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세 손가락 잘리자 해고 통보…코리안 드림은 악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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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네팔 청년 수메스 바르마. 그는 3년 전 전북 한 농장에서 일하다 세 손가락을 잃었다. 김경록 기자
네팔 국적의 수메스 바르마(38)는 아내와 6살 아들을 본국에 두고 7년 전인 2019년 한국에 왔다. 아픈 부모의 치료비와 의사를 꿈꾸는 아들의 교육비가 필요했던 그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곧바로 전북의 한 농장에 취업한 그는 월급의 절반 이상을 가족에게 보냈다. 하루 10시간 이상 소를 돌보던 그에게 2023년 사고가 닥쳤다. 수메스의 왼손이 순식간에 사료 발효·배합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손가락 네개가 잘리고 구급대원이 검지손가락 하나만 찾아 접합했지만 왼손 기능을 모두 상실했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 통지였다. 산재 보상금 4100만원을 받았지만 대부분 치료비로 썼다. 네팔의 아들은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올해 4월까지 비자를 연장하고 농장주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농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을 잃은 네팔 청년 수메스 바르마가 가지고 다니는 약 봉지와 의수. 김정재 기자
필리핀인 린돈 델핀(49) 역시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국으로 왔다가 몸 한쪽이 마비되는 장애를 얻었다. 2016년 9월 수도권의 한 철강 제조업체에서 고층 작업 중 추락사고를 당해 뇌경색이 왔다. 그는 수메스처럼 소송을 하며 한국에서 버틸 여력이 없어 2018년 치료를 위해 본국으로 돌아갔고, 아내 아비게일이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생계를 잇고 있다. 아비게일은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일하다 다쳤지만 간병인 지원조차 받지 못한 채 돌아왔다”며 “가장이 무너지면서 우리 가족의 불행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 땅을 밟은 뒤 산재로 숨진 외국 노동자도 2020년 118명, 2021년 129명, 2022년 108명, 2023년 112명, 2024년 114명 등 매년 100명을 웃돌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에 의뢰한 이주노동자 사망 원인 분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률은 내국인의 2.3~3.6배에 달했다. 업무 중 다친 이주노동자의 산재 신청 건수도 8062건(2020년)→8886건(2022년)→1만161건(2024년)으로 5년 연속 증가세다.
신재민 기자
건설·제조업 등 한국인이 기피하는 위험 업종에서 주로 일한다는 점 외에 의사소통 장애가 이주노동자 산재사고 비율이 월등히 높은 요인으로 꼽힌다. 이주민 지원단체 희망웅상의 이효나 사무국장은 “사고 노동자 대부분이 사전에 위험을 인지하는 등 전조 증상을 겪었지만 사업주 등에게 호소하는 데 언어 장벽에 가로막혔다”고 전했다. 실제 수메스는 “사장님에게 위험하다고 말하려 했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혼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회고했고, 아비게일은 “린돈도 사고 직전 어지럼증이 있었지만 설명을 하기 어려워했다”고 주장했다.
제조업·건설업·농축산업 등 내국인 구인난이 심한 분야에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게 한 비전문취업(E-9) 비자가 산재율을 높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이주노동자의 대부분인 34만4000여 명이 E-9 비자로 체류하는데, 이 비자는 한국어 능력시험과 간단한 기능 수준 평가에 합격하면 발급 요건이 충족된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기업들의 인력난 호소 때문에 업종이 늘어났고 자연스레 취업 허들도 낮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주가 이주노동자의 입국 전 교육 등 채용 관련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며 “양질의 노동력을 원하면서도 인적자본 투자는 하지 않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업주에게 고용부담금을 부과하고 이를 통해 현지에 인력 양성 기관을 설립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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