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입비 4000만원 과감히 없앴다…젊은이 모시는 어촌마을 [바다로 간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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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고남면 가경주마을(고남3리)은 안면도 끝자락에 자리 잡은 조용한 어촌이다. 주민 대부분은 바지락과 굴을 채취해 생계를 잇는다. 하지만 급격한 고령화로 주민 230여 명 가운데 60% 이상이 70세가 넘었다. 이 때문에 어촌계(漁村契)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굴·바지락 양식장은 일손이 늘 부족했다. 어촌계는 어민들이 공동 어로 작업 등을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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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고향인 충남 태안 고남면 가경주마을로 귀어한 편도관씨가 주민들이 합심해 만든 체험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결국 가경주마을은 2019년 어촌계 진입 장벽을 과감하게 허물었다. 일정 기간 거주와 가입비 납부 등 조건을 모두 없앴다. 종전에는 어촌계원이 되려면 마을에 3년 이상 거주하고 가입비 600만원을 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에 이사를 와도 바다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또 부모가 자녀에게 어업권을 물려줄 수 있도록 어촌계 규정을 바꿨다. 도시에 살던 자녀가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장벽을 없앤 이후 마을에는 30여 명이 이주했다. 이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왔다고 한다.

어촌 소멸 극복 위해 문턱 낮추는 마을 늘어

출산율 저하로 고령 인구가 증가하는 가운데 전국의 어촌 주민도 진입 문턱을 낮추고 외지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외부에 손을 내밀지 않고는 마을 존립이 위태롭다고 판단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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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고남면 가경주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갯벌에서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 편도관씨]

수협중앙회가 조사한 ‘2022년 어촌계 현황’에 따르면 전국 어촌계원 수는 1999년 16만4315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다. 2021년엔 5만5561명 감소한 10만8754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60대가 32.4%를 차지했고 70세 이상도 40.8%나 된다.

경남 사천 중촌어촌계…귀어방도 운영

경남 사천시 중촌어촌계도 마찬가지다. 이 어촌계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90명을 넘던 계원이 최근 78명까지 줄었다. 게다가 60대 이하 비교적 젊은 사람은 28명(35.9%)에 불과하다. 옆 마을 어촌계에선 70대도 ‘청년’으로 부른다. 견디다 못한 중촌어촌계는 3년 전부터 거주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가입금도 기존 100만원에서 75만원으로 낮췄다. 귀어(歸漁)를 희망하는 사람을 위해 귀어방도 운영한다. 보증금 없이 월세 25만원만 내는 조건이다. 그 결과 다른 지역에 살던 11명이 이사와 중촌어촌계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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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경남 사천 서포면 중촌항다목적센터에 마련된 '귀어방'에서 귀어인 신병행씨가 가리비 양식을 위해 종패(種貝)를 끼울 줄을 만들고 있다. 안대훈 기자

충남 보령 천수만 입구에 있는 사호어촌계는 70년 만에 가입 조건을 완화했다. 가입비를 기존 5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낮추고 거주 기간도 5년에서 1년으로 단축했다. 그 결과 2020년부터 2년간 20명이 새로 가입, 어촌계원 수는 120명으로 늘었다. 사호어촌계는 바지락·굴 등 어패류를 채취해 소득을 올린다.

전남 진도 신기어촌계 가입비 4000만원 안 받아  

전남 진도군 군내면 신기어촌계도 2019년 가입비(종전 4000만원)와 거주 조건(5년 이상)을 없앴다. 이후 도시에서 살던 3명이 이사와 어촌계에 가입했다. 김성석 신기어촌계장은 “외지인을 위해 마을에서 살아보기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젊은이가 살 수 있게 전원주택단지도 조성했다”며 "진입장벽을 낮춘 이후 어촌계 진입을 문의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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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 신기마을어촌계에서 예비귀어인을 대상으로 현장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진도군]

해수부·지자체, 다양한 어촌 체험 지원 

정부와 지자체도 나섰다. 해양수산부는 어촌 진입장벽을 없애 유입 인구를 늘리기 위해 ‘제2차 귀어귀촌 지원 종합 계획’을 만들고 있다. 어촌 살아보기와 4도(都)3촌(村) 프로그램 도입, 어(漁)케이션 장소 20곳 조성 등이 주요 내용이다. 또 젊은 귀어인 활동도 돕는다. 예를 들어 어촌계에서 수확한 해산물 등을 온라인을 통해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 제작을 위한 예산 지원 등이다. 귀어·귀촌인을 많이 유치한 우수 어촌계에는 예산 지원 등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다. 충남도는 어촌 마을과 손잡고 2016년부터 ‘어촌계 진입장벽 완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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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시 서포면 중촌항다목적센터에 마련된 '귀어방'. 8평 남짓한 원룸으로 화장실, 싱크대, 인터넷 등이 설치돼 있다. 중촌어촌계는 새내기 귀어인이 머물 수 있게 귀어방 2개를 운영 중이다. 안대훈 기자

충남도립대 자치행정학과 윤석환 교수는 “인구 소멸로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만큼 귀어인을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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