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EU, 러 동결자산으로 우크라 지원…총대 멘 벨기에 “왜 우리만?”

본문

우크라이나 지원 위해 유럽연합(EU)이 승부수를 던졌다. 역내에 동결해 둔 러시아 국유 자산을 담보로 우크라이나에 900억 유로(약 153조원)를 지원하기로 하면서다. 하지만 당사국 러시아뿐 아니라 총대를 멘 벨기에에서도 반발이 상당해 EU의 해당 구상이 실현되기까지 난관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btfa688c36613b75ce9cdf4428424fa960.jpg

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왼쪽)과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이 2026~2027년 우크라이나 재정 지원 방안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2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재정·군사적 수요의 3분의 2를 EU가 책임지겠다”며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6~2027년 우크라이나 외부 재정 수요는 약 1370억 유로(약 235조 원)다. 이 중 3분의 2를 EU가, 나머지 3분의 1은 미국 등 국제 파트너가 각각 담당하는 구조다.

자금 조달은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을 담보로 한 ‘배상금 대출’ 형식이라고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설명했다.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담보로 EU가 시장에서 자금을 빌려 우크라이나에 무이자 대출을 해주고, 상환은 러시아가 나중에 전쟁 배상금을 낼 때 우크라이나가 그 돈으로 갚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사실상 상환의무가 없는 셈이다.

EU가 동결해 놓은 러시아 국유 자산은 총 2100억 유로(약 360조4000억 원)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1800억~1900억 유로가 브뤼셀에 본사를 둔 중앙증권예탁기관(CSD) 유로클리어(Euroclear)에 묶여 있다고 한다.

EU는 지금껏 동결된 러시아 자산의 원금에는 손대지 않고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등을 토대로 우크라이나 대출을 설계했다. 반면 이번 EU안은 동결 원금 자체를 담보로 대출을 띄우는 방식으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에 없던 대출 방식을 관철해야 하는 만큼 집행위는 만장일치 원칙을 우회했다. 일각에서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집행위가 해당 조약을 근거로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을 러시아 중앙은행에 이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긴급 입법을 제안했다”며 “EU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비상조치라는 명분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비상조항을 발동하면 러시아 제재 연장과 자산 동결 유지를 위해 만장일치 대신 가중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하는 게 가능하다. 가중다수결은 회원국의 인구, 경제력, 영향력 등을 기준으로 표 계산을 달리해 가결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로이터는 “27개 회원국 EU 전체 인구의 65% 이상을 차지하는 최소 15개국이 찬성하면 통과할 수 있다”고 봤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인 헝가리나 슬로바키아 등 친러시아 성향 국가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조치다. 사실상 유럽 내 러시아 자산을 무기한 동결 상태로 묶을 수 있다.

변수는 벨기에의 반대다. 대출에 따른 법정 분쟁과 러시아 보복이 발생한다면 유럽 내 러시아 자산의 3분의 2를 갖고 있는 유로클리어의 소재국 벨기에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막심 프레보 벨기에 외무장관은 이날 “집행위가 내놓은 문서는 우리 우려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며 “돈은 쓰면서 위험은 우리에게만 떠넘기는 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집행위는 “회원국들이 제공하는 보증으로 EU의 차입은 전적으로 보호되고 부담도 공정하게 나뉜다”는 입장이지만 EU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FT는 EU 관료를 인용해 “내부 시장에 명백한 경제 비상 상황이 없는 상태에서 비상조항을 확장하는 건 ‘정신 나간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bt087563370891b3ebd3db5b49acd3bfcc.jpg

막심 프레보 벨기에 부총리 겸 외무장관. AFP=연합뉴스

러시아를 자극해 파장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러시아 정부에 보복 패키지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도 지난 10월 “자산을 훔치거나 잘못 사용하는 데 관여한 사람과 국가는 모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집행위의 해당 구상은 오는 18~19일 EU 정상회의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AFP 통신은 “회원국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어 집행위의 뜻이 관철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1,711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