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민족자결주의에 피압박민족은 배제됐지만...현대 세계 만든 1919년 파리 강화회의[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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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919
마거릿 맥밀런 지음
허승철 옮김
책과함께
전체 분량이 976쪽이나 되는 이 책의 서문은 ‘1919년 파리는 세계의 수도였다’로 시작한다. 이어 ‘강화회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였고, 중재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권력이 막강한 사람들이었다’라는 설명으로 파리 강화회의의 성격과 의미를 요약한다.
1919년 1~6월에 걸친 강화회의는 그해 6월 베르사유조약 체결로 이어지면서 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했다. 역사학자로 캐나다 토론토대학 트리니티대와 영국 옥스퍼드대학 세인트앤터니스대 학장을 지낸 지은이는 사료를 풍부하게 활용해 관련 인물들과 회의 과정, 그리고 주변 상황을 세밀화처럼 상세하게 그렸다. 풍부한 사진과 지도 자료로 강화회의 과정과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점도 미덕이다.

왼쪽부터 데이비드 로이드조지 영국 총리, 비토리오 올란도 이탈리아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 1919년 5월 27일 파리 강화회의 때 모습. 퍼블릭 도메인에 속하는 이미지.
30여 개국이 초청된 회의는 승전국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조지 총리,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오를란도 총리가 주도했다. 앞서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비롯한 14개 원칙을 내놨지만, 정작 조선‧베트남을 비롯한 피지배민족은 배제됐다. 전쟁에 군대를 파병해 자치권 확보에 다가간 인도의 대표단조차 영국 측의 일부로만 간주됐다. 지은이는 미국에 있던 (윌슨의 제자)이승만은 여권을 발급받지 못해 파리로 가지 못했고, 베트남의 호찌민은 4대 강국으로 이뤄진 강회회의 최고평의회에 독립청원을 보냈다고만 기술했다.
민족자결주의라는 명분은 조선에서 3‧1운동이 벌어진 요인의 하나가 됐지만, 강화회의에선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튀르크 등 3개의 패전 제국의 해체 명분으로 활용됐을 뿐이다. 결국 회의는 피를 흘렸던 승전국들의 외교 잔치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강화회의는 새로운 세계를 구성했다. 제국이 사라진 공간에 체코슬로바키아와 유고슬라비아라는 신생국이 탄생했고, 사라졌던 폴란드가 부활했으며, 유럽의 국경선이 새롭게 확정됐다. 중동은 위임통치 속에서 미래를 꿈꿀 기반을 마련했다. 이런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지도자 4명의 고뇌와 협상, 그리고 꿈은 20세기 외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의 하나다.
주목할 점은 독일에 가혹한 베르사유 협정 조항들이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제공했다는 그간의 평가에 대해 지은이가 부정적 입장이라는 사실. 지은이는 독일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프랑스의 영토 요구를 영국과 미국이 새로운 전쟁이 나면 참전하겠다는 미래 안전보장 약속으로 무마시키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강화회의가 현대 세계를 형성하고 1차 대전 이후 지속적 평화를 구축하려는 노력과 의도를 담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동시에 오늘날 유럽과 중동 등의 지정학적 갈등과 분쟁의 뿌리가 여기에서 비롯한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된다. 외교협상만으론 전쟁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여담으로, 로이드조지 당시 영국 총리는 지은이의 외할머니의 아버지다. 원제 Paris 1919: Six Months That Change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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