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연 당일 연주곡 공개…피아니스트 지메르만의 새로운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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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한국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공연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사진 마스트미디어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 중 하나이자, 까다롭기로 유명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9)이 신선한 공연을 선보인다. 화두는 ‘프렐류드(전주곡)’다.

그는 이번에 연주될 프로그램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각기 조성이 다른 크고 작은 프렐류드들을 그 날의 분위기에 맞춰 자유롭게 구성해 내보인다.

다음 달 한국 공연에 앞서 일본에서 연주된 곡들을 보면 프렐류드 하면 떠오르는 작곡가들인 바흐, 쇼팽, 드뷔시, 스크리아빈 외에도 로만 스타트코우스키, 그라지나 바세비츠 등 폴란드의 이름이 눈에 띈다. 바르샤바 음악원을 거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하며 경험을 쌓은 스타트코우스키의 프렐류드는 얼핏 스크리아빈의 세계를 느끼게 한다. 폴란드 태생이나 파리에서 나디아 불랑제와 카를 플레쉬에게 작곡과 바이올린을 배운 여성 작곡가 바세비츠의 피아노곡에서는 시마노프스키와 프로코피예프의 내음이 강하게 풍긴다.

지난 6월 한국에서 공연했던 지메르만에게 폴란드인으로서 자국의 작곡가들에 대해 가지는 애정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바세비치, 루토스와프스키, 시마노프스키 등을 제가 연주하는 이유는 그들이 폴란드인이라서가 아니라 작품들이 월등히 뛰어나서이고, 어느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고유한 의도나 해석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이들의 걸작들은 많이 다루고 있지만 연주자들이 모두 비슷하고 서로를 모방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당시 어렵게 마련된 인터뷰에서 첫 질문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우리가 잘 모르는, ‘197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전의 지메르만’ 에 대한 질문부터 했다.

“1973년 6월, 체코 흐라데츠라는 작은 지역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빈·코펜하겐 등에서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런던 프롬스에서도 연주할 기회가 있었지만 쇼팽 콩쿠르를 준비하기 위해 포기해야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변의 전문가들이 ‘넌 베토벤 연주자인데 왜 쇼팽 콩쿠르에 나가려 하느냐’ 며 말렸다는 거죠. 이는 그보다 더 전에 나갔던 프로코피예프 콩쿠르에 입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음악가에게 붙여놓고 바꾸려 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저는 1974년부터 지휘도 하고 있습니다만 모두 제게 피아니스트라고만 합니다.”

어떤 것에도 속박받지 않고 음악이라는 우주 속에서 작곡가와 자신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려는 지메르만의 의지가 대화 내내 분명히 드러났다.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뉴욕 필과의 협연은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과의 무대 이후 30여 년 만에 이 교향악단과 연주한 베토벤의 협주곡 4번이어서 그에게 더욱 특별했다. 담백하게 다듬어진 음색으로 마치 레치타티브(말하듯 노래하는 방식)를 소화하듯 1악장의 도입부를 시작한 지메르만의 베토벤 해석은 날렵한 손가락과 가벼운 음상으로 깔끔하게 진행되었다. 흑백영화의 정돈된 미장센들처럼 고혹적이었던 2악장을 지나, 론도 형식의 3악장은 즐거움과 행복감이 악장 전체를 지배했으며, 피아니스틱한 화려함도 마지막을 향해가며 뜨거움을 더했다. 작곡 당시 베토벤이 경험한 새로운 피아노들의 기능이나 확대된 음역대 등에 대한 의견도 특별했는데, 그보다 더 중시하는 것은 작곡가의 고뇌와 그 극복이었다.

“흔히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얘기할 때 베토벤이 새롭게 만났던 피아노들에 대해 거론하는데, 사실 어느 피아노 앞에서 작곡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우리는 그의 귓병에 대해 주목해야 하죠. 그를 평생 괴롭힌 왜곡돼 들리는 음정과 음향, 그 악조건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려 노력한 베토벤이 만들어 낸 판타지야말로 작품의 핵심입니다.”

객석의 조그만 소음도 허락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악기로만 청중들과 만나려고 하는 지메르만의 예술이 지닌 요체는 결국 작품이 지닌 환상성과 자유로움으로 치환된다. 지메르만은 자신의 피아노를 공수해 다니면서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피아노 소리는 어떤 것일까.

“제가 추구하는 피아노의 음색은 ‘이상적’ 인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것입니다.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현재 전 세계 공연장과 피아니스트들에게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고 저도 이 피아노를 무척 사랑합니다만, 그들이 강력한 주류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죠.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브람스 등이 스타인웨이를 염두에 두고 작곡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무리 악기의 성능이 좋아도 정교해진 녹음 기술 때문에 적절한 피아노 소리를 찾아내는 게 점점 힘들어집니다. 최근에 나온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 녹음도 모니터링부터 혼란스러운 확인 과정이 뒤따랐습니다. 회사에서 제공한 스피커, 그리고 두 가지 종류의 헤드폰에서 들려 온 네 악기 간의 균형이 모두 달랐거든요. 나의 의문에 엔지니어들도 어디에 기준을 맞춰야 하는지 어렵다고 고백했죠.”

이번 리사이틀의 주제인 프렐류드가 본래 작품의 본론에 앞서는 서론 같은 역할을 하는 작품들이다.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정갈하게 만들어진 작품의 ‘포장’을 정성스럽게 여는 지메르만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을 듯하다. 한국 공연은 다음 달 13ㆍ15ㆍ1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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