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저승에 망자 태우고, 태조 위화도회군 도와…문화유산속 ‘이 말 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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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띠 해 병오년(丙午年)이 밝았다. 12간지 중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말은 인간의 역사와 오래 함께한 동물이기도 하다. 우리 국보·보물 등에도 말을 모티브로 하거나 말이 등장하는 문화유산이 숱하게 많다. 말의 묘사나 형상화하는 시선 자체가 문화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주요 문화유산에 등장하는 ‘말말말’을 만나본다.
기마인물형 토기(국보, 신라 5~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陶器 騎馬人物形 明器)'. 경주시 금령총에서 출토된 한 쌍의 토기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주인상은 높이 23.4㎝, 길이 29.4㎝이고, 하인상은 높이 21.3㎝, 길이 26.8㎝이다. 사진 국가유산포털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한 쌍의 기마인물형(말 탄 사람 모양) 토기다. 사람과 말의 차림새에서 신분 차이가 보여 각각 주인상과 하인상으로 이해된다. 주인이 탄 말의 경우 안장, 재갈, 발걸이 등이 완벽하게 표현됐고 말띠꾸미개[운주(雲珠)]와 말띠드리개[행엽(杏葉)]을 달아 화려하게 장식했다. 반면 하인이 탄 말은 크기가 작고, 말갖춤은 주인상의 것과 비슷하지만 말띠드리개 같은 장식이 없이 단순하다. 말이 지금의 자동차처럼 ‘타는 수단’이자 장식하고 과시하는 대상이었고, 마구는 곧 신분과 위계의 표식임을 알 수 있다.
해당 토기는 말의 가슴과 엉덩이 위에 물을 붓고 따를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어 주전자와 같은 용도로 추정된다. 금령총의 주인공은 신라의 어린 왕족으로 추정되는데, 그의 사후에 함께 하길 바라며 묻은 껴묻거리(시신과 함께 묻는 물건. 다른 말로 부장품) 중 하나다. 금령총에선 뱃사공까지 표현된 2점의 배 모양 토기도 나왔다. 말과 배 모두 저승까지 망자를 실어보내는 수단이자 두 세계를 오가는 연결체의 의미로 해석된다.
천마가 그려진 다래(국보, 신라 5~6세기. 국립경주박물관)

국보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慶州 天馬塚 障泥 天馬圖)'. 신라시대의 유일한 회화 유물로 자작나무 위에 흰 말을 그렸다. 천마는 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으로, 다리 앞뒤에 고리모양의 돌기가 나와 있고 혀를 내민 듯한 입의 모습은 신의 기운을 보여준다. 이는 흰색의 천마가 동물의 신으로, 죽은 사람을 하늘 세계로 실어나르는 역할이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사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포털에 등록된 공식 명칭은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장니란 말의 안장 아래에 걸어 말 탄 사람에게 흙이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말갖춤으로 다래라고도 한다. 가로 75㎝, 세로 53㎝, 두께는 약 6㎜. 1973년 경주 황남동고분 155호분에서 발견됐는데, 여기 그려진 천마 그림 때문에 고분에 천마총이란 이름이 붙었다.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 겹치고 맨 위에 고운 껍질로 누빈 후, 가장자리에 가죽을 대어 만들었다. 중앙에는 흰색으로 천마가 그려져 있고, 테두리는 흰색·붉은색·갈색·검정색의 덩굴무늬로 장식돼 있다. 천마는 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이라 죽은 사람을 하늘 세계로 실어나르는 역할로 짐작된다. 옛사람들이 백마를 신성시한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 그림과 덕흥리 무덤(평안 남포시)의 ‘천마지상’이라는 명문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말이 저승과 이승을 잇는 존재, 혹은 왕권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로 인식됐음을 알 수 있다.
말 탄 사람을 그린 벽화 조각(고구려 5세기 초, 국립중앙박물관)

평안남도 용강군 안성리 쌍영총에서 출토된 벽화의 일부로 말 탄 사람을 그렸다. 재갈과 고삐를 이용해 달리는 말을 부리며, 말 위에서 몸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장과 발걸이[?子]를 사용하고 있다. 말띠드리개와 말띠꾸미개로 말을 장식했다. 이러한 모습의 기마인물(騎馬人物)은 무용총이나 덕흥리 무덤 등 고구려 무덤 벽화의 사냥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 그림들에는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던 고구려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평안남도 용강군 안성리 쌍영총에서 출토된 벽화의 일부다. 고구려 복장을 한 무사가 말을 탄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 전기의 무덤 벽화는 대체로 돌벽에 석회를 바른 뒤 축축한 석회벽에 물에 갠 안료를 채색하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렸다고 한다. 이 벽화 단편에는 새 깃털을 꽂은 모자(조우관)를 쓰고 말을 탄 무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고구려의 복식과 말갖춤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는 일찍부터 기마술을 바탕으로 주변 나라를 정복한 기마민족으로 압록강 북쪽의 퉁거우와 대동강 하류인 평양, 황해도 등지를 거점으로 생활했다. 이들이 남긴 고분벽화에도 활달한 기마술이 드러난다. 고분벽화 주제는 인물, 풍속, 사신도가 주를 이르는데 말은 행렬도, 군마도, 전투도, 수렵도, 생활풍속 등에 다양하게 나타난다.
삼국시대 말 갑옷(보물, 가야 5세기, 국립김해박물관)

마갑총 말갑옷(세부). 사진 국가유산청

함안 마갑총 출토 당시 모습. 사진 국가유산청
말의 팔과 다리를 제외하고 철갑으로 가릴 수 있도록 만든 갑옷의 일부다. 유물 사진은 함안 마갑총 출토 말갑옷으로 1992년 발굴 당시 무덤 주인공 좌우에 고리자루 큰 칼과 함께 배치돼 있었다. 이 둘을 묶어 2019년 보물로 지정했다.
한반도에 말 갑옷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삼국이 서로 영토 싸움을 벌이던 4~6세기다. 이 시기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로 널리 사용됐지만 온전한 형태로 발굴된 것은 극히 드물다. 마갑총 출토 말 갑옷은 말머리를 가리는 투구, 목과 가슴을 가리는 경흉갑(頸胸甲, 목가슴드리개), 말의 몸을 가리는 신갑(身甲)이 거의 원형대로 나와 동아시아 전체를 통틀어서도 귀한 유물이다. 전쟁터에서 말 투구와 말 갑옷의 무게를 지탱하며 민첩하게 움직이려면 튼튼하고 빠른 말이 필요했을 터라 삼국시대 기마술 발달의 수준을 보여준다.
목장지도(보물, 조선 1678년 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

1678년에 전국에 분포하는 목장을 그린 필사본 채색지도첩이다. 1권 42면으로 구성된 이 지도첩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었다. 첫 장에는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 두 번째 장에는 도군별 목장상황을 담은 회화식 지도, 세 번째 장에는 이 지도첩의 제작 동기와 시기를 알려주는 허목(許穆)의 기문(記文)이 실려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이 지도첩은 당시의 마정(馬政)과 목장에 관한 시책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2008년 보물로 지정됐다. 사진 국가유산포털
역사상 말은 국가운영에 있어 중요한 동물이어서 삼국시대부터 국가의 마정 체계가 확립돼 있었다. 말의 관리와 정책은 고려시대 들어 더욱 체계적으로 이뤄져 왕실의 말, 전쟁과 외교용 말 등을 공급하는 국영 목장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이 같은 정책이 유지돼 국가에선 전국의 목장에 대한 정보를 실은 지도책을 편찬해 마정에 활용했다. 역참과 파발제가 확립되면서 전국의 역에 역마를 배치하고 국가적 행사나 군사적 임무에 이를 활용케 했다.
해당 유물은 1678년(숙종 14)에 중추부사 겸 사복시 제조인 허목(1595~1682)이 이전에 간행됐던 목장지도를 보완해서 편찬한 것이다. 43면으로 구성된 이 지도에 의하면 전국 각도의 말 목장 수는 138개소, 설치된 곳은 53곳이다. 전국의 말은 2만213필로 수말 6939필, 암말 1만3274필이다. 특히 제주도 목장이 전국 말 중에 1만2411필로 가장 높은 비중을 보여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옛말을 실감케 한다.
김홍도 필 ‘마상청앵도’(보물, 18세기 말~19세기 초, 간송미술관)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의 '마상청앵도'(보물). 시동(侍童)을 대동한 선비가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중 꾀꼬리 한 쌍이 노니는 소리에 말을 멈추고 시선을 돌려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를 무심히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다. 인물 묘사에 사용된 섬세한 필선, 말과 마구에 사용된 부드러운 필법, 선비의 시선과 표정, 대담한 공간감 등이 잘 어우러져 김홍도가 추구한 한국적인 정서가 잘 표출됐다. 사진 국가유산포털
조선시대 말 그림은 문인화가와 직업화가 모두가 즐겨 그렸고 말만 그리거나 사람과 함께 등장한 것 등 다채롭다. 기마상·수렵·행렬·마구간·세마 등 풍속화에도 빠지지 않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제왕이나 유명인의 말에 얽힌 고사(故事)의 범주에서 그려지기도 했다.
‘마상청앵도’는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가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세심한 모습을 서정성 깊게 표현한 작품이다. 시동(侍童)을 대동한 선비가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중 버드나무 위에서 노니는 꾀꼬리 한 쌍에 시선을 멈추는 모습이다. 단원의 그림 중엔 이 같은 서정적 풍경 뿐 아니라 ‘단원 풍속도첩’(보물, 국립중앙박물관)의 ‘편자박기’처럼 일상의 말 사육과 관리를 보여주는 장면도 여럿이다.

'김홍도필(金弘道筆) 풍속도 화첩(風俗圖 畵帖)'(보물)에 수록된 풍속화 25점 중 '편자 박기'다. 말을 눕힌 다음 네 다리를 나무에 묶어 요동치지 못하게 하고 편자를 박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화면 왼쪽 위에는 땀 흘리는 두 사람의 목을 축여줄 물이 상 위에 놓여 있고, 아래에는 바구니와 공구가 배치되어 화면의 구도를 살리고 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팔준도 (작가 미상, 조선 후기, 국립중앙박물관)

팔준도(작가 미상, 조선 후기, 국립중앙박물관)의 일부. 팔준도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탔던 여덟 마리의 말을 그린 화첩이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팔준도첩' 중 '응상백'. 서리가 엉긴 것처럼 흰 백마여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름 옆의 화제는 ″순백색(純白色) 오자(烏?) 오안(烏眼) 오신(烏?) 오제(烏蹄) 산어제주(産於濟州) 회군시어(回軍時御)″라 돼 있다. 압록강 위화도 회군 때 이성계가 탄 말이라고 공덕을 치하하고 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팔준도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탔던 여덟 마리의 말을 그린 화첩이다. 태조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요한 사건 당시 태조가 탔던 말의 이름과 함께 칭송 글귀를 덧붙였다. 예컨대 위화도 회군할 때 탔던 말은 ‘응상백’(아래 사진)이라고 하는데 갈기와 꼬리를 비롯해 털빛이 모두 희고 부리와 눈, 발굽이 검은 제주마라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엔 여러 팔준도첩이 전하는데 아래 사진이 포함된 팔준도는 사실적 화필의 대가 윤두서(1668~1715)가 그렸다고 전한다.
팔준도는 애초에 주나라 목왕의 ‘팔준도’가 효시라고 한다. 중국에서 전래된 장르의 일종이지만 조선의 팔준도는 내용과 말 이름도 차이가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말의 도움을 받아 조선을 개국했음을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작됐다. 세종 때 용비어천가와 함께 처음 제작됐고, 당대 최고 화가 안견이 그린 것을 이후 모사해 민간에까지 퍼졌다. 조선 전기 것은 남아 있지 않고 현재 전해지는 건 전란으로 소실된 후 숙종 연간에 제작한 것들을 기준 삼은 모사본들이다.
군마도

장승업의 '군마도'.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촬영본이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18세기 이후 청으로부터 서양 과학과 문물이 유입되고 회화 모든 장르에서 사실적인 화풍이 화두가 되면서 서양화법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를 반영하듯 이 당시 제작된 군마도에선 물 마시는 말, 휴식을 취하는 말, 초원을 달리는 말, 나뒹굴거나 무리 지은 말 등이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군마도 화풍은 조선 말기 화단의 대표 화가라 할 장승업(1843~1897)에게 이어져 여러 말 그림 걸작들이 남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우리나라의 주요 유적, 유물을 찾아 수록한 『조선고적도보』(1934)에도 그의 ‘군마도’가 소개됐다, 색채나 음영 없이 백묘법(白描法, 동양화에서 색채나 음영 없이 먹으로 윤곽선만으로 대상을 그리는 화법)으로 일곱 마리 말과 인물을 그린 소품이다.
참고자료: 국가유산포털,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2014년 국립제주박물관 특별전 도록『‘한국의 마(馬)-시공을 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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