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25 문화계 결산] ‘케데헌’에 토니상, 국중박 열풍까지…‘국뽕’ 휩쓴 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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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에 참석한 매기 강 감독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한국 문화가 담긴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서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2025년 문화계는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자극하는 성과들이 연이어 등장한 해였다. 그 정점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글로벌 인기가 있다.
올 6월 공개된 이 작품은 K팝 음악을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돌 시스템과 팬덤 문화, 음악방송과 시상식까지 한국 대중문화의 작동 방식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어냈다. OST ‘골든’과 ‘소다팝’은 실제 K팝처럼 소비되며 극 중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팬덤을 만들어냈다. ‘골든’은 빌보드 ‘핫100’ 차트 비연속 8주 1위를 차지했고, 헌트릭스는 K팝 그룹 최초로 미국 스포티파이에서 일간 1위를 기록한 그룹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주인공 헌트릭스의 노래를 부른 가수들이 미국 NBC 인기 토크쇼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에 출연해 히트곡 '골든'(Golden)의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사진 유튜브
한국 문화의 위상은 무대 예술에서도 확인됐다. 2016년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초연한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미국 브로드웨이 진출 1년이 채 되지 않아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상을 수상했다. 작가 박천휴는 토니상에서 한국인 최초로 극본상과 작사·작곡상을 동시에 받았다. 작품은 사람과 거의 흡사한 ‘헬퍼봇’ 간의 사랑을 다뤘지만 공상 과학적인 내용은 아니다. 사랑의 힘을 믿지 않는 클레어와 그럼에도 사랑하려는 올리버라는 흔한 연인 사이의 보편적 정서로 미국에서도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우란문화재단의 지원 사업으로 개발된 이 작품은 한국의 창작 인프라와 서사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 작가. AP=연합뉴스
한국 문화 자체에 대한 관심도 증가한 해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개관 이래 처음으로 연간 관람객 600만 명을 돌파하며 개장 시간 전부터 줄을 서는 이른바, 오픈런 사태를 빚었다. 2024년 영국 미술 매체 아트 뉴스페이퍼가 조사한 연간 방문객 500만 명을 넘는 박물관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873만7050명), 바티칸 박물관(682만5436명), 영국박물관(647만9952명), 메트로폴리탄 미술관(572만7258명)뿐이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늘어진 입장 대기줄. 사진 뉴시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굿즈 브랜드 ‘뮷즈(MU:DS)’는 신제품이 공개될 때마다 품절 사례다. 이승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유통전략팀·해외사업 차장은 “취객선비 3인방 변색 잔세트와 같은 인기 굿즈는 매주 발주를 하는데도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자개와 옻칠 등의 전통 미감이 박물관 전시품을 넘어 소비재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도 올해의 특징이다. 최근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엄용길 문화재 기능장과 협업한 ‘자개함에 담은 티라미수 케이크’가 화제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전 김홍도 필 평안감사향연도'에 등장하는 취객 선비 3인방을 모티브로 제작한 변색 소주잔.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다만 가시적 성과 이면의 아쉬움도 남는다. ‘케데헌’은 한국을 배경으로 했지만, 미국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해 미국 넷플릭스에서 론칭한 작품이다. 한국 문화가 세계관의 원천으로 기능했음에도 지적재산권(IP) 수익은 해외에 귀속됐다.
국내 영화 산업은 관객 감소와 극장 구조 변화라는 과제를 안은 채 불안한 한 해를 보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연간 2억 관객을 동원했던 극장가는 올해 1억 관객을 간신히 넘겼다. 당초 1억 관객도 넘기지 못할 뻔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과 ‘극장판 체인소맨’에 이어 연말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2’와 ‘아바타:불과 재’가 흥행하며 1억 관객을 넘겼다.
한국 영화 성적표는 더 암울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8일 발표한 흥행 5위 안에 든 한국 영화는 ‘좀비딸’(3위, 관객수 563만 명)뿐이다. 봉준호와 박찬욱 감독의 신작 ‘미키17’(301만 명)과 ‘어쩔수가 없다’(294만 명)는 각각 9위와 10위에 그쳤다.

서울 시내 메가박스 입구 모습.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한국 영화계가 안전한 투자만 하려다 영화의 다양성이 사라지면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콘텐트 또는 짧은 영상을 소비하는 시청층을 극장으로 끌어낼 만큼의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나마 올해까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제작했다 개봉 시기를 놓친 ‘창고영화’라도 있었지만, 내년부턴 그마저도 없어 한국 영화의 씨는 더욱 마를 전망이다.

그룹 스트레이 키즈가 써클차트 연간 앨범 차트 1위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고 '음반킹' 자리에 앉았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년 연속 써클차트 연간 앨범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에 이어 세븐틴이 2023년, 2024년을 차지한 바 있다. 연합뉴스
음악 시장에서는 양극화가 뚜렷했다. 스트레이 키즈는 여덟 장 연속 ‘빌보드 200’ 1위라는 세계 기록을 수립하고 ‘음반킹’(국내 써클차트 기준 1년간 전체 음반 판매량 698만 장)에 등극했다. 그러나 국내 음반 시장(50주차까지 집계)은 전년 대비 7.5% 감소(-690만 장)하며 성장의 그늘을 드러냈다. 써클차트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여자 아티스트 판매량이 약 530만 장 감소(-19.9%)하면서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김진우 음악전문 데이터저널리스트는 “일본에서 CD 앨범 시장이 하락세였고, 북미나 유럽 시장을 공략할 만한 차세대 선두 주자 부재 등이 앨범 수출 시장 둔화의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내년엔 빅뱅 20주년, 방탄소년단·블랙핑크 컴백, 뉴진스 복귀 등 대형 가수들의 활발한 활동이 예고돼 있어 반등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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