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위조지폐 주범 몰렸던 독립운동가 이관술, 78년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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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술

1950년 7월 1일 대덕군(현 대전광역시) 산내면 골령골. 독립운동가 출신의 이관술 선생을 겨냥한 군 헌병대의 총이 불을 뿜었다.

1902년 경북 울산에서 태어난 이 선생은 경성의 중등고보를 거쳐 일본의 도쿄고등사범학교를 나온 당대의 엘리트였다. 동덕여고 교사로 재직하던 중 경성 여학생 만세운동 등을 거치며 1930년대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같은 울산 출신 고문기술자 노덕술이 선생을 미워해 선생을 붙잡아 고문했지만 자백하지 않고 고문을 견뎠다.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설문조사에서 이 선생은 ‘조선을 이끌 지도자’로 여운형, 이승만, 김구, 박헌영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1946년 5월 8일, 경찰이 서울 소공동에 있는 ‘조선정판사(朝鮮精版社)’라는 작은 인쇄소를 급습해 14명의 인쇄공들을 연행하며 선생의 운명은 흔들렸다. 이 사건은 해방 후 한국의 정치 지형을 바꾸는 대형 사건으로 비화한다.

미군정과 경찰은 인쇄공들에게서 1945년 말부터 “1200만원의 위폐를 찍어냈다”는 진술을 받아낸다. 그러면서 조선정판사가 원래는 일제 패망 직전 조선총독부의 조선은행권을 찍어내던 사설 인쇄소 중 하나였고, 조선정판사를 조선공산당이 사실상 인수한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조선공산당 재정부장을 맡고 있던 이 선생은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사건 조작 의혹이 처음부터 제기됐다. 위조지폐를 찍었다고 진술했던 인쇄공들은 “고문을 당해 허위진술을 했다”고 법정에서 폭로했다. 검사조차 “고문했다”고 인정했다. 수사 과정에서 고문기술자 노덕술이 투입된 사실도 밝혀졌다. 이 선생 역시 법정에서 결백을 주장했지만 경성지방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이후 1947년 4월 11일 형이 확정됐다. 6·25 전쟁 발발로 혼란한 틈에 선생은 군 헌병대의 손에 불법적으로 살해(대전형무소 학살 사건)당했다.

이 선생의 재판은 대한민국 역사상 대표적 사법살해로 꼽혔다. 조선정판사에서 찍었다는 위폐가 단 한장도 안 나왔고,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위폐 33매는 시중에 돌아다니던 위폐를 법정에 낸 것이었다. 무엇보다 우익계열의 위조지폐 사건이 실체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원래는 미군정이 관리하던 우익 단체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간부가 위조지폐를 찍어내기 위해 인쇄용 원판을 사들인 게 발각(뚝섬 위폐 사건)됐는데, 원판 출처가 조선정판사 인쇄공으로 확인되자 미군정과 경찰이 좌익 사건으로 조작한 것이라는 연구 역시 발표됐다. 조선정판사 직원들은 사회주의 사상과는 무관한 인물들이었다. 이 사건은 조선공산당이 몰락하고 박헌영이 월북하는 계기가 됐다.

실체 논란이 번지면서 이 선생의 외손녀 손옥희씨는 지난 2023년 7월 재심을 청구했다. 미군정기 판결에 대한 최초의 재심 청구 사건이다. 법원은 사법심사 대상이 된다고 판단해 재심을 결정하고, 검찰 지난 15일 역시 무죄를 구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현복 부장판사)는 22일 재심 선고공판에서 “관련자들 자백은 사법경찰관들의 불법 구금 등을 통한 것으로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며 78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손옥희씨는 선고 직후 “대한민국이 무죄를 내려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며 눈물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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