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전설의 유니콘 멸종 위기…“현대는 그 시대 프로야구의 새 엔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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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96년 3월 11일 열린 현대 유니콘스 창단식. 정몽헌 구단주로부터 단기를 받은 강명구 사장이 창단을 알리며 단기를 펄럭이고 있다. 중앙포토

“한 시대가 지나가는 느낌이네요. 그래도 프로야구의 신형 엔진과도 같은 존재였는데….”

프로야구 역사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강렬했던 왕조,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 멤버인 박재홍(52)은 16일 통화에서 아쉬움을 곱씹었다. 하루 전인 15일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배 정훈(39)을 떠올리면서다.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대기업 라이벌을 이뤘고, 역대 가장 막강했던 해태 타이거즈의 아성을 위협했던 현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쳐 최근까지 마지막 명맥을 유지하던 현대가 이제 역사적 사명(使命)을 다하고 있다.

굴지의 대기업 현대그룹을 모태로 둔 현대는 사실 1982년 KBO리그 출범과 함께 탄생할 뻔했다.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제5공화국이 지역연고제의 프로야구 청사진을 그리면서 주요 대기업을 압박하던 시기. 재계 1위의 현대가 빠질 리 없었지만, 당시 현대그룹 정주영(2001년 별세) 회장은 대한체육회장을 지내며 1988 서울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프로야구 출범 과정에선 제외됐다.

그렇게 야구계와 멀어진 현대는 사세가 확장된 1990년대 들어 다시 프로야구단 창단을 기획했다. 당장은 KBO리그 진입이 힘들다고 판단해 1994년 현대 피닉스란 이름으로 실업야구단을 만들었다. 현대의 최대 무기는 ‘억’ 소리 나는 막대한 자금력. 프로야구단 못지않은 계약금을 앞세워 문동환(53)과 조경환(53)·문희성(52)·강혁(51)과 같은 쟁쟁한 아마추어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러나 실업야구로 만족할 수 없던 현대는 1995년 말 인천 연고의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마침내 프로야구단의 기치를 세운다. 마스코트는 전설 속 ‘순백의 동물’ 유니콘. 프로야구의 물줄기는 이때 다시 요동쳤다. 탄탄한 전력을 구축한 현대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기존의 형님 구단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1996년 곧바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더니 1998년부터 2004년 사이에는 4차례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해태를 위협하는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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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창단 멤버로 활약했던 박재홍. 중앙포토

현대가 배출한 스타들도 화려했다. 마운드에선 정민태(55)와 임선동(52)·조용준(46)의 이름이 빛났고, 야수진에선 박진만(49)과 박재홍(52)·이숭용(54) 등이 맹활약했다. 그러나 현대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정주영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모기업이 외환과 내분을 겪었다. 유탄은 프로야구단에도 날아왔고, 결국 2007년을 끝으로 공중분해된다.

현대의 해체는 프로야구의 최대 위기였다. 지금의 10개 구단 체제, 1200만 관중 시대와 달리 당시 KBO리그는 8개 구단 규모도 유지하기 어렵던 상황. 새 구단이 탄생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투자사인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현대를 최종 인수하면서 우리~넥센~키움으로 이어지는 히어로즈로 현대의 명맥이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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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왕조를 지탱했던 에이스 정민태(가운데). 오른쪽은 인천 야구의 아들 김경기. 중앙포토

그러나 이제 현대의 마지막 숨결도 위태로워졌다. 현대 최후의 멤버들이 하나둘 그라운드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현대 출신 현역 선수는 정훈과 오재일(39)·장시환(38)·황재균(38)까지 모두 4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오재일이 먼저 현역 마침표를 찍었고, 정훈이 지난 15일 은퇴를 선언하면서 장시환과 황재균만 남게 됐다. 최근 한화 이글스에서 방출된 장시환은 현역 연장을 꾀하고 있고, 황재균은 KT 위즈와 FA 협상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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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현역 은퇴를 선언한 롯데 정훈. 연합뉴스

이처럼 유니콘은 멸종 위기를 맞았지만, 현대의 유산은 아직 살아 숨쉬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현재 KBO리그 사령탑 가운데서도 현대 출신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올 시즌 통합우승을 차지한 LG 트윈스 염경엽(57) 감독을 비롯해 SSG 랜더스 이숭용 감독과 키움 히어로즈 설종진(52) 감독, 삼성 박진만 감독이 과거 한솥밥을 먹었다. 또, 단장과 해설위원 등 여러 분야에서 현대 출신 인사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1996년 현대 창단 멤버로 데뷔해 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던 박재홍은 “현대는 그 시대 프로야구의 새로운 엔진이었다. 공격적인 투자로 KBO리그의 저변을 넓혔고, 선수단 복지도 확실하게 지원하는 신진 구단이었다”면서 “짧지만 강렬했던 현대는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만, 앞으로도 현대 출신 OB들이 적잖은 영향력을 유지하리라고 본다. 다만 현대와 같은 사라진 구단을 추억하는 자리가 많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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