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8000원 맛집 지도 나눠요" "휴지 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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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비가 부담인 새내기들에게 유용한 지도 공유합니다.”
고려대 22학번인 조혜준(20)씨가 지난해 학내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다. ‘유용한 지도’는 그가 자주 가는 식당 중 1만원 이하에 식사할 수 있는 ‘가성비’ 식당을 모은, 이른바 ‘안암지도’였다. 1만원 이하 식당을 모은 ‘만원클럽’, 8000원 이하 식당을 모은 ‘8000클럽’ 등 두 개의 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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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재학생이 만든 안암지도 '8000클럽'. 지도 위에 8000원 이하로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을 표시해 두었다. [네이버 캡처]

조씨는 “생활비를 정리해보니 2022년에 비해 지난해 식비가 크게 오른 게 느껴졌다”며 “주변에서도 식비 걱정을 하는 친구들이 많길래 가격대별로 나누어 식당을 알려주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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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낮12시, 고려대학교 재학생이 만든 '안암지도' 1만클럽(1만원 이내로 사먹을 수 있는 식당)에 속한 식당 앞에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박종서 기자.

1만원 이하 밥집 찾아 나선 학생들

대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커뮤니티에서 좋아요 286개를 받았고 1086건 스크랩됐다. 지난 12일 낮 12시, ‘8000클럽’에 속한 고려대 인근 식당을 기자가 방문했다. 이곳에서 만난 고려대 19학번 이지원(23)씨는 “하루 최소 두끼를 밖에서 먹는데 1만원 이상 식사는 학생 입장에서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는 “가성비 식당들은 조금만 늦게 가도 자리가 없다. 체감상 새내기 때보다 가격이 20% 이상 오른 것 같다”며 “강의와 강의 사이 짧은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는데 가성비 식당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그냥 굶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8000클럽’ 지도는 가성비 맛집을 잘 골라 만든 지도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의 식비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려대생 황세현(24)씨는 “코로나 이전에는 제대로 대접할 때 빼곤 1인당 1만 원어치를 먹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밥 다운 밥을 먹으려면 1만원이 그냥 넘어간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입학 때 한 줄에 3000원 하던 참치김밥이 지금은 4500원이다. 싼 맛에 먹던 김밥이 5000원에 가까워지니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물티슈 공구해요” 대학 공동구매 카톡방에 수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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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만들어진 서강대학교 학생들의 공동구매 오픈카톡방. 한 학생이 물티슈 공동구매를 제안했다. 이 대화방에서는 물티슈 외에도 음식물쓰레기통, 휴지 등의 자취용품 공동구매 제안 글이 올라왔다. [카카오톡 캡처]

지난해 6월 개설된 ‘서강대 물품 공동구매’ 오픈 카톡방에서는 학교 로고가 그려진 점퍼 외에 휴지, 물티슈, 닭가슴살 등의 공동구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공동구매에 참여해봤다는 오상헌(25)씨는 “공동구매한 물품을 학교 특정 장소에 두고 알아서 가져가는 식이라 싸고 편리하다. 자취생이어서 혹시 필요한 물건을 공동구매하지 않는지 대화방을 나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학생 이현우(23)씨는 “할인 정보에 관심이 많은데 대부분 대용량이라 공동구매를 신청한 적이 있다”며 “학과별로 만든 ‘사담(私談)방’에서도 공동구매가 자주 이뤄진다”고 했다.

도시락 사진도 공유…‘동병상련’ 거지방

생필품 절약에 나선 MZ세대는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하기도 한다. 연세대 에브리타임 커뮤니티 내 ‘거지 게시판’에 자신이 만든 도시락 사진을 올린 박모(24)씨는 “녹록진 않아도 도시락 먹고 공부하고, 하루하루 즐겁게 산다는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도시락 사진에는 “형님이 ㄹㅇ 맛잘알 (정말 맛을 잘 아신다)”는 등의 응원 댓글이 여럿 달렸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박씨는 “힘든 상황에서 게시판을 통해 동병상련의 감정과 응원을 받는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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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에브리타임 '거지게시판'에 올라온 재학생 박모(24)씨의 게시글. 박씨는 올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식비를 아낄 생각으로 도시락을 싸고 있다. [독자 제공]

이 게시판에는 “약간의 고생으로 네이버페이 만 원 받는 법”, “신입생 점심 나눔 언제 하나요?”, “딸기 500g을 받았는데 제가 지금 아파 먹지 못해 나눔 합니다” 등의 글이 올라온다. 한 학생은 “거지 게시판을 보면서 나름대로 힐링을 많이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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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에브리타임 거지게시판에 올라온 딸기 나눔글. 해당 게시판에는 쿠폰 정보, 세일 정보, 물품 나눔 등의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에브리타임 캡처]

알뜰면서도 다정다감한 MZ세대의 모습을 전문가들은 ‘정보화 사회에 최적화된 모습’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치를 두는 대상에 대해서는 ‘가치소비’를 하며 돈을 아끼지 않지만, 생필품이나 식비에는 손해 보지 않는 ‘최선의 구매’를 하기 위해 정보력을 동원하는 MZ세대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MZ세대는 정보 공유를 통해 자신이 누군가를 도왔다는 점에 대해 만족감 얻고, 이런 능력이 때로는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며 “정보화 사회에서 기업들의 생존 방식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잘 정리해서 적재적소에 공유하는 것이기에 MZ세대의 능력은 활용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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