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푸틴·젤렌스키 집착하는 이곳...트럼프 중재도 발목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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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8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에도 이 땅이 문제였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마러라고 담판’에도 해결책은 뾰족이 없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얘기다. 중재자인 트럼프는 “(돈바스 문제는) 매우 어려운 문제고 해결되지 않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다소 희망 섞인 발언을 내놨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생각은 달랐다. 젤렌스키는 트럼프와의 회담 후 “우리 입장은 분명하다. 우리가 통제하는 영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러라고 담판 직전 트럼프와 통화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가 돈바스에서 바로 철수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압박했다. 평화의 조건으로 돈바스를 내놓으라는 푸틴과 그럴 수 없다는 젤렌스키 간 줄다리기는 지난 2월 백악관에 복귀한 트럼프에 ‘종전’ 트로피를 안기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군복을 입고 러시아군 합동사령부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보고 받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푸틴은 왜 돈바스를 원할까. 돈바스(Donbas)란 이름은 도네츠강이 흐르는 도네츠 석탄 분지(Donets Coal Basin)의 줄임말이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2개 주가 여기에 해당한다.
남한 면적의 절반(5만3200㎢) 정도인 이곳이 중요한 건 푸틴이 꿈꾸는 ‘대 러시아(Great Russia)’ 구상의 핵심이라서다. 푸틴은 제정 러시아와 소비에트 연방 시절 광대한 영토를 가진 강력한 러시아를 부활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돈바스는 18세기 예카테리나 2세 시절 러시아가 크림 칸국을 멸망시킨 뒤 명명한 ‘노보로시야(신 러시아)’의 핵심 지역이다. 옛 소련 시절엔 석탄 등 풍부한 지하자원은 물론, 흑해와 맞닿은 지리적 이점 덕분에 공업이 발전해 ‘러시아의 심장’으로 불렸다.
이에 푸틴은 2014년 돈바스 지역에 친러 분리주의 세력 반란을 선동해 상당 부분을 러시아 영향 하에 뒀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점령지를 넓혀 현재는 루한스크 전체와 도네츠크 80%를 장악한 상태다. 돈바스 점령은 4년 가까이 이어온 전쟁에 지친 국민에게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했음을 알릴 중요한 수단이다.

차준홍 기자
반면 우크라이나에게 돈바스 상실은 ‘재앙’이다. 이곳이 러시아 손에 넘어간다면 우크라이나 전체가 사실상 위험하기 때문이다. 도네츠크 지역은 수도 키이우 등 주요 도시들과 연결되는 철도, 도로 등이 있는 교통 요지다. 이곳을 내주는 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한복판으로 직행할 진군로를 제공하는 게 될 수 있단 얘기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에 내주지 않은 도네츠크의 5분의 1 지역을 이른바 ‘도네츠크 요새 벨트’를 통해 방어하고 있다. 2014년 돈바스 내전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도네츠크 북부의 슬로우얀스크와 크라마토르스크, 남부의 드루즈키우카 등의 도시를 철조망·콘크리트·돌 등으로 만든 전차 방어용 벽인 ‘용의 이빨’로 연결해 놨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우크라이나군이 요새 벨트를 강화하고 중대한 방위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시간과 돈, 노력을 쏟아왔다”며 “이곳을 러시아군에 넘겨준다면 푸틴은 추가 침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도네츠크주 코스탄티니우카에서 한 주민이 폐허가 된 도심을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돈바스의 산업적 잠재력도 무시할 수 없다. 2014년 분리주의 내전 이전까지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 국내총생산(GDP)의 약 16%를 차지했다. 현재는 산업 활동이 거의 중단됐지만, 여전히 상당량의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다. 미 에너지 정보청(EI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2023년 세계 8위의 석탄 매장량을 기록했다. 리튬, 티타늄 등 주요 광물 자원도 다수 매장돼 있다. 대부분 돈바스 지역에 있다. 우크라이나에선 돈바스 지역의 상실로 농업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유럽 역시 돈바스 위기를 자신들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돈바스 장악 후 푸틴이 또다시 침공해 우크라이나를 점령한다면 러시아의 서진으로 동유럽 국가 역시 위험할 수 있어서다.
양측의 입장차를 트럼프도 잘 알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통제하는 도네츠크 영토에 비무장지대와 자유경제 구역을 조성하자는 중재안을 내놓은 이유다. 하지만 전력의 우위를 갖고 있다고 판단한 푸틴은 묵묵부답이다. 러시아는 전날도 도네츠크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148곳을 공습하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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