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기고]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 경제안보시대 신의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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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주에 약 11조 원 규모의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하기로 한 결정은 단순한 해외 투자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안보 경쟁이 심화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기업과 국가 모두에게 전략적 이익을 가져오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고려아연의 이번 투자는 기업의 성장 전략인 동시에 대한민국 경제안보와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신의 한 수라 평가할 만하다.
먼저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는 핵심광물 공급망의 중심으로 진입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방산 등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핵심광물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국가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러한 미국의 정책 방향에 부합하는 파트너로서, 미국 정부와 협력하여 현지 생산 거점을 구축하게 된다. 이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경제안보 체계 속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미중 무역분쟁과 기술 패권 경쟁은 전 세계 공급망의 불안정을 구조적으로 심화시키고 있다. 중국의 희소금속 수출 통제는 특정 국가나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산업 전반의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역시 핵심광물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망 충격에 취약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안정적인 우방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는 이러한 구조적 위험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다.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의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된 배경에는 독보적인 핵심 경쟁력이 존재한다. 고려아연은 아연이나 구리와 같은 단일 금속 중심의 제련을 넘어, 안티모니, 갈륨, 게르마늄 등 다수의 전략광물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통합 제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단기간의 설비 투자로 모방할 수 없는 경쟁력이며, 수십 년간 축적된 기술력과 운영 노하우의 결과다.
이번 투자에서 주목할 점은 투자 구조다. 총 투자금의 90% 이상을 미국 정부와 현지 투자자가 부담하고, 고려아연은 약 10%의 자금으로 100% 자회사를 확보한다. 미국 국방부와 상무부의 직접 투자, 장기 저리 금융, 보조금 지원은 사업의 재무적 안정성을 크게 높인다. 이는 고려아연이 제한된 자금 부담으로도 대규모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인한 기존 주주 지분 희석을 우려하지만, 이는 결과를 보지 못한 단기적 시각에 가깝다. 미국 제련소가 본격 가동되면 대규모 현금흐름 창출이 예상되며, 기업가치 상승 효과는 지분 희석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더 나아가 미국 정부가 직접 투자하고 지원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정책 리스크는 오히려 낮아진다.
이번 투자의 전략적 의미는 고려아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은 제조 강국이지만, 핵심광물 공급망에서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다. 고려아연의 미국 진출은 한국 산업 전반의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고, 경제안보 차원에서 국가 리스크를 완화하는 효과를 가진다. 기업의 글로벌 투자가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대표적 사례다.
아울러 이번 투자는 한미 경제동맹을 실질적으로 강화한다. 군사 동맹을 넘어 경제안보 동맹으로 확장되는 한미 관계 속에서, 고려아연은 양국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가 된다. 미국은 안정적인 전략광물 공급망을 확보하고, 한국은 글로벌 산업 질서에서 신뢰받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는 기업 성장, 국가 경제안보, 한미 동맹 강화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선택이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전략적 결단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고려아연의 이번 결정은 경제안보 시대에 한국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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