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고대사 해석은 역사적 상상력 필요, 신화에도 '사실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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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대 인하대 융합고고학 교수

복기대 교수는 “고대사 연구에서 역사학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가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이다. 지금은 문학이나 예술의 영역이어도, 과학이 더 발달하고 사료가 더 나오면 역사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정부 부처 업무 보고에서 나온 짧은 문답으로 인해 ‘환단고기(桓檀古記) 진위’ 논쟁이 벌어졌다.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진영 싸움인 양 불이 붙었다. 역사학자들은 “그보다 중요한 건 제대로 된 고대사 연구다. 우리의 뿌리를 찾아가는 문제”라며 “중국과 일본의 역사 공정에도 대응을 해야 한다. 이번 논쟁을 계기로 고대사 연구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2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에서 복기대(62)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교수를 만났다. 그는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사 전문가다. 그에게 ‘고대사 연구의 바람직한 눈’을 물었다.
- 고대사가 왜 중요한가.
- “고대사에서 출발해 근세사, 근대사, 현대사로 이어진다. 어떤 국가든, 어떤 집단이든 정통성이 있어야 한다. 그 정통성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시작될 때 우리는 누구와 상대적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지 봐야 한다. 『삼국유사』에 고조선 건국기가 나온다. 거기에 ‘여고동시(與高同時)’라는 말이 있다. 고조선 때 옆 나라로 하(夏)나라(중국 최초의 국가)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식으로 고대사는 우리에게 표준을 잡아준다. 출발점과 표준. 다시 말해 고대사에서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고대사 연구 사료 풍부한 나라 드물어
- 고대사 연구에서 어려운 점은 뭔가.
- “상고사와 고대사를 연구할 때 자료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고대사 연구의 사료가 풍부하게 남아 있는 나라는 드물다. 적은 사료를 가지고, 이걸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고대사 연구는 거기에 달렸다. 그런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인류의 생활 방식이나 사고 방식은 큰 차이가 안 난다.”
-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 “내 땅을 지켜야 하고, 나의 우수성이 저놈보다 우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 우월주의에 빠져 있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집어넣을까. 그게 정복이다. 그런 이슈로 갈등이 생기고, 물리적인 전쟁도 생기고, 전쟁으로도 다 극복을 못 한다. 그럼 정신적 승리를 위해 저들은 무도한 놈들이고, 우리는 착한 사람이다. 이런 식의 권선징악이 생긴다. 고대사 연구에서도 그 맥락은 여전히 유효하다.”

복기대 교수가 집필한 고대사 관련 저서. 고조선의 인식과 고구려 평양성을 다루고 있다. 우상조 기자
복 교수는 “고대사를 해석하려면 고고학도 알고, 종교학도 공부하고, 인류학도 알아야 한다. 기후의 역사와 천문학도 알아야 한다. 요즘 나는 식품학을 공부하고 있다. 만약 내가 고대사를 어렵다고 한다면, 그건 현재 내 공부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고대사는 다른 시대에 비해 사료가 빈약하다. 빈 공간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틈을 어떤 식으로 메워야 하나.
- “역사 연구는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거다. 가령 유물을 하나 발굴해서 꺼냈다. 거기까지는 고고학의 기능적 측면이다. 그런데 거기가 끝이 아니다. 그다음 단계가 ‘해석’이다. 해석의 과정에서 역사학자에게 요구되는 게 ‘역사적 상상력’이다.”
- 역사적 상상력, 어떤 의미인가.
- “아무렇게나 마구 상상하는 게 아니다. 가령 기후의 변화 과정을 알게 되면 전염병의 맥락도 이해가 된다. 전염병의 맥락을 알면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어떤 약초가 쓰였을까. 이런 걸 알게 된다. 고조선 때 곰이 달래와 쑥을 먹고 사람이 됐다고 한다.”
- 우리는 마늘과 쑥으로 알고 있다.
- “『삼국유사』의 고조선 건국기(단군신화)를 보면 마늘로 번역되는 식물이 원문에 한자로 ‘蒜(산)’으로 표기돼 있다. 그건 우리가 아는 마늘과 다르다. 곰마늘이다. 달래를 가리킨다. 달래는 영어로 ‘베어 갈릭(Bear Garlic)’이다. 또 쑥은 항바이러스에 큰 역할을 한다. 달래와 쑥은 질병 치료와 관련 있는 식물들이다. 병을 고치는 건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나는 고조선 때 달래와 쑥을 이용한 의학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쑥과 달래가 자라는 고조선의 기후대도 상상할 수 있다.”
복 교수는 “역사적 상상력은 결국 내가 어느 수준의 공부를 했는가에 달렸다. 똑같은 사료를 앞에 놓고 보더라도 내가 공부한 수준에 따라서 역사에 대한 해석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진다. 이런 접근이 아니면 어느 나라든지 상고사와 고대사는 해석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 『환단고기』를 놓고, 최근 ‘진서(眞書)냐, 위서(僞書)냐’ 논쟁이 일고 있다. 어찌 보나.
- “‘환단고기 논쟁’은 하루이틀 된 게 아니다. 이 논쟁을 할 때 전문가들이 역사적 영역과 종교적 영역을 구분해 줬으면 별문제 없었으리라 본다.”
역사적 상상력 없으면 상고사 해석 안돼
- 역사적 영역과 종교적 영역이 뭔가.
- “『환단고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대목이 있다. 5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이 남북으로 5만 리, 동서로 2만 리의 땅을 다스렸다. 그 나라의 문화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지구의 종주국이 됐다는 부분이다. 그런데 5만 년 전은 그냥 구석기 시대였다. 네안데르탈인·크로마뇽인,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곡리 유적. 이런 시대를 말하는 거다. 그 당시에 체계적으로 시스템화된 집단이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걸 나는 ‘종교적 영역’이라고 본다.”
- 그럼 역사적 영역은 어떤 건가.
-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단군(檀君)이란 이름을 봤을 때, 그 나라를 고조선이 아니라 단국(檀國)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옛날에는 황제나 왕의 성씨를 따서 나라 이름을 정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삼성기(三聖紀, 환인·환웅·단군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된 책이다. 책 이름만 있고,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이걸 완전히 허구라며 치워버릴 수만도 없다.”
복 교수는 “이건 진서냐, 위서냐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맹목적으로 맹신하는 것도, 완전히 배척하는 것도 옳지 않다. 가령 성경에서 모세 오경은 종교적 영역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역사적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다. 우리에게는 그걸 구별해서 보는 게 필요하다. 특히 고대사 연구에서는 열려 있는 태도가 무척 중요하다. 설령 종교적 영역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사실의 파편’이 담겨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실의 파편, 무슨 뜻인가.
- “고대 그리스의 호머가 쓴 장편 서사시 『일리아드』를 보라. 오랫동안 단순한 신화로 여겼다. 19세기 중반까지도 유럽의 지성계는 『일리아드』의 문학적 가치는 인정했지만, 실제 사건을 기록한 역사는 아니라고 보았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직접 전쟁에 참여하는 등 초자연적인 요소도 많았다. 게다가 작품의 배경인 트로이라는 거대 도시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독일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의 집념이 신화의 껍질을 깨뜨렸다.”
- 어떻게 깨뜨렸나.
-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읽어준 트로이 전쟁 이야기에 매료됐다. 슐리만은 ‘호머의 시 속에 트로이의 위치에 대한 힌트가 있다’고 확신했다. 골동품 사업가인 그는 자신의 재산을 쏟아부으며 발굴 작업에 나섰다. 결국 1871년 터키 북서부의 히사를리크 언덕에서 트로이 유적을 발굴했다. 호머의 시 속에 담긴 ‘사실의 파편’이 놀랍게도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는 실마리가 됐다.”
-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역사 왜곡을 꾀하고 있다.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한다. 이유가 뭔가.
- “고대사는 현대의 국경선 정립과 연결된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지금의 국경선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중국은 남의 나라를 침략했다는 이야기를 안 한다. 죄를 물으러 갔다고만 한다. 그래서 지금 중국 영토 안에서 있었던 모든 고대사를 중국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걸 중국에 따진다고 말을 듣겠나. 해법은 동북공정에 대응해 우리가 주체적으로 고대사 연구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를 담당하는 정부의 역사 기관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복기대 교수=1963년생.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중국 요녕대에서 석사, 길림대에서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요서 지역 고고학과 한국 고대 역사를 전공했다. 중국에서 8년간 공부한 덕분에 고조선 시기의 많은 유물과 유적을 접했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중국의 한국 관련 문헌 사료들도 많이 연구했다. 현재 인하대 고조선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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