청]
오히려 이번 대법원 판결문을 들여다보면 서울시의 ‘법대로 100m’가 위태로운 모래성 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시·도지사가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하에 500m 범위에서 설정할 수 있는 역보지역을 서울시만 100m로 한 것은 고밀 개발 도시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대신에 조례 단서를 통해 ‘100m 바깥’도 논의할 수 있게 했다. 판결문은 비록 시 조례가 삭제됐다 해도 문화재보호법 12조와 35조에 보장된 대로 역보지역 바깥에 대해서도 필요한 경우 국가유산청장이 조치할 수 있기에 문화재 보호에 차질이 없다는 취지다. 다만 이 법엔 ‘언제, 어떻게 할 수 있다’가 빠졌다. 법리 해석에 따라 만시지탄이 될 수도, 회심의 반격이 될 수도 있다.
종묘 앞 개발 논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2011년 문화재위원회는 종묘 등 5개 세계유산 주변에 ‘500m 완충구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너무 일찍 등재된 탓에 요즘 식 완충구역이 없었던지라 세계유산 전문가들의 자문까지 거쳐 ‘500m 범위’로 정했다. 법제화되진 않았지만 서울시 조례에 따른 상호 협의 때 불문율처럼 작동했다. 서울시가 수년에 걸쳐 ‘종묘 500m 완충구역’을 무력화시키는 사이 국가유산청은 무얼 준비해 왔나.
국내 HIA 권위자인 김충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서울 도시 개발의 문제는 세계유산을 어떻게 보호·관리할지가 전체 그림 속에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리나 런던 도시 계획에서 중요한 축인 세계유산이 서울에선 천덕꾸러기 취급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다. 어쨌든 초고층 스카이라인 때문에 종묘가 세계유산에서 밀려난다 해도 그건 제도화된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거나 필요 없다고 본 우리의 몫이다. 지키려면 우리의 철학과 제도로 지켜야지, 유네스코가 종묘 지킴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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