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기독교∙이슬람 청춘남녀도 온다…그 절에 가면 절반이 짝 찾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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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남녀 이어주는 ‘나는 절로’ 도륜 스님

지난 15일 ‘나는 절로’ 수덕사 편에서 만난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 도륜 스님은 “결혼하려는 간절함이 최고의 스펙”이라고 강조했다. 김정훈 기자
10대 10. 남녀가 이렇게 마주 앉았다. 열전이 따로 없다. 방법은 대체로 이렇다. 눈짓으로 운을 떼고 몸짓으로 간을 보다가 넌짓 정을 건넨다. 그런데 이 ‘남녀상열지사’가 벌어지는 곳이 경건한 절간이다.
지난 15일. ‘나는 절로’ 수덕사 편이 펼쳐졌다. 모 방송사의 ‘나는 솔로’를 패러디한 미혼 남녀 만남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다. 주말 나들이객 1000여 명의 시선이 이들에게 꽂혔다.
“허허, 가방도 좀 들어주고 하셔야 ‘신호’가 가죠. 그래야 ‘감응 신호’로 되돌아오는 법입니다. 오늘은 시그널 출력이 약해 보여 밀당이 살짝 걱정되네요.” 누군가의 ‘연애박사급’ 분석에 슬쩍 돌아보니 도륜 스님이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인 도륜 스님은 ‘나는 절로’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태어났느냐”는 질문보다 “아니, 스님은 솔로이신데 어떻게…”라는 궁금증이 저들 스무 명의 남녀상열지사만큼이나 샘솟았다.

지난 15일 ‘나는 절로’ 수덕사 편에 참가한 남성이 여성의 가방을 대신 끌어주고 있다. 김정훈 기자
인기 만만찮아…최고 경쟁률 109대 1
- 이른바 ‘솔로’이신데, 솔로 탈출을 돕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 “저희는 출가자입니다. ‘솔로’의 길을 스스로 택했어요. 역설적일까요. 번뇌를 내려놓고 세상을 관조하는 지혜를 얻습니다. 세속적인 이해관계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행복한 인연을 발원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어요. 저희의 ‘솔로’ 생활은 오히려 이 일에 더욱 깊이 집중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 관조라면, 감이 딱 오십니까.
- “오늘 일찍 서울 조계사에 버스로 출발했는데 남녀가 나란히 앉게 했죠.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자리도 바꿨고요. 이런 자리에서 ‘신호’가 오가며 사실상 커플이 되기도 해요. 이번엔 나이가 좀 있어서인지 신호가 늦게 잡히는 감이 있네요.”

지난 11월15일 '나는 절로-수덕사 편'에 참가한 남녀 20명이 대웅전 앞에서 사찰의 연혁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수덕사를 찾은 나들이객 1000여 명은 이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김홍준 기자
이번 수덕사 편은 기존의 2030세대 대신 35~49세를 대상으로 했다. 유철주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전문위원은 “40대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강했고, 나이 제한을 둘 필요도 없겠다 싶었다”고 전했다. 40세인 ‘남자 1호’ 곽종헌씨는 “조계종의 자비나눔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가 수덕사에서 만남을 갖는다기에 조마조마 신청했다”며 “나름대로 간절함이 있었는데, 여자분도 같은 마음으로 만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곽씨 같은 신청자 1012명 중 20명이 추려졌다. 경쟁률은 50.6대 1. 지난 9월 열린 신흥사 편에서는 신청자 2620명 중 24명이 참가, 자그마치 109.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중 절반인 12명이 커플이 돼 절을 나섰다. ‘나는 절로’의 커플 매칭 비율은 50%에 육박한다.
- 인기가 만만찮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 “사찰이 주는 진중함과 신뢰감이 큽니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도 심어주고요. 그래서 가볍게 만남을 즐기기보다 진짜 인연을 찾고자 하는 분들이 옵니다. 만남의 질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사찰에서 한다고 종교에 제한을 두진 않습니다. 기독교·이슬람교 신자들도 옵니다. 소위 말하는 ‘스펙’도 크게 따지지 않습니다.”
- 그래도 선정 기준이 있을 텐데요.
- “굳이 말씀드린다면 저희는 (남자 1호처럼) ‘간절함’을 따집니다. 그 간절함이 만남을 넘어 연애-결혼-출산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겁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당면한 과제에 저희 복지재단이 적극 동참하는 무대가 ‘나는 절로’입니다. 그래서 비용도 무료입니다. 커플이 생기면 잘되도록 용돈도 줍니다. 현커(현실 커플) 금일봉이라고 하죠(웃음).”
도륜 스님은 ‘금일봉이 얼마냐’는 질문에 미소를 잃지 않고 “20만원”이라고 답했다. ‘현커 금일봉’은 지난해 11월 백양사 편에서 비롯됐다. 백양사 주지 무공 스님이 봉투에 20만원씩 넣어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한 일곱 쌍의 커플에게 전달한 게 관행으로 남았다. 그 커플 중 하나가 1년 만인 지난 1일 다시 백양사를 찾았다. “저희 결혼해요”라며 무공 스님에게 청첩장을 전하면서다. 무공 스님은 “왜 이제 오셨느냐”며 버선발로 뛰어나갔단다. “백양사 커플이 아주 적극적이에요. 혼인신고도 지난 9월 일찌감치 해서 낙산사(지난해 10월) 커플의 10월 결혼식보다 한발 빨리 ‘나는 절로’ 결혼 1호가 됐죠.”

지난 11월 15일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열린 '나는 절로-수덕사 편'에서 춤을 추거나(왼쪽 위, 남자 7호), 턱걸이를 하는(오른쪽 위, 남자 9호) 등 장기자랑으로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간절함과 적극성. 남자 7호 김현수(40)씨는 자기소개 시간에 “율동을 준비했다. 양말도 벗겠다”고 말한 뒤 현란한 춤으로 전각의 바닥을 달궜다. 남자 9호는 “보여드릴 것은 없고, 팔굽혀펴기는 식상하니 턱걸이를 하겠다”며 심연당 창틀에 매달리기도 했다. 여자 2호도 요즘 밈으로 핫한 ‘내 골반이 멈추지 않아’ 춤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도륜 스님은 “허허” 추임새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 왜 이름이 ‘나는 절로’입니까.
- “이번 수덕사가 14회째입니다. 2년 전인 2023년 11월에 시작했죠. 그 이전엔 템플스테이라는 이름으로 만남을 이어줬는데, 너무 엄숙한 분위기인 거예요. 전임 대표이사인 묘장 스님이 무게를 빼자고 하더군요. 저도 안동 봉정사 주지로 있으면서 복지재단의 여러 일에 도움을 주고 있을 때였죠. 인스타그램에 관련 내용을 포스팅했더니 누군가 ‘그럼 나는 솔로가 아니고 나는 절로네~’라는 댓글을 달더군요. 모두 무릎을 탁 쳤습니다. ‘나는 절로 간다’에 ‘나는 (저)절로 짝이 생긴다’는 의미가 더해진 거죠.”
- ‘인연’을 맺어주는 행사인데요.
- “불교에서 인연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인(因)은 결과를 낳는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남녀가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 진지하게 만나고 싶은 의지 등이 ‘인’이 될 수 있죠. 연(緣)은 그 인(因)을 돕는 간접적인 조건입니다. ‘나는 절로’ 행사를 통해 만날 기회, 차담을 통한 대화 등이 ‘연’이 됩니다. 인과 연이 합쳐져야 비로소 과(果)가 생겨납니다. 불교의 인연은 ‘우연히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과 주변의 조건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소중한 관계입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템플스테이 시절부터 이번 수덕사 편까지 총 48회의 만남이 이어졌다. 백양사 결혼 커플의 여성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날 뽑아달라’고 적극 나서더니 결국 백년가약을 맺었다. 내년에 결혼을 약속한 커플은 각자의 친구를 소개해 주기로 했는데 또 다른 ‘나는 절로’ 편에서 만나 커플이 됐다. 도륜 스님은 “어차피 만날 인연이었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 ‘스님들이 수행은 안 하고 중매에만 열중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행사를 ‘현대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자비행의 실천’이라고 봅니다. 불교는 재가자들의 행복한 삶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저출생과 청년의 고독이란 큰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중매가 아니라 인연의 밭을 일궈주는 신성한 봉사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간절함이 있지만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청년도 있는데요.
- “인연은 강제로 맺어지는 게 아닙니다. 인연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만남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잠시 내려놓으라고 말씀드립니다.”
대학 후배와 ‘쌍둥이 출가’ 지금도 화제

‘나는 절로’ 참가자들이 수덕사 심연당에서 차를 마시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김정훈 기자
- 올해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설립 30년입니다. ‘나는 절로’ 행사만 있진 않을 텐데요.
- “30년간 ‘나는 절로’처럼 세상에 알려진 행사도 있지만 묵묵히 전국 180여 개에 달하는 노인·장애인·아동 복지시설도 운영해 왔습니다. 국내외 긴급 재난 구호 활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난치병 어린이 돕기 사업도요.”
도륜 스님은 불교계에서 ‘쌍둥이 출가’로 유명하다. “아, 제가 쌍둥이란 얘기가 아니고 한날한시에 대학 후배와 같이 출가했는데, 형제나 가족 출가보다 더 드문 일이라 지금까지도 회자하고 있어요.” 안동 부석사에서 출가해 근일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있던 어느 날 사형들이 모두 ‘수행’을 위해 사라졌단다. 절 업무를 볼 사람이 없어 ‘할 수 없이’ 살림을 도맡으면서 엉겁결에 사판(事判) 스님이 됐다. “풋중이 불자들을 대하다 보니 속에서 짜증이 자라나는 거예요. 그런 와중에 근일 스님께서 ‘이것도 수행’이라고 일갈하니 퍼뜩 정신이 들더라고요. 참자, 가라앉히자, 친절해지자. 그게 제 수행이었어요.”
- 그래서 친절해지셨습니까.
- “사람, 아니 스님이 좀 됐죠(웃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절은 ‘친절’입니다. 종교는 모두에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해요. 불교의 대중화 노력도 그중 하나입니다.”
저녁 공양이 끝나고 사위에 어둠이 내린 때. 남녀 몇이 짝을 이뤄 경내를 거닐었다. “어, 점점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인데요.” 도륜 스님이 남자 7호와 여자 2호의 만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솔로에겐 옆구리가 시린 계절. ‘친절’에서 열린 ‘나도 절로’에선 이 둘을 포함, 모두 3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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