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첫키스는 향단과, 첫날밤은 춘향이 안았다…K무용극의 파격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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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의 춘향과 향단, 몽룡과 학도의 4각 관계를 춤으로 그린 ‘춘향단전’. [사진 국립국악원]

지난주 서울 서초동에서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무용‘극’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국립발레단의 ‘지젤’과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춘향단전’이다. 1841년 초연된 불멸의 클래식발레 ‘지젤’은 종갓집 격인 파리오페라발레단(POB) 부예술감독이었던 고(故) 파트리스 바르가 최대한 원조에 가깝게 만든 버전을 국립발레단이 2011년부터 올리고 있고, 이번 시즌엔 POB 에투알 박세은 등판으로 원조의 맛에 한발 더 다가선 것으로 호평받았다.

국립국악원 무용단과 창작악단이 힘을 합쳐 6년 만에 내놓은 무용극 ‘춘향단전’도 고전 중의 고전 ‘춘향전’을 원작 삼은 140분짜리 대작인데, 원조가 아닌 파격을 택했다. 안무와 연출을 겸한 김충한 무용단 예술감독은 ‘몽룡의 첫키스 상대는 향단이었고, 변학도는 추락하는 춘향을 구해주며 눈을 맞춘 인연이 있었다’는 설정으로 고전을 비틀었다. 종묘제례악, 임인진연 등 전통의 재현을 본업으로 하는 국립국악원으로선 이례적인데, ‘지젤’과 같은 생명력을 가진 무용극이 전무한 한국무용계의 야심찬 도전이라 주목할 만하다. 3회 공연 전석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성황리에 끝났으니 화제몰이에는 성공했다.

프롤로그부터 요즘 대세인 굿을 내세워 대중성을 노렸다. 춘향 소재의 무대에서 본 적 없었던 무당춤 퍼포먼스가 시작부터 눈길을 붙드는 강렬한 서막이었다. 막이 걷히자마자 등장한 건 춘향과 몽룡이 아닌 신관사또 부임 행차. 무관들의 북춤과 변학도의 장검무가 ‘나쁜 남자’의 매력을 어필했고, 가인전목단 풍 궁중무용이 향연을 묘사했다. 놋다리밟기 춤을 추다 추락하는 춘향을 학도가 구해주고, 학도의 생일잔치엔 오고무와 쌍검무가 나오는 등, 서사의 마디마다 각종 전통춤을 요령있게 배치했다.

독특한 창작 안무도 흥미로웠다. 강강술래를 모티브로 한 라인댄스가 대표적이다. ‘지젤’의 백색발레가 떠오르는 군무진이 보폭을 조금씩 다르게 움직이며 마치 회전무대가 도는 듯한 환각 속에 춘향과 향단, 몽룡과 학도의 동상이몽을 교차시킨 구성과 안무가 절묘했다. 춘향과 몽룡의 첫날밤 실루엣 앞에서 향단이 몽룡의 갓을 안고 추는 갓춤 독무도 인상적이었다.

미니멀한 무대와 대조적으로 음악은  ‘투머치’였다. 서정적인 사랑가 장면에 화려한 연회 음악이 깔렸고, 향단이 매달리고 몽룡이 뿌리치는 쓸쓸한 장면에도 여백이 없었다. 완급 조절을 잊은 듯 시종 텐션을 높인 퓨전국악 풍 관현악 반주에 한국적 절제미는 느낄 수 없었다.

드라마도 갈짓자를 그렸다. 욕망과 질투의 4각 관계로 도발하면서도 ‘지고지순한 사랑의 승리’라는 원전의 주제를 배반할 순 없었던 것. 향단이 짝사랑의 고통 끝에 불을 지르고 비극으로 끝나는 척 결혼식 해피엔딩으로 급선회한 에필로그는 당황스러웠다. 춘향에게도 향단에게도 몰입할 수 없는 전개였지만 “국악원 작품다운 결말이라 다행”이란 반응이 대세였다. 고전의 생명력은 고전 그 자체에 있음을 반증한 셈이다. ‘불멸의 K무용극’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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