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주 '얼굴 없는 천사'…26년째 선행, 11억 넘어
-
18회 연결
본문

30일 오후 3시 43분쯤 전주 ‘얼굴 없는 천사’가 노송동 주민센터 주변에 두고 간 성금 상자. 사진 전주시
올해 9004만원…누적 11억3488만원 기부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2000년부터 26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탄절 전후로 주민센터에 익명으로 성금을 기부해 온 터다. 이번에 두고 간 9000여만원을 포함해 누적 기부금이 11억원이 넘는다.
30일 전주시에 따르면 ‘얼굴 없는 천사’는 이날 오후 3시 43분쯤 완산구 노송동 주민센터 주변에 성금을 두고 사라졌다. 노송동 주민센터에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익명 전화가 걸려왔는데 “기자촌 한식 뷔페(식당) 앞 소나무에 상자를 두었으니 좋은 곳에 써주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주민센터 측은 “40~50대로 추정되는 남성 목소리였다”고 전했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260m 떨어진 현장에 가보니 전화 내용대로 A4용지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 오만원권 지폐 다발과 동전이 든 돼지 저금통·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엔 컴퓨터로 타이핑한 글씨로 ‘2026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주민센터 측이 상자 속 성금 액수를 세어 보니 9004만6000원이었다. 올해까지 26년간 ‘얼굴 없는 천사’의 총 기부액은 11억3488만2520원에 달한다.
30일 전주 '얼굴 없는 천사'가 노송동 주민센터 주변에 두고 간 성금 상자. 사진 전주시
2019년 도난 사건…CCTV 설치
이름과 직업은 물론 모든 게 베일에 싸인 ‘얼굴 없는 천사’는 해마다 12월 성탄절 전후로 상자에 수천만원에서 1억원 안팎 성금과 편지를 담아 노송동 주민센터에 맡기고 사라지는 익명 기부자다. 전주시는 지난해까지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 등 소외 계층 7241가구에 현금이나 쌀·연탄·난방 주유권 등으로 지원했다. 올해 성금도 ‘얼굴 없는 천사’ 뜻에 따라 지역 학생을 위한 장학금과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쓸 예정이다.
6년 전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2인조 절도범이 천사의 선행 소식을 듣고 충남에서 전주까지 원정 절도에 나섰다. 절도범들은 2019년 12월 30일 노송동 주민센터 주변을 배회하다가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 6016만3510원을 상자째 차에 싣고 달아났다.
당시 주민 제보로 경찰에 붙잡힌 이들은 법원에서 징역 1년~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전주시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성금 상자를 지키기 위해 노송동 주민센터 주변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천사의 선행은 멈추지 않았다. 그를 본받아 익명으로 성금을 내는 시민도 꾸준히 생겨났다.

노송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30일 전주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을 세고 있다. 사진 전주시
10월 4일 ‘천사의 날’…매년 나눔 행사
노송동 일대 주민들은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 매년 나눔 행사를 하고 있다. 앞서 HD현대1%나눔재단은 2023년 제1회 HD현대아너상 대상 수상자로 전주 ‘얼굴 없는 천사’를 선정했다. HD현대아너상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시민 영웅을 발굴·지원하기 위해 HD현대1%나눔재단이 제정한 상이다. 노송동 주민센터 측은 재단이 전달한 상금 2억원을 전액 소외 계층 지원 사업에 썼다.
채월선 노송동장은 “2000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익명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큰 사랑과 감동을 선사한 ‘얼굴 없는 천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천사의 바람대로 나눔의 선순환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