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Cooking&Food] 밤 길고 추울 땐 위스키가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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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결합, 미식으로 확장, 실험적 숙성까지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즐겨
‘어디서, 무엇과 함께’가 중요해져
잔 아닌 초콜릿에 담아낸 디저트
홍고추 등 한식 재료로 풍미 더해

출처: GettyImagesBank
밤은 길고 추위는 매섭다. 그래서 겨울은 애주가들에게 술 한 잔 걸칠 이유가 충분한 계절이다. 특히 도수가 높고 풍미가 깊은 위스키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 잔만으로도 깊이 있는 맛과 적당한 취기를 느낄 수 있어, 천천히 즐기게 된다. 여름 내내 하이볼로 소비되던 위스키가, 겨울에 접어들며 다시 주인공으로 돌아오는 이유다. 집에서 천천히 즐기기에도, 연말 모임의 한 축을 맡기에도 위스키만한 술이 없다. 제철을 맞은 듯 위스키 업계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예술과의 결합, 미식으로의 확장, 실험적인 숙성까지 흐름이 뚜렷하다.

최근 아트 다이닝 행사로 위스키 즐기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 산토리의 히비키 21년. [사진 산토리]
지난 5일, 서울 논현동의 한 프라이빗 라운지에서는 위스키를 예술과 미식으로 풀어낸 아트 다이닝 행사가 열렸다. 산토리 위스키 테이스팅을 중심으로 전시 감상과 식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자리였다. 허명욱 작가의 작품을 둘러본 뒤, 전시와 테이스팅, 다이닝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며 위스키를 하나의 경험으로 풀어냈다. 이어진 식사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본연’의 배경준 셰프가 준비한 코스였다. 산토리 앰배서더 문선미 바텐더의 테이스팅 시음에 맞춰 요리가 차례로 제공됐고, 술과 음식은 따로 분리되지 않고 같은 흐름 안에서 즐기도록 설계됐다. 위스키를 식후에 따로 마시는 방식이 아니라, 식사 과정에 자연스럽게 곁들이는 형태였다. 위스키가 요즘 어떤 자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올겨울 위스키는 한 잔의 술을 넘어, 예술과 미식, 식탁 위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우드포드 리저브가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와 협업해 선보이는 W 페어링 코스. [사진 우드포드 리저브]
위스키를 식탁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도 연말을 앞두고 잇따랐다. 버번 위스키 브랜드 우드포드 리저브는 이달 21일까지 사델스 서울에서 시즌 한정 칵테일을 선보였다. 패션과 문화, 푸드가 교차하는 공간에서 위스키를 연말의 분위기로 풀어낸 시도였다. 이달 31일까지 스테이크 전문점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 광화문점에서 우드포드 리저브를 활용한 칵테일이 포함된 ‘W 페어링’ 코스를 선보인다. 스테이크 중심의 다이닝 코스 안에 위스키를 자연스럽게 배치했다. 공간에서 시작된 위스키 경험이 식탁으로 이어지며, 위스키가 식후에 따로 마시는 술이 아니라 식사의 흐름 속에서 즐기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줬다.
식사의 끝에서도 위스키는 모습을 드러낸다. 디저트와의 결합이다. 조니워커는 CU와 협업해 ‘조니워커 블랙 루비 마카롱’을 출시했다.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의 풍미를 초콜릿 크림과 라즈베리 잼에 담아낸 디저트로, 출시 당일 1시간 만에 완판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위스키가 반드시 잔에 담겨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연말 모임이나 홈파티에서 위스키를 즐기는 방식이 한층 넓어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김형규 복싱타이거 오너바텐더는 “위스키는 브랜드마다 고유의 풍미와 개성이 뚜렷한 술인 만큼, 음식과의 페어링을 통해 그 특징을 풀어내는 방식이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위스키를 즐길 때 음식과의 조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흐름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리 셰프와 손잡은 기원. [사진 기원]
위스키 트렌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셰프와의 협업도 한층 구체화되고 있다. 국내 싱글몰트 위스키 브랜드 ‘기원(KI ONE)’은 에드워드 리 셰프와 손잡고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를 선보였다. 국내산 홍고추로 시즈닝한 오크 캐스크에 위스키를 다시 숙성하는 방식으로, 한식 재료의 풍미를 위스키에 직접적으로 반영한 실험이다. 에드워드 리 셰프는 “한국의 역동적인 사계절이 빚어낸 ‘기원’ 위스키의 독창적인 풍미에서 켄터키 버번과는 또 다른 매력과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며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가 가진 서사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단순한 협업을 넘어, 식재료와 조리 철학을 제품 설계에까지 반영하려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위스키 업계의 도전은 이어진다. 페르노리카 코리아는 스타우트 맥주 캐스크에서 숙성한 ‘제임슨캐스크메이츠 스타우트 에디션’을 국내에 선보였다. 아일랜드 위스키의 부드러움에 초콜릿·커피·헤이즐넛 같은 스타우트 풍미를 더한 제품으로, 위스키와 맥주의 경계를 넘나든다. 위스키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캐스크와 숙성 방식에 변화를 주는 시도 역시 겨울 위스키 흐름에서 빠지지 않는다. 익숙한 싱글몰트의 문법 위에 새로운 경험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디아지오가 한국 시장에 출시하는 몰트락의 첫 번째 한정판 ‘몰트락 네버바운드’. [사진 디아지오]
디아지오는 싱글몰트 위스키 몰트락의 한정판 신제품 ‘몰트락 네버바운드’를 한국 시장에 선보였다. 1823년 설립된 몰트락은 독창적인 2.81회 증류 공정으로 ‘더프타운의 야수’로 불려온 증류소다. 이번 신제품은 구리 접촉을 최소화한 증류로 몰트락 특유의 진한 육즙감과 스파이스 풍미를 강조하고, 프랑스산 오크 캐스크에서 마무리 숙성을 거쳤다. 디아지오는 이 제품을 백화점과 호텔 다이닝 공간 등 한정된 채널에서 소개하며, 위스키를 구매하는 술이 아니라 경험하는 술로 제안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위스키를 즐기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에서 한 잔 마시는 술을 넘어, 전시 공간과 식탁 위로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올겨울 위스키는 ‘언제’보다 ‘어디서, 무엇과 함께’ 즐기느냐가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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