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KBS교향악단 맡은 정명훈 “단원들을 사랑해주고, 재능 발굴에 힘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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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정명훈이 26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창단 70주년& KBS교향악단 10대 음악감독 선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스1

70대가 된 지금, (음악감독으로서)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사랑해주고 그들이 마음껏 연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KBS교향악단의 제10대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지휘자 정명훈(72)의 말이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창단 70주년’ 기자회견에서다. 20년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2006~2015)를 지낼 때와는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고도 덧붙였다. 당시 "올림픽 대회에 나가는 기분으로 목표와 조건을 확실히 하고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었다"며 "이제 그런 건 젊은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밀라노 라 스칼라, 부산 클래식 이어 ‘쓰리잡’

정명훈은 내년에 창단 70주년을 맞는 KBS교향악단의 연주곡과 협연자 선정 등 운영을 총괄하고, 중장기 전략을 수립한다. 임기는 내년 1월부터 2028년 12월까지다. 정명훈은 내년에 창단 70주년 공연을 포함한 5번의 무대에 서서 지휘한다. 7월에 열리는 70주년 특별연주회에선 오페라 ‘카르멘’을, 3월과 10월에 열릴 두 차례의 마스터스 시리즈에선 말러의 가곡·교향곡을 선보인다. 그 밖에도 정기 연주회에서 지휘봉을 잡을 계획이다.

그는 올해 5월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음악 감독에도 선임됐다. 임기는 2027~2030년이다. 오페라 종주국 이탈리아의 대표적 극장인 라 스칼라 247년 역사 최초의 동양인 음악 감독이다. 아울러 지난 6월 개관한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부산콘서트홀, 2027년 개관할 부산 오페라하우스를 운영하는 ‘클래식 부산’의 예술 감독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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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2일 부산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린 개관 페스티벌 공연 '황제 그리고 오르간' 무대에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지휘자 정명훈이 올라 연주하고 있다 사진 부산콘서트홀.

그는 최근 기자회견이 있을 때마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에서 (음악 감독) 요청이 오곤 하는데 ‘Too late’(너무 늦었다)라고 거절한다”고 밝혀 왔다. 그런 그가 라 스칼라와 클래식 부산에 이어 KBS교향악단에는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그는 “요즘 나에게 중요한 건 ‘프로페셔널’(전문성)보다 ‘퍼스널리티’(개인적 성향)”라며 “오랜 기간 협연을 해오며 점점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고, (협연을) 할수록 더 좋아지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그렇지 않은 곳과는 일하지 않게 되고, 특별한 관계이거나 우리나라의 요청에 대해선 거절을 못 한다”고 했다. 정명훈은 세 곳에서 음악감독을 병행하는 대신 나머지 협연 등의 활동을 줄일 계획이라고 했다.

정명훈은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공동 2위를 차지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78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임명되며 지휘자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80년대엔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파리 국립 바스티유 오페라,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음악감독을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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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범 KBS 사장(왼쪽부터), 정명훈 신임 KBS 교향악단 음악감독, 이승환 KBS 교향악단 사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KBS 교향악단 70주년 및 정명훈 음악감독 선임 기자회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덟 살에 한국을 떠나 미국서 공부한 뒤 돌아와 지휘자로 처음 호흡을 맞춘 오케스트라가 KBS교향악단. 1984년 제264회 정기연주회를 지휘했다. 1998년엔 KBS교향악단 제5대 상임 지휘자를 맡았고 2018년부터는 정기연주회와 기획 프로그램 등을 함께 했다. 2021년엔 KBS교향악단 최초의 계관 지휘자로 위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KBS교향악단 10대 음악감독 맡은 소감은
8살에 한국을 처음 떠나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19살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처음 지휘를 한 오케스트라가 KBS교향악단이었다. 지금까지 주로 외국 생활을 해왔고, 한국어를 잊고 살 때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기 나라(조국)에 대해선 책임감이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거의 안 해본 오케스트라가 없을 정도로 많이 해왔는데, 점점 프로페셔널보다 퍼스널한게 훨씬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요즘 감독 선임 요청이 오면 “Too Late”(너무 늦었다)란 말로 거절하곤 한다. 그럼에도 감독을 맡은 ‘라 스칼라’는 36년 된 가장 친한 친구이고 나와는 특별한 사이다. 이 기준보다 앞서는 게 우리나라이기도 하다. KBS교향악단 역시 처음엔 ‘너무 늦었다’고 거절했었다. 하지만 KBS교향악단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악단을 이끌어갈 계획인지  
36년 전 파리에서 오페라 감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반대로 ‘Too Early’, 즉 너무 이른 시기였다. 그때는 오페라를 지휘해본 적도 없었고 불어도 못 했다. 하지만 젊은 에너지와 근성으로 일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과 에너지가 없다. 라 스칼라도 마찬가지지만 프로그램은 담당자가 책임질 것이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음악가들 사랑해주고 도와주고 딱 그거다. KBS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거다. 이 오케스트라를 몇 년 안에 어떻게 만들겠다는 그런 계획이 없다. 20년 전에 서울시향을 맡았을 땐 올림픽 대회에 나가는 것처럼 목표와 조건이 확실했다. 70대가 넘으니 단원들이 오케스트라라는 역사상 가장 크고 훌륭한 악기를 사랑하도록 돕고, 실수하든 잘못하든 책임은 지휘자에게 있으니까 마음 놓고 연주하라고 독려할 수 있다는 게 달라졌다. 
‘라 스칼라’와 ‘부산 클래식’, ‘KBS교향악단’ 감독까지 ‘쓰리잡’을 하면 예술적 밀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지 않나
많은 것 같지만, 실제 그렇진 않다. 돌아다니면서 감독을 하는 등의 다른 활동을 줄였다. 물론 옛날처럼 프로젝트를 일일이 신경 쓰지는 않지만, 책임을 무겁게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부산에선 그간 오케스트라가 없었기 때문에 방향성을 잘 잡아줘야 하는 책임을, 라스칼라는 프로그램 책임자가 따로 있기 때문에 나는 오케스트라 자체를 잘할 수 있게 신경 쓰는 데 집중한다. KBS 악단에선 일평생 젊고 재주 있는 음악가를 발굴해온 것처럼,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도와주는데 좀 더 집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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