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1조 달러의 ‘궁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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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1조758억 달러(약 1588조원). 올 1~11월 중국의 무역흑자 규모다. 연간 무역흑자 1조 달러 돌파는 사상 처음. 누구도 못했던 일을 중국이 지금 해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도 그들의 수출 ‘욕망’을 꺾지 못한다. 이 기간 중국의 대미 수출은 18.9% 줄었지만, 전체 수출은 오히려 6.2% 늘었다. ‘미국 없어도 수출에 아무런 문제 없다’는 그들의 호언이 빈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동남아·중남미·아프리카 등을 더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이웃 궁핍화 전략(Beggar-thy-neighbor)’이다.
중국은 다 한다. 임가공 제품인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첨단 전기차까지, 모든 기술 단계의 상품을 만들어 수출한다. ‘공급과잉 제품을 덤핑으로 밀어내고, 인위적인 위안화 저평가로 경쟁국을 압박한다’는 비난을 듣는다. IMF는 이 방식이 중국 경제의 불균형을 심화하고, 글로벌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BYD의 해외 수출 전기차. [AFP=연합뉴스]
중국도 방어 논리가 있다. ‘수출 증가는 정상적인 국제 분업의 결과요, 기업의 제품 혁신이 시장을 만들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들은 또 ‘소비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매년 내수 확대를 경제 정책의 우선순위로 올려놓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크리스마스트리를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다. 오는 2030년까지 경제 운용 계획을 담은 ‘15·5 규획’은 완구·가구 등 전통산업의 도태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내륙으로의 이전, 디지털화를 통한 생산 효율 향상 등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중국이 임가공 산업을 쥐고 있으니, 주변 저개발 국가의 산업은 숨 막힐 지경이다.
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첨단기술 분야 중국 정책의 핵심은 자립이다. 독자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반도체·로봇·인공지능(AI) 등 분야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한국·일본·대만 등에 의존했던 중간재(부품)도 이젠 혼자 다 하겠다고 나선다. 미국의 기술 압박이 이를 가속한 측면도 있지만, 어쨌든 중국은 이웃 국가와 제조 공정을 나눌 뜻이 없다. 우리나라의 대중 교역이 2023년 이후 적자로 돌아선 근본 이유다.
혼자 모든 산업을 다 하겠다고 달려들고, 주변국과의 공정 분업도 줄여가고 있다. 그 결과가 1조 달러 무역흑자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중국은 지금 이웃을 거지로 만들고 있다. 우리 역시 기술 없으면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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