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우크라도 골치 아픈데 그린란드까지?…딜레마 빠진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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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최근 국제 안보 현안을 두고 미묘한 온도 차를 드러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집착엔 원칙적인 입장을 내세웠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선 장기 안보 보장을 약속하며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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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밀러 미국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부인 케이티 밀러가 미군에 의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 작전 이후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게시물.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입힌 그린란드 지도와 함께 ‘머지않아(Soon)’라는 도발적 문구를 올렸다. 사진 엑스 캡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5일(현지시간) 트럼프의 ‘그린란드 획득’ 발언과 관련해 “그린란드는 미국의 동맹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조약의 적용 대상”이라며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다만 미국을 정면으로 비판하거나 구체적인 억지 수단은 제시하지 않았다. EU가 트럼프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국가 주권과 영토 보존 원칙을 수호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고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또 덴마크의 북유럽 이웃 국가들이 즉각 지지 발언을 쏟아낸 것과 달리, 영국·프랑스·독일 등 이른바 ‘빅3’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이후 6일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폴란드·스페인·덴마크 등 7개국이 낸 공동성명에도 미국에 대한 직접 비판은 빠졌다. BBC는 “EU는 국제무대에서 더 큰 역할을 약속해 왔지만, 트럼프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유독 미온적”이라고 짚었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점점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6일 파리에서 열린 ‘의지의 연합’ 정상회의 후 휴전이 성사될 경우 우크라이나 전역에 군사 거점을 설치하고 무기·군사 장비를 생산할 보호 시설을 건설하겠다는 의향서에 서명했다. 러시아를 제재하고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해온 기존 기조를 한층 더 구체화한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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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위한 ‘의지의 연합’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에 휴전 후 병력 파병에 관한 선언문에 서명하며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런 온도 차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 폴리티코는 "유럽이 직면한 ‘전략적 자율성’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매체는 “브뤼셀의 온건한 반응은 유럽의 딜레마를 드러낸다”며 “트럼프가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할 경우 무역이나 우크라이나 문제를 지렛대로 보복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그의 무력적 언행에 대체로 자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란틱카운슬도 “유럽은 이번에도 국제법과 우려 표명에 의존하는 익숙한 대응을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베네수엘라 사례를 들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통제가 가능하고 저항 비용이 낮다고 판단되는 곳에서 행동해 왔기 때문에 유럽이 그린란드를 지키려면 항의에 그치지 말고 실질적인 전략과 가시적인 억지력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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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6일(현지시간) 그린란드 서부의 피오르드 항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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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개요. 김주원 기자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자치령이지만 1979년 자치권을 획득했고, 2009년에는 외교·국방을 제외한 광범위한 자치 권한을 확대했다. 1985년 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EC)를 탈퇴했지만, 덴마크가 EU 회원국이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EU 시민 지위도 가지고 있다. 이런 애매한 법적·정치적 지위 역시 유럽의 대응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유럽의 딜레마가 깊어지는 사이 트럼프의 그린란드 야욕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지역이 북대서양과 북극을 잇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미군기지가 있는 것은 물론, 미사일 조기경보와 위성·잠수함 감시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한다. 냉전기 최대 1만 명에 달했던 미군 병력은 현재 약 200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희토류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해 미·중 전략 경쟁의 관점에서도 중요성이 크다. 러시아는 최근 북극 군사 투자를 늘렸고, 중국 역시 북극 항로 개척과 함께 극지방 자원 확보에 나섰다. 2023년엔 양국이 북극해에서 합동 순찰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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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를 둘러싼 각 국가의 이유와 입장 정리한 표. 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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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28일(현지시간)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에서 한 여성이 미국의 그린란드 장악 관련에 대해 반발하는 시위 피켓을 들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강대국 경쟁의 한복판에 놓인 그린란드 현지의 반응은 복잡하다. 옌스-프레데리크 닐센 총리는 “병합에 대한 망상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여론조사기관 베리안 조사에서도 덴마크로부터의 장기적 독립 선호는 56%였지만, 미국 편입 찬성은 6%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린란드인들은 미국과의 협력에는 열려 있다(비즈니스인사이더)”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매수되거나 무력으로 끌려가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린란드 전망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다. 독일 도이체벨레(DW)는 “당장 무력 병합 가능성은 작지만, 미군 배치·기지·조약을 둘러싼 압박은 지속할 수 있다”고 봤고,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가 위협을 거두기 전까지 나토가 입을 상처의 크기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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