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단독]美국무부 “韓정통망법, 심각한 우려…신중한 검토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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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1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전날 상정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종결을 위한 투표를 마친 뒤 우원식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국무부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해 최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 31일(현지시간)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으로 불리는 해당 법안에 대해 전날 사라 로저스 미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려를 나타낸 데 이어 국무부가 다음날 대변인 명의의 공식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섬에 따라 향후 한ㆍ미 간 외교ㆍ통상 마찰의 뇌관이 될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국무부는 이날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묻는 중앙일보 질의에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미국은 한국 정부가 미국 기반 온라인 플랫폼의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네트워크법 개정안을 승인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국무부가 지칭한 ‘네트워크법’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을 말한다.

“미국, 검열에 반대…불필요한 장벽 안돼”

미 국무부는 “한국은 디지털 서비스에 불필요한 장벽을 둬서는 안 된다”며 “미국은 검열을 반대하고, 모든 이에게 자유롭고 개방적인 디지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한국과 협력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입틀막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 특히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미 국무부는 “(한국의 네트워크법 개정안은) 플랫폼에 처벌 회피를 위한 사전 검열을 요구함으로써 국경을 넘어 표현의 자유를 검열하고 위협하는 글로벌 규제 흐름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새 법률의 조치가 한국 내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국이 신중히 검토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사라 로저스 미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은 전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한국의 네트워크법은 표면적으로는 명예를 훼손하는 딥페이크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기술 협력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글을 올려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하지만 국무부가 대변인 성명이라는 방식으로 공식 메시지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심각한 우려” “불필요한 장벽” “검열 반대” 등 국무부 공식 성명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수위 높은 표현을 써 가며 법안 시행 전 재검토를 촉구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트럼프 행정부 전반의 문제의식을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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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논란 요소 그래픽 이미지.

미, 법안 처리 전부터 韓에 강한 불만 전달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해당 법안이 처리되기 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 정부에 강한 우려를 전달해 왔다. 국회에서 법안 논의 과정을 주시해 왔고, 법안 통과가 유력해 보이던 시기에는 미 백악관과 복수의 정부 기관을 통해 한국 정부에 해당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억압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우려를 표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온라인에서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혐오나 차별 조장 발언 등을 유해 콘텐트로 규정하고 이를 차단하는 조치를 ‘표현의 자유 침해’로 보고 꾸준히 반대해 왔다.

무엇보다 미 정부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을 한ㆍ미 간 무역 합의 이후 한국이 새롭게 도입하는 비(非)관세 장벽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일 열린 제10차 한ㆍ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에서 미국 측은 한국의 디지털 규제 법안을 문제 삼으며 무역 합의 취지에 어긋나는 조치라는 불만을 강하게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 14일 공개된 한ㆍ미 무역 합의 팩트시트(설명 자료)에는 “한국과 미국은 온라인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지난 18일 워싱턴 DC에서 열리기로 했던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비공개 회의가 돌연 연기된 것도 한국 정부의 디지털 규제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보도가 최근 나왔었다.

미 ‘플랫폼 기업 규제’ 인식…강력 대응 예고

내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은 불법이나 허위조작 정보라는 걸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이를 유포할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를 물도록 한 게 골자다. 특히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이거나 ‘내용을 사실로 오인하도록 변형된’ 정보를 각기 허위 및 조작 정보로 규정했다. 이에 허위조작 정보를 가려내는 근거가 모호하고 사실상 정부나 관련 기관이 이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법안이 플랫폼 사업자에 허위조작정보 삭제 등을 의무화한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모태로 한 과도한 규제로 보고 강력 대응하겠다는 기조다. 미 통상 분야 한 소식통은 “이번 사안은 향후 한ㆍ미 간 통상 협의와 플랫폼 규제 논의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며 “표현의 자유와 통상 규범이 얽힌 민감한 이슈라는 점에서 파문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는 "시행령 개정 등 법안 운영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예정이며, 외교부, 산업부 등 외교당국 과도 긴밀히 소통하면서 대응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도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른 사회적 폐해에 대응하고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에서 추진되고 있으며, 특정 국가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안이 마련된 취지를 고려해 미국 측과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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