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50년 전 태어난 영국 숙녀의 책, 호주 할머니의 삶 바꾸다[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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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마련한 '자기만의 방'에서 제인 오스틴을 통해 제2의 삶을 꾸린 저자 루스 윌슨. 사진 북하우스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북하우스

책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

평생 평탄한 삶을 누린 줄 알았던 호주의 주부 루스 윌슨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60세 생일 무렵이었다. 메니에르 증후군으로 난청ㆍ메스꺼움ㆍ어지럼증을 느꼈다. 우울증을 겪으며 문득 가까운 이들이 낯설어지기도 했다. 그가 잃었던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며, 나만의 삶을 추구하기로 결심한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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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초상이 새겨진 영국 10파운드 지폐. 아래에 "독서만한 즐거움은 없어!(I declare after all there is no enjoyment like reading!)"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사진 블룸버그

윌슨이 회복의 치유법으로 택한 것은 책 읽기, 정확히는 19세기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1775~1817) 다시 읽기였다. 시골집에 ‘자기만의 방’을 마련, 오스틴 작품과 홀로 마주했다. ‘자기만의 방’은 역시 오스틴의 팬이었던 버지니아 울프(1882~1941)의 동명 에세이에서 따왔다. 저자는 70세에 졸혼하고 시골집에 들어가 상실감ㆍ외로움ㆍ후회ㆍ불행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 결과 2021년 88세 나이로 시드니대에서 독서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90세인 본인이 독서 치유 여정을 담은 이 책을 펴냈다. 문학이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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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은 『이성과 감성』『오만과 편견』『맨스필드 파크』『에마』『노생거애비』『설득』 등 6편의 소설을 남겼다. 19세기 영국 사회를 암묵적으로 비판하면서 그 시대 여성의 삶과 도전을 세밀하게 담았다. 중산층 여성이 규범적 사회에서 자신을 옥죄는 불합리를 극복하고, 새롭게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을 실감 나게 그렸다. 독신이냐 결혼이냐, 사랑이냐 조건이냐를 놓고 갈등하는 여성의 심리와 인생 도전극을 서구 문학의 한 장르로 만들었다. "영문학사 최초의 위대한 여성 작가""지난 1000년간 최고의 여성 문학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페미니즘 문학의 기초를 쌓았다.

250년 전 12월 16일에 태어난 오스틴은 우리로 치면 조선 정조~순조 때, 서구사에선 미국의 독립,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 전쟁기의 작가다. 변혁기 사회를 살아가면서 오스틴은 로맨스 속에 인간관계와 자아에 대한 성찰을 함께 담았다. 오래전의 영국 숙녀가 쓴 작품은 한국어를 포함한 수많은 언어로 옮겨지며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오만과 편견’‘엠마’ 등 영화와 드라마ㆍ연극ㆍ뮤지컬 등 다양하게 재생산됐다. 인간 심리의 설득력 있는 묘사로 시간을 뛰어넘어 고전으로 남았다.

지은이가 오스틴 다시 읽기를 제2 인생 만들기의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이 지점 덕분이다. 그는 오스틴 소설에서 인간관계의 복잡성, 우정의 가치, 사랑의 의미, 삶의 균형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17세에 처음 만났을 때는 가정 희극으로 봤던 『오만과 편견』은 30대에는 결혼의 조건과 친밀함을 본질을 숙고하는 화두가 됐다. 이제는 ”이 순간까지 나는 나 자신을 알지 못했다“라는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의 말을 자신에게 돌려주며 스스로 위로한다. 『이성과 감성』을 통해서는 이성과 감성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며 인간은 둘 다를 포괄하며 성장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스틴 문학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감정과 결정을 바탕으로 그간의 자기 삶을 복기했다. 이를 통해 내면의 목소리를 되찾고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삶을 조각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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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원작을 영화로 한 로맨스 영화 `오만과 편견`(2006)의 한 장면. 사진 UPI코리아

적지 않은 나이에도 저자는 오스틴의 작품 속 여주인공처럼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새로운 삶의 주인공이 됐다. 오스틴 읽기를 통해 작품 속 캐릭터들이 주는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두 번째 기회는 언제나 찾아올 수 있다’는 교훈을 현실에서 증명한 셈이다. 그리하여 그는 네 자녀, 다섯 손주, 여덟 증손주에게 넓게, 깊게 읽기를 독려하며, 졸혼한 남편과 따로 또 같이 살며 새로 찾은 삶을 꾸려가고 있다. 지은이표 독서 치유법의 완성이다. 원제 'The Jane Austen Rem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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