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꼴찌가 1위 됐다…‘하나’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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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떼 농구로 부임 첫 시즌부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상범 하나은행 감독. 장진영 기자
‘남탕’, ‘여탕’. 농구계에서 남녀 농구를 부르는 은어다. 남탕과 여탕처럼 단절돼 교류도 드물고 문화도 다르다. 남자 프로농구에서 우승까지 경험했고,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한 이상범(56) 감독은 지난 시즌 여자 프로농구 최하위였던 하나은행을 맡아 1위로 이끌고 있다.
그는 남자농구에서 ‘리빌딩 전문 감독’으로 통했다. 안양KGC와 원주DB는 스타 군단이 아니었지만 이 감독의 지휘 아래 각각 2012년 챔피언 결정전과 2018년 정규리그에서 정상을 밟았다. ‘남탕의 기술이 여탕에서도 통할까’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지난 시즌 9승 21패였던 하나은행은 이번 시즌 8승 3패다. 아시아 쿼터제로 영입한 이이지마 사키(23) 외엔 뚜렷한 전력 보강이 없었는데 팀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패배의식에 젖었던 팀은 벌떼처럼 움직이며 상대를 괴롭힌다.
23일 인천 하나은행 체육관에서 만난 이상범 감독은 “기존에 공격을 100번 했으면 지금은 120번 할 수 있는 체력과 스피드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제 다른 팀에 체력에서 밀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러닝게임을 강조한다. 흘러가듯 움직이며 공격하는, 달리는 농구다. 수비 라인도 하프라인까지 올렸다. 상대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아야 3, 4쿼터에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젠 뒷심이 생겼다”는 이 감독의 말은 기록으로 증명된다.
지난 시즌 하나은행은 4쿼터에 평균 12.7점을 득점했다.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득점력이 떨어졌다. 올해는 반대다. 4쿼터 득점이 18.3점으로 치솟았다. 1~4쿼터 중 4쿼터 득점이 가장 많다. 4쿼터가 ‘하나은행 타임’이 된 것이다.

하나은행 여자농구단 경기. [사진 하나은행 여자농구단 인스타그램]
선수들에게 “스스로를 믿어라. 자기가 자신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믿어주겠나”라고 말하는 그는 3점슛이 림을 건드리지 못해도, 골밑슛을 놓쳐도 좀처럼 성을 내지 않는다. 다만 “코트에선 최선을 다해 기본을 다하라”고 강조한다. 슛이 빗나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열심히 뛰어서 100번 하던 공격을 120번 하자는 것이다.
정선민(51) 수석코치는 이 감독이 여자농구에 안착하도록 돕는 ‘통역사’ 구실을 하고 있다. 이 감독은 “우리 팀은 나와 정 코치가 50대 50으로 운영한다. 정 코치는 여자 국가대표 감독 경험도 있다. 여자 선수는 남자 선수와는 다르다. 정 코치가 선수단 관리와 체력 훈련을 도맡아 한다. 그 위에 내가 남자농구의 전술을 접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부여하니, 정 코치도 주도적으로 선수들을 훈련시킨다.
이 감독은 “두 달치 훈련 스케줄을 미리 올린다. 선수들도 성인이다. 스스로 일정을 잡아 사람도 만나고 휴식도 취해야 한다”고 자율성을 강조하며 경기 승패와 분위기에 따라 외박이 결정됐던 관례를 깼다. 또 이 감독은 “오후에 메인 훈련 시간을 3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였다. 대신 남자농구처럼 훈련도 실전처럼 세게 한다”고 했다. 정 코치는 “힘들어도 훈련 때 연습한 게 실전에서 통하니 선수들도 신나서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감독은 “우리가 1위지만 현재 가장 강한 팀은 박지수가 복귀한 KB”라며 “나머지 팀은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 목표는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이라고 했다.
그는 여자농구에 입성한 뒤 경기 때 상대팀이라도 선배라면 수비를 살살하는 이른바 ‘언니 농구’ 문제를 제기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 감독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고 남자농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언니 농구가 발 붙이지 못하게 완전히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여자농구의 수준 저하 문제를 묻자 이 감독은 “인프라가 가장 큰 문제다. 일본은 고교마다 팀이 있다. 좋은 선수가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온다. 반면 우리나라는 점점 선수를 구성하기가 어려워진다. 또 좋은 자원이 배구로 많이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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