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잔인한 아테나, 불안한 헤라… 유머 한 스푼 더한 ‘여신’의 재발견[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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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살벌하고 웃기는

책 『아름답고 살벌하고 웃기는』

나탈리 헤인스 지음
홍한별 옮김
돌고래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아슬아슬하게 살갗이 드러나는 옷을 휘감은 미모의 여성. ‘여신’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다. 저자는 이런 여신의 모습이 남성 작가들에 의해 탄생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글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가부장적인 해석 속에 가려졌던 여신들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한다.

병적으로 질투심 많은 ‘헤라’의 무시무시하고 끈질긴 복수는, 사실 자신이 언제든 남편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불안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의 원인은, 인내심이 바닥난 아내가 아니라 성질 나쁘고 여자를 밝히는 남편 제우스에 있다고 꼬집는다. 그리고 이러한 헤라의 처지는 남편과 달리 이혼을 청구할 수 없었던 일반적인 고대 그리스 여성의 불안함과 닮아있다는 점도 밝힌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화로와 가정의 여신 ‘헤스티아’에도 눈길을 준다. 헤스티아는 유명한 일화나 조각상도 없으며, 분노를 드러내거나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화덕이 그리스의 모든 집, 신전의 중심에 있음을 강조하며 “무언가를 ‘하는’ 여신이 아니라, 늘 ‘있는’ 여신”이며, “따뜻한 귀가, 갓 구운 빵, 그리고 어둠 속의 빛” 같은 존재라고 강조한다.

지혜의 여신이자 영웅의 수호자인 아테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면모까지 가감 없이 소개한다. 아테나는 자기가 아끼는 자가 아니라면 망가지고 죽더라도 개의치 않고, 심지어는 영웅 아이아스의 타락을 지켜보며 즐거워하기까지 한다. 자신은 어머니가 없이 태어났으니 결혼을 제외한 모든 일에서 남자의 편이라고도 말한다.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저자의 유머와 통쾌한 화법이다. 그는 창작의 힘을 나눠주는 존재이면서도 예쁘고 춤추고 노래한다는 이유로 과소평가 받는 무사이(뮤즈)들이 느낄 불쾌감에 대해 “내가 자란 동네에서는 이건 그냥 싸우자는 거”라고 정리하는 식이다. 그리스 여신을 오늘날 거리를 걷는 여성들처럼 친근하고 신선하게 소개한 저자는 BBC 라디오에서 10년 넘게 ‘고전 스탠드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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