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극락도 락" "예수님 생카"…믿음 없이도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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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형쇼핑몰 안에 있는 한 팝업 매장이 인파로 가득했다. 오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매대 위 상품을 제대로 살펴보기 힘들 정도였다. 방문객은 대부분 10대에서 30대 사이의 청년들이었고, 입구 측 벽면엔 “취뽀하자”, “서울 안에 있는 대학 가게 해주세요” 등 이들의 소망을 담은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매대를 채운 상품들은 독특했다. “극락도 락이다”, “고행 쫄?” 등 이른바 ‘B급 감성’을 더한 불교 관련 문구들이 새겨져 있었다. 매장 한편의 ‘업보청산’ 부스에선 지난해에 한 일 가운데 후회되는 일을 종이에 적어 파쇄기에 넣는 이벤트가 진행됐고, 참여자들이 직접 파쇄기를 돌리는 장면을 찍어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는 곳은 불교 관련 상품을 만드는 한 브랜드. 운영사 측은 판매 추이를 바탕으로 8일 동안 약 8만명 이상이 이곳을 찾은 것으로 추산했다. 하루에 1만명이 넘는 사람이 다녀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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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팝업 매장의 입구. ″업보 청산의 문″이라고 적힌 구조물 아래에 방문객들이 저마다의 바람을 적어 뒀다. 이규림 기자

젊은 층 사이에선 이처럼 종교를 무겁고 진지한 것이 아닌, 즐길 거리로 여기는 ‘라이트(light·가벼운) 신앙’이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다. 불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전국 곳곳에서 ‘2025 예수님 생일카페(생카)’란 이름으로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됐고, 일부는 대기 없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방문객이 몰렸다. 기독교 행사에 K팝 팬덤 문화를 접목한 행사다. 좋아하는 아이돌 생일에 팬들이 카페를 빌려 내부를 아이돌 사진으로 꾸미고 굿즈를 나눠주거나 아이돌 퀴즈 등의 체험 행사를 운영하는 것처럼,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카페를 운영한 것이다. 방문객 대부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행사 소식을 알고 찾아온 청년들이었다.

다른 세대와 비교하면, 젊은 층은 종교를 믿는 사람의 비중이 높지 않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5년 종교인식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18~29세의 무종교인 비율은 72%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그런데도 종교 관련 행사는 인기를 끌고 있다. 재밌는 콘텐트나 ‘힙한’ 굿즈들로 채운 덕분에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의‘문화 콘텐트’로 여기고, 부담 없이 이런 곳을 방문하는 젊은 층이 많은 것이다. 실제 지난해 말 ‘2025 예수님 생일카페’를 주최한 한 단체에 따르면, 카페 방문객 5명 중 1명은 비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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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불교 팝업 매장 매대 앞에서 방문객들이 상품을 구경하고 있다. 이규림 기자

실제 라이트 신앙 이벤트가 열리는 곳을 찾은 다수 방문객도 “기존 종교 행사와는 달리 재밌다”는 말을 꺼냈다. 지난 4일 불교 브랜드 팝업 매장을 방문한 임모(24)씨는 “홍보물에서 팔을 괴고 누운 부처 이미지를 보고 재밌어 보여서 일부러 찾아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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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팝업 매장 한 편엔 스님이 열쇠고리에 그림을 그려주는 부스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규림 기자

또 일부 방문객들은 일반적인 이벤트와 달리 ‘힐링’도 동시에 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친구들과 팝업 매장을 찾은 허모(21)씨는 “무교지만 불교 사상을 떠올리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느낌이라, 평소에도 불교에 관심이 많고 팝업 매장도 찾아오게 됐다”고 했다. 같은 날 매장에 방문한 천주교 신자 하모(25)씨도 “믿는 종교는 다르지만, 평소 불교 배경음을 틀어 놓고 명상을 즐기기도 한다”며 상품들을 자세히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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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찾은 한 불교 팝업 스토어의 벽면. ″일상 속 깨달음을 나눠달라″는 질문에 청년들이 ″인생은 고통이니 받아들이자″는 등 재치있는 답변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 뒀다. 이규림 기자

전문가들은 ‘라이트 신앙’ 트렌드를 통해 젊은 층이 종교를 향유하는 방식이 다양해졌다고 분석했다. 이원규 감신대 종교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청년들이 기존 종교의 딱딱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 편한 방식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종교를 향유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 소재 한 대학 소속 종교학 교수는 “최근 젊은 세대는 특정 종교를 마냥 믿기보다는, 개개인의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종교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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