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빠 주먹질 피하려다 더 맞아" 쉼터 대신 노숙 택하는 아이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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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의 성평등가족부 현판. 뉴스1

이지영(18·가명)양은 3년 전 강원 삼척의 집을 뛰쳐나왔다.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그런 갈 곳 없는 이 양을 품어준 곳은 청소년 쉼터였다. 청소년 쉼터에선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집을 떠난 청소년들(9~24세)이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이 양은 한 곳의 쉼터에 오래 정착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머무른 쉼터만 해도 얼추 수십 곳이다. 그는 “쉼터에 아빠가 언제 찾아올지 몰라 무서웠다”고 말했다. 과거에 한 쉼터에 입소했을 때 쉼터의 연락을 받고 찾아온 아버지의 폭행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있는 청소년 쉼터는 모두 137곳이다. 쉼터마다 10명 안팎의 청소년이 거주할 수 있다. 단기간인 7일부터, 장기간으로는 최대 4년까지 지낼 수 있다. 일정 요건을 맞추면 최대 50만원의 자립지원수당을 최장 5년까지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가정 밖 청소년들은 쉼터를 외면한다. 2023년 가출 경험 청소년 10만 5655명 가운데 5.5%(5827명)만 단기·중장기 쉼터에 입소(국회입법조사처, ‘가정 밖 청소년이 쉼터에 입소하지 못하는 이유’ 연구보고서)했다.

여러 혜택이 있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데도 대다수 가정 밖 청소년들은 쉼터를 외면하고 있다. 주된 이유는 ‘보호자 통보 의무’ 때문이다. 성평등가족부 지침상 쉼터는 청소년 입소 후 72시간 이내 보호자에게 입소 사실을 고지해야 한다. 부모가 만 18세 이하 미성년 자녀의 거주 장소를 결정할 수 있는 법적 권리인 ‘거소 지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이다.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한 것이다. 물론 쉼터 운영 지침상 “가정 폭력 피해 청소년 등에 대해선 입소 사실을 보호자에게 고지하지 않아도 된다”(성평등가족부 관계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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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하지만 현실은 ‘보호자 통보 의무’의 유연한 적용을 담은 지침과는 다소 다르다. 김시연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활동가는 “쉼터에서 가정 폭력 피해 청소년의 보호자에게 연락한 사례가 종종 있다”며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가정 밖 청소년들은 쉼터 찾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가정 밖 청소년들은 쉼터 대신 친구 집이나 길거리 노숙을 택한다. 지난해 7월 여성가족부(성평등가족부의 전신)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위기 청소년들은 가출할 때 ‘청소년 쉼터(30.2%)’보다 ‘친구 또는 선후배 집(58.3%)’에 머문 경우가 두 배 가까이나 됐다. 심지어 ‘건물이나 길거리 노숙(29.6%)’을 택한 이들이 쉼터를 택한 이들에 육박할 정도다.

정부 역시 이런 실태를 모르지 않는다. 현장의 지속적인 호소에 오는 6월 시행되는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에는 쉼터의 부모 고지 의무를 더욱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가정 폭력이나 친족에 의한 성폭력, 아동학대 등으로 쉼터에 입소하는 경우엔 보호자에게 통보해선 안 된다고 명문화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법 개정에서 더 나아가 성평등가족부의 적극적인 점검·지도를 당부했다. 임광혁 극동대학교 미래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는 “그동안에도 보호자 고지를 않아도 된다는 지침은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쉼터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정부가 지속해서 현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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