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188년 유산과 서울의 감성이 만난 ‘블루 박스’ [더 하이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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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 아레나 광장 중앙에 거대한 ‘블루 박스’가 놓였다. 도시의 빛과 계절의 공기가 미묘하게 뒤섞인 초겨울, 티파니 블루 컬러가 칠해진 이 박스형 구조물은 멀리서도 또렷하게 시선을 끌어당긴다. 내부에 들어서면 유리와 금속, 빛과 색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특유의 정적이 자리한다. 이곳은 하이주얼리 브랜드 티파니(Tiffany & Co.)가 진행 중인 ‘위드 러브, 서울(With Love, Seoul)’ 전시 공간이다. 188년간 쌓아온 아름다움과 상징,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층위를 담아낸 거대한 보석함에 가깝다.

티파니 전시 ‘위드 러브, 서울‘ #하우스 일군 거장 세 명의 유산 전시 #‘버드 온 어 락’ 등 상징적 작품 다수 #무궁화 문장 등 한국 문화 접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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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 아레나 광장에 마련된 티파니의 전시 ‘위드 러브. 서울'의 전시 공간. 사진 티파니

하우스의 뿌리, 세 명의 거장

티파니 ‘위드 러브, 서울’ 전시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브랜드의 시간을 나란히 놓고 읽게 한다. 뉴욕에서 태어난 브랜드가 왜 이 순간, 서울이란 도시를 향해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건네는지 그 답을 네 개의 챕터를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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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의 역사와 정체성을 설립한 3명의 인물들. 왼쪽부터 하우스 창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 하우스 최초의 아트 디렉터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 전설적인 주얼리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 사진 티파니

첫 챕터 ‘러브 오브 레거시(Love of Legacy)’는 티파니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183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문구점으로 출발한 티파니는 창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Charles Lewis Tiffany)의 선구적 감각 덕분에 단숨에 주얼리 하우스의 위치를 확립했다. 그는 귀금속 조달 방식과 보석 유통 구조를 혁신하며 시장의 판도를 바꿨고, 특히 1887년 프랑스 왕실 보석 경매에서 인수한 진귀한 작품들은 당시 티파니의 위상과 도전 정신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에도 그중 하나인 진주·에메랄드 브로치가 공개돼 초창기 티파니의 품격과 미적 기준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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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선보인 1864년 프랑스 황후 외제니를 위해 제작된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진주 등을 사용한 브로치. 사진 티파니

이어지는 ‘러브 오브 크리에이티비티(Love of Creativity)’ 챕터는 창립자의 아들이자 하우스의 첫 공식 아트 디렉터였던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에 대한 헌정으로 꾸며졌다. 그는 금속·유리·보석의 색채를 혼합해 주얼리를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특히 블랙 오팔 네크리스는 그가 추구한 빛과 색의 조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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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러브 오브 크리에이티비티’ 공간 중에서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하우스 창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의 방. 사진 티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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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오브 크리에이티비티’의 두 번째 공간,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의 방. 사진 티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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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오브 크리에이티비티’의 세 번째 공간, 하우스의 전설적인 주얼리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의 방. 사진 티파니

세 번째 챕터 ‘러브 오브 디자인(Love of Design)’의 중심엔 브랜드의 전설적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Jean Schlumberger)가 있다. 20세기 장신구 디자인을 논할 때 그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자연과 생명력의 형상을 주얼리에 생생히 이식했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 ‘버드 온 어 락(Bird on a Rock)’ 브로치는 화려한 보석 위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내려앉은 형상을 통해 주얼리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보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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쟌 슐럼 버제의 해양 테마를 대표 하는 ‘헷지 앤 플라워’ 네크리스. 사진 티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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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옐로우 시트린을 바위 삼아 앉아있는 새의 모습을 표현한 쟌 슐럼버제가 디자인한 티파니의 ‘버드 온 어 락’ 작품. 사진 티파니

한국 문화와의 조우, 아티스트 협업과 무궁화 문장 

마지막 챕터 ‘러브 오브 익스프레션(Love of Expression)’은 현대적 감성과 디지털 미디어의 감각을 담아낸다. 한국계 캐나다 아티스트 크리스타 킴(Krista Kim)의 몰입형 작품은 관람객의 심장 박동을 측정해 이를 각기 다른 색과 파동으로 보여준다. 빛과 리듬이 관람자에 따라 달라지는 작품은 감정을 시각화해 전시 전체의 테마인 ‘사랑’을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확장된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다.
또 서울 전시의 특별함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번에 처음 선보인 ‘무궁화 문장(Crest)’이다. 티파니는 전시 개최를 기념해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모티브로 한 문장을 디자인했다. 이 문장은 19세기 블루 북(Blue Book)의 장식 요소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것으로, 브랜드의 상징인 티파니 블루 컬러와 한국 문화를 세련되게 연결한다. 전통과 현대, 뉴욕과 서울, 상징과 감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이어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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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포스터엔 한국 문화와의 연결을 시도한 무궁화 문장과 ‘버드 온 어 락’ 주얼리를 담았다. 사진 티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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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타 킴 작가와 함께 작업한 '러브 오브 익스프레션' 챕터. 사진 티파니

장인정신, 창의성, 윤리성 그리고 사랑

티파니는 지금도 세계 300여 개 매장과 5000여 명의 장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이주얼리를 생산한다. 다이아몬드의 커팅·세공·검수는 대부분 숙련된 장인의 손을 거치며, 지속가능한 원자재 조달과 환경·지역사회를 향한 책임 또한 브랜드 운영의 중심에 자리한다. 이처럼 브랜드의 현재는 장인정신, 창의성, 윤리성이라는 세 가지 축 위에 견고하게 서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그 세 축을 ‘사랑’이라는 정서와 함께 하나로 묶는 장치다.

잠실 아레나 광장의 거대한 블루 박스 안에서 관람객은 시대를 가로지르는 보석의 여정, 세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사랑의 언어, 그리고 티파니라는 브랜드가 쌓아 올린 미적 기준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된다. 보석은 빛나는 물질이지만, 그 빛을 감정과 기억으로 연결하는 순간 예술이 된다. 위드 러브, 서울 전시는 바로 그 지점을 향해 조용히 손을 내민다. 전시는 12월 14일까지.

"티파니만의 우아함이 담긴, 매우 ‘티파니다운’ 경험을 선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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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영 티파니 패트리모니 &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머천다이징 부사장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 티파니

인터뷰 ㅣ 크리스토퍼 영 티파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티파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패트리모니 &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머천다이징 책임자이자 전시·아카이브를 총괄하는 크리스토퍼 영(Christopher Young) 부사장은 티파니가 전 세계에서 펼치는 전시의 방향성과 미적 언어를 만드는 핵심 인물이다. ‘비전 & 버추오시티(Vision & Virtuosity)’와 ‘티파니 원더(Tiffany Wonder)’ 전시를 큐레이션했던 그는 이번 ‘위드 러브, 서울(With Love, Seoul)’의 총연출을 위해 직접 한국을 찾았다. 전시를 통해 티파니가 1837년부터 이어온 창의성과 혁신을 어떻게 서울이라는 도시 속에 담아냈는지, 그에게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와 큐레이션의 핵심을 물었다.

-이번 전시를 서울에서 열게 된 이유는.

“전시는 티파니가 창립된 1837년 이후 이어져 온 창의성과, 아카이브가 보유한 보물들을 통해 브랜드를 특별하게 만든 이정표와 혁신을 조명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정성 있게 접근했고, 이번 큐레이션은 말 그대로 우리의 진심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한국 관객을 위한 큐레이션으로 어떤 원칙을 세웠나.

“서울의 세련된 미감과 풍부한 예술적 역사는 이번 전시 오브제 큐레이션에 큰 영감을 줬다. 가장 크거나 유명한 작품이 아니라, 한국 관객이 깊이 공감하리라 생각되는 우아한 오브제를 엄선하고자 했다. 탁월한 창의성과 혁신, 정교하고 세련된 디자인 선택이 잘 드러나는 작품을 통해 티파니의 진면목을 보여주고자 했다. 티파니는 오래전부터 한국 예술, 특히 도자기의 뛰어난 청자 유약을 존중해 왔으며, 이번 전시는 그 존중과 애정을 담아 보다 절제되고 시적인 방식으로 헤리티지를 풀어냈다.”

-런던·도쿄 전시와 비교할 때 서울 전시의 차별점은.

“서울 전시는 기존 전시들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으로 기획됐다. 앞선 전시들이 과거의 위대한 아카이브 피스를 폭넓게 소개했다면, 이번엔 하우스의 ‘창의성에 대한 사랑’과 ‘젬스톤에 대한 애정’에 초점을 맞췄다. 창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의 강렬하고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을 조명하고,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가 이끌던 시기의 예술적 마스터피스와 경이로운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줬다. 또 쟌 슐럼버제의 초현실적 상상력과 꿈의 세계를 탐구하는 섹션도 마련했다.”

-서울 전시를 위해 제작된 무궁화 크레스트는 어떤 의도에서 출발했나.

“한국 관객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다. 이렇듯 많은 티파니 아카이브의 보물을 한국에 선보이는 건 처음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티파니의 헤리티지를 새롭게 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들이 겸손하면서도 진심 어린 영감을 전해주기를 바랐다.”

-디지털 감성과 전통적 장인정신을 한 공간에 조화롭게 배치한 이유는.

“이번 전시의 시노그래피는 빛과 공간, 사운드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서울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목표로 했다. 나는 서울에서 매우 수준 높은 크리에이티브 인스톨레이션을 보아왔고, 이에 걸맞으면서도 티파니다운 우아함이 담긴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습니다. 관람객들이 티파니에 대해 이전에는 알지 못했을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그리고 주얼리가 지닌 감정적 힘이 오래 마음에 남기를 바란다.”

-한국 관객이 이번 전시에서 무엇을 느끼길 바라나.

“우리가 한국 관객 안에서 불러일으키고 싶은 감정은 결국 ‘사랑’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둔다. 영감·발견·매혹·열정. 이 모든 감정이 우리가 ‘위드 러브, 서울’에서 기리고 있는 창의적 혁신가들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다. 이 감정이 전시를 떠난 후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기를 바란다.”

“보석은 마법 같은 울림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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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레이놀즈 티파니 하이주얼리 다이아몬드 및 젬스톤 인수 부문 부사장. 사진 티파니

인터뷰 ㅣ 빅토리아 레이놀즈 티파니 하이주얼리 다이아몬드 및 젬스톤 인수 부문 부사장

티파니의 수석 보석학자이자 하이주얼리용 보석 인수를 총괄하는 빅토리아 레이놀즈(Victoria Reynolds) 부사장은 브랜드의 미학적 기준을 가장 가까이에서 세우는 인물이다. 세계 각지를 돌며 희귀 원석을 직접 발굴하고, 티파니 하이주얼리의 품질과 방향성을 결정하는 핵심적 역할을 맡아온 그는 지난 10월 말 ‘위드 러브, 서울’ 전시를 직접 찾았다. 전시장을 둘러본 뒤 토크 콘서트에서 아카이브 피스와 브랜드 헤리티지를 소개한 그는 “이번 전시는 티파니가 1837년부터 이어온 창의성과 유산을 관객이 직접 체감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여러 작품이 전시를 위해 서울로 왔다. 이 가운데 티파니 헤리티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은 무엇이라 보나.

“쟌 슐럼버제의 유산을 기리는 ‘러브 오브 디자인’ 챕터가 핵심이다. 1941년 슐럼버제의 오랜 친구였던 다이애나 브릴랜드(1960년대 미국 보그 편집장)의 요청으로 제작된 ‘트로페 드 발리앙스’ 클립, 그의 해양 테마를 대표하는 ‘플뢰르 드 메르’ 클립, 그리고 하우스의 상징적인 디자인으로 꼽히는 ‘버드 온 어 락’ 브로치가 특히 중요하다. 자연과 환상을 결합한 그의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하이주얼리 개발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이번 전시에서 티파니의 미학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은 무엇인가.

“1960년작 ‘헷지 앤 플라워’ 네크리스다. 슐럼버제의 창작 에너지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의 작품으로, 자연의 생명력을 금속과 보석으로 번역한 그의 미학이 집약돼 있다. 보석 자체로는 65캐럿 모거나이트가 세팅된 1947년작 ‘쏜즈 클립’을 주목할 만하다.”

-티파니가 오랜 시간 현대성과 영속성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윤리적 원료 조달, 디자인 혁신, 장인정신의 확장이라는 핵심 가치를 유지해온 덕분이다. 시대 변화 속에서도 이 가치들을 지키며 새로운 세대와 교감하고 있다.”

티파니는 매년 하이주얼리 컬렉션 ‘블루 북(Blue Book)’을 선보인다. 레이놀즈 부사장은 이에 사용되는 모든 보석을 직접 선별하며, 브랜드의 창의성과 장인정신을 구현하는 제작 과정 전반에 깊게 관여한다.

-보석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주얼리는 탁월한 디자인, 정교한 장인정신, 특별한 스톤이라는 세 요소로 완성된다. 보석은 자연이 만든 기적에 가까운 존재이기에, 각 스톤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와 아름다움을 존중한다. 나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티파니의 기준에 부합하는 보석만을 찾는데,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채굴된 최고 품질의 스톤이면서 동시에 ‘마법 같은 울림’을 줘야 한다. 이 감정이 선택의 결정적 기준이 된다.“

-블루 북 컬렉션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나.

“디자인팀의 무드 보드에서 시작한다. 컬렉션의 색감과 질감을 정한 뒤 이에 맞는 보석을 1년 이상에 걸쳐 손으로 선별한다. 이후 디자인팀이 각 스톤의 개성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개발하며 블루 북 특유의 세계가 완성된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숙련된 장인들의 기술 없이는 블루 북이 완성될 수 없다. 올해 선보인 ‘씨 오브 원더(Sea of Wonder)’ 컬렉션의 웨이브 네크리스는 구조적 난이도가 높아 수백 차례의 테스트를 거쳐 완성됐다. 장인정신의 정교함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앞으로 공개될 블루 북 컬렉션은 어떤 모습일까.  

“티파니는 앞으로도 슐럼버제의 창작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유산을 기반으로 하되 새로운 조형과 기술을 더한 진화된 블루 북을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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