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원팀' 강조하며 봉합 나섰지만…외교·국무 vs 통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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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외교당국이 16일 대북 정책 조율을 위한 협의를 시작했지만,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이를 사실상 '보이콧'했다. 자칫 한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가 한 축을 이루고 통일부가 이에 맞서는 구도가 연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대통령실은 외교부와 통일부에 자제를 주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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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오른쪽)과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가 1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에서 악수하는 모습. 공동취재단=연합뉴스.

외교부는 이날 협의의 공식 명칭을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후속 협의’라고 밝혔다. 이는 해당 협의의 명칭에 '북한'이 들어가기를 꺼리는 통일부의 입장을 반영한 결정으로 보인다.

앞서 외교부는 이번 협의에 대해 “팩트시트 후속 논의 차원”(지난 12일)이라고 설명했고, 통일부는 전날 이를 명분 삼아 “외교 현안 협의 성격이므로 통일부는 불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교부가 이번 협의를 ‘정상회담 후속 협의’라는 보다 포괄적인 틀로 규정한 건 '통일부 빠진 대북 정책 논의'가 불러올 논란을 의식한 결정으로 보인다.

다만 실제 협의는 북한과 관련한 다양한 현안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팩트시트상 한반도 관련 한·미 간 제반 현안이 포괄적으로 논의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팩트시트에서의 '북한 관련 합의사항'을 열거했는데 여기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포기 등 국제적 의무 준수 촉구" 등이 포함됐다.

또 "한·미는 향후 한반도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긴밀한 공조가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각급에서 소통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면서다. 미국은 그간 대북 정책 추진과 관련해 한·미가 속도를 맞추는 데 강조점을 둬 왔는데, 이날 "긴밀한 공조"와 "소통 강화"를 부각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날 협의에는 정연두 외교부 외교전략정보본부장과 케빈 김 주한 미국 대사대리가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한국 측에선 통일부가 빠진 채 백용진 한반도정책국장을 비롯해 북핵·북한 문제를 다루는 외교부 당국자와 국방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미국 측 참석자 면면을 봐도 이번 협의의 관심사가 드러난다. 댄 신트론 국무부 부차관보 대행과 마리아 샌드 국무부 북한팀장, 브라이언 콕스 국무부 산하 정보조사국(INR) 고위 정보 분석가 등이 참석했다. 특히 스콧 존슨 미 전쟁부(옛 국방부) 한국 지역 책임자, 앤소니 핸더슨 주한미군 전략기획정책 담당(준장)이 참석해 북한군 동향을 포함한 한반도 안보 전반이 논의됐다는 점을 시사했다. 한편 조 스코필드 미 국무부 법무실 변호사 겸 법률자문관도 참석했는데, 대북 제재가 법률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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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 장진영 기자.

이처럼 대북 정책의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빠진 채 협의가 진행되면서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려는 본래 취지가 약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미 외교당국만 유사한 입장을 공유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외교부와 통일부는 정부의 '원팀'으로서 외교안보 분야에 있어서 긴밀히 협력·협의·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가 이날 보도자료에서 회의의 참석 주체를 "한·미 양국의 외교안보 부처"라고 명시한 것도 향후 통일부의 참석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통일부와 외교부는)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다"며 "접근법은 다른 게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조율해 하나의 입장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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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남북관계발전위원회 민간위원 간담회에 참석하는 모습. 뉴스1.

전날 통일부는 대북 정책과 관련 미국과 직접 협의하겠다고 사실상 '외교부 패싱'을 선언하고 전직 장관들은 "외교부에 대북 정책을 맡길 수 없다"고 공개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와 주도적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자주파’ 간 대립으로 다시 번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일단 외교부와 통일부 모두 봉합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이 국가안보실(NSC) 차원에서 두 부처 모두에 경고를 내렸다고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공개적 파열음이 나지 않도록 자중하라는 메시지가 외교부와 통일부에 전달됐다. 양 부처의 고위 당국자 간 면담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이날 미국 출국길에 “NSC에서 많은 논의를 하고 조율하고 있다. 정부가 ‘원 보이스’로 대외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NSC의 의장은 대통령이다. 사실상 이재명 대통령이 내린 경고 메시지로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북 정책의 주도권을 둘러싼 해묵은 부처 간 신경전이 쉽게 사드라들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이날 외교부 주도의 협의에 불참한 통일부는 오후에 별도로 주한 외교단과 국제기구 관계자를 대상으로 대북정책 설명회를 열고, 지지를 요청했다. 마침 오는 19일 외교부와 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있어 이 대통령이 직접 정리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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