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상 속 '루틴'에 스며들다…1조클럽 넘보는 토종 SPA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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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나 로고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다움’을 직조해야 비로소 브랜드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랜드 하나만 골라도 취향이 드러나고, 그 선택에 개성과 욕망, 가치관이 담기죠. 비크닉은 오늘도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의 한 걸음을 따라가 봅니다.

옷을 고르는 행위 자체가 피로로 다가오는 시대입니다. 유행은 너무 빠르고, 선택지는 끝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기본에 충실하면서 체형의 장단점이 부각되지 않는 디자인, 평범한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옷을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즐거움보다 고르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택한 셈이죠.

이런 변화 속에서 조용히 몸집을 키운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토종 SPA(기획·생산·유통 직접 운영) 브랜드 탑텐(TOPTEN10)이에요. 기본 제품과 고객의 반복 구매에 집중해온 이 브랜드는 론칭 13년 만에 연 매출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며, 한국 패션 시장의 지형도를 흔들고 있습니다.

탑텐의 성장은 단순히 ‘저렴한 옷’이 잘 팔렸다는 이야기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지친 일상 속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품질 좋은 기본템을 제공하겠다는 일관된 가치, 그리고 한국형 소비 환경에 맞춘 ‘생활밀착형 SPA 공식’이 맞물린 결과에 가깝죠. 오늘 비크닉은 ‘유행’보다 ‘일상의 습관’을 선택하며, 한국인의 옷장 풍경을 바꿔온 탑텐의 성장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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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쇼핑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도 탑텐의 매출 구조는 여전히 오프라인에 무게가 실려 있다. 패션 상권보다는 주거 밀집지역, 대형 복합쇼핑몰, 마트 중심이다. 사진은 탑텐 트레이더스 구월점. 신성통상

토종 SPA의 꿈, ‘1조 클럽’ 앞둬
국내 SPA 시장에서 연 매출 1조원을 넘긴 브랜드는 업계 1위 일본의 유니클로가 유일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탑텐은 지난해 매출 97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조원 돌파를 가시권에 두고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어요. 이 수치를 넘긴다면 국내 SPA 브랜드 가운데 처음으로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숫자 자체도 의미 있지만, 더 흥미로운 지점은 그 성장 방식입니다. 눈에 띄는 이미지 변신이나 유행을 앞세우기보다 기본적인 역할에 충실해 온 브랜드가 이 단계까지 왔다는 점에서죠. ‘무난한 기본’의 이미지는 더는 한계가 아니었어요. 최근 소비자의 기준이 개성보다 효율, 새로움보다 안정으로 이동한 소비 패턴과 맞물리며 오히려 강점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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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 아이 옷은 한 철을 넘기기 어렵다. 탑텐은 한국 아이들의 체형과 계절에 맞춘 상품을 내놓고, 정기적인 1+1 행사를 통해 다음 구매를 미리 준비하도록 하고 있다. 사진 신성통상


생활 동선에 스며들다…오프라인 거점의 힘
유통 역시 남다름이 엿보입니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도 탑텐의 매출 구조는 여전히 오프라인에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전체 매출의 약 90%가 매장에서 발생해요.

탑텐의 매장 수는 2020년 400개에서 2024년 664개로 늘었고, 2025년 677개(10월 기준)로 확대됐습니다. 패션 시장 전반이 온라인을 향하는 상황에서 ‘매장 확대’는 역행처럼 보이지만, 탑텐은 이 흐름을 생활 동선으로 풀어냈습니다. 출점 위치를 보면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패션 상권보다는 주거 밀집지역, 대형 복합쇼핑몰, 마트 중심이에요. 장을 보러 갔다가, 아이 간식을 사러 갔다가, 주말에 가족과 쇼핑몰을 걷다가 겸사겸사 들르는 자리입니다. 탑텐의 매장은 목적지라기보다 일상 속 경유지에 가깝습니다. 의도한 쇼핑이 아니라, 우연한 구매가 가능한 구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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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텐의 매장 수는 2020년 400개에서 2024년 664개로 늘었고, 2025년 677개(10월 기준)로 확대됐다.

이에 대해 탑텐을 운영하는 신성통상 관계자는 “탑텐은 목적지형 매장보다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옷을 사러 일부러 찾아오기보다, 생활 동선 안에서 편하게 들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전략은 특히 가족 단위 소비자에게서 힘을 발휘했습니다. 신도시 상권을 중심으로 재방문율과 객단가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어요.

온라인도 아예 비워두진 않았습니다. 2023년 9월 자사몰을 ‘탑텐몰’에서 ‘굿웨어몰’로 리뉴얼하며 카테고리를 넓혔어요. 다만 구조를 보면 온라인은 독립적인 판매 채널이라기보다 오프라인에서 형성된 소비 루틴을 보완하는 역할에 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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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텐 ‘2025 텐텐데이’ 포스터. 사진 신성통상


1+1은 할인보다 ‘루틴’을 만든다
탑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가 1+1 행사입니다. 하지만 이 구조를 단순한 할인 전략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탑텐은 아이 옷과 이너웨어처럼 반복 구매 가능성이 높은 품목에 이 방식을 집중적으로 적용해왔어요. 성장기 아이 옷은 한 철을 넘기기 어렵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필요해집니다. 탑텐은 한국 아이들의 체형과 계절에 맞춘 상품을 내놓고, 정기적인 1+1 행사를 통해 다음 구매를 미리 준비하는 소비 방식을 자연스럽게 만들었어요. 단기적인 가격 혜택보다는 반복 구매가 잦은 품목일수록 이런 구조가 생활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본 것이죠.

매년 10월에 1+1을 포함한 대규모 할인이 진행되는 ‘텐텐데이’는 이 소비 루틴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지난해 행사 기간 누적 매출은 1000억원을 넘겼고, 이 가운데 탑텐 키즈가 약 27%를 차지했어요. 가족 단위 소비자의 반복 구매가 브랜드 성장의 중요한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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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굿웨어몰’. 사진 ‘굿웨어몰’ 홈페이지 캡처


기본에 충실했던 탑텐의 다음 행보
탑텐의 주력 상품군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발열 내의, 기본 티셔츠, 경량 패딩처럼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찾게 되는 옷들이 중심이죠. 디자인보다 착용감과 내구성, 가격의 안정성이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영역이에요. 기능성 이너웨어 라인인 온에어·쿨에어·에어테크 시리즈는 이런 방향성을 잘 보여줍니다. 소비자에게 이 옷들은 ‘있으면 좋은 선택지’라기보다, 계절이 돌아올 때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기본값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키즈 라인이 더해지면서 탑텐은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은 브랜드가 됐어요. 탑텐이 쌓아온 옷장은 취향을 드러내는 공간이라기보다,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기반에 가까워 보입니다.

연 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지금, 탑텐은 해외 시장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말레이시아 법인을 설립하며 동남아 시장을 향한 첫 단계를 밟았어요. 단기적인 성과를 서두르기보다는 현지에서 브랜드가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질지를 살펴보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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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텐의 ‘온에어·에어테크’. 사진 신성통상

탑텐의 성장은 ‘유행을 만들지 않아도 브랜드는 커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처럼 보입니다. 화려함 대신 반복되는 선택을 택했고, 그 선택은 한국 소비자의 생활 방식과 맞닿아 있으니까요. ‘자기표현’에서 ‘일상의 안정감’을 주는 도구로, 달라지는 패션의 역할을 시대 흐름에 맞춰 읽어낸 탑텐의 성장,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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