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관세와 이민'의 모순 직격 당한 조지아...전화위복 노력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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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 서배나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출입로 ‘LG 대로’엔 트럭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공장 본관 건설은 가까스로 마쳤지만, 아직 설비 작업이 완료되지 않아 공장은 가동되지 않고 있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에 위치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공장의 건설현장. 지난해 9월 미국 이민당국의 무차별적 구금 사태를 겪은 이곳은 공장 본관 건설까지는 가까스로 마무리됐고, 현재 설비 작업을 진행하며 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중앙일보는 지난 15일(현지시간) 한국인 317명을 포함한 475명의 근로자들의 구금 사태가 발생했던 서배나를 다시 찾았다. 서배나 한국 근로자들에 대한 무차별 구금 사태는 취임 1년을 맞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와 이민 정책이 충돌하며 모순을 일으킨 대표 사례로 꼽힌다.
아물지 않은 ‘상처’…“지금도 두렵습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에 위치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공장의 건설현장. 지난해 9월 미국 이민당국의 무차별적 구금 사태를 겪은 이곳은 공장 본관 건설까지는 가까스로 마무리됐고, 현재 설비 작업을 진행하며 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점심 시간이 되자 배터리 공장 앞 공터에서 히스패닉계 부부가 근로자들에게 팔 남미식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기자가 다가가자 “영어를 못한다”며 팔려고 꺼내놨던 음식을 도로 싣고 떠나려고 했다. 한국 기자란 말을 듣고서야 “한국은 고마운 친구”라며 경계를 풀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에 위치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앞 공터에서 남미계 근로자들이 도시락을 파는 차량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이곳에선 지난해 9월 한국인을 비롯한 근로자 400여명이 구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수년간 한국 공장 앞에서 도시락을 팔아 생계를 꾸린다는 알베르토 부부는 “공짜니까 걱정말라”며 커피를 건넨 뒤 “체포된 사람 대부분은 정상적 비자가 있는데도 비극이 벌어졌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라틴계는 무서워서 돌아오지 못했다”며 “어렵게 돌아온 상당수도 언제 체포될지 몰라 일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에 위치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공장의 건설현장. 지난해 9월 미국 이민당국의 무차별적 구금 사태를 겪은 이곳은 공장 본관 건설까지는 가까스로 마무리됐고, 현재 설비 작업을 진행하며 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도시락을 집어든 LG엔솔 협력사 소속 크리스는 “우린 일을 하러 온 것이지 나쁜 짓을 하러온 게 아니다”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나는 단속을 피했지만, 동료들은 다 잡혀갔다”며 “잘못이 없는데 죄인 취급을 받으며 또 언제 잡힐지 걱정하는 게 너무 슬프고 두렵다”고 말했다.
강경한 ‘관세·이민’의 모순…韓 공장서 노출
조지아주 서배나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구금 사태엔 지난 1년 트럼프 2기 행정부를 규정하는 핵심 정책이 어떻게 구현됐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경민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정책의 핵심축인 관세를 무기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을 압박해 대미 투자를 사실상 강제했다. 대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제1 직접 투자국이 됐다. 첨단 산업 인프라가 전무한 현지에 들어선 공장에는 공기를 최대로 줄이기 위해 한국의 전문 인력들이 투입됐다.
박경민 기자
그런데 정책의 또다른 한축인 강경한 이민정책이 모순을 자초했다. 미국 첨단 산업의 기초이자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공장을 만들던 한국인 전문 인력들을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단속 성과를 채우기 위한 손 쉬운 ‘먹잇감’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ICE의 한국인 구금에 대해 “불쾌했다(not happy)”며 “전문가들 데려올 수 있게 허용하지 않으면 공장 문을 절대 열 수 없다”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입국 거부’ 줄어…“불안한 상황 그대로”
석달이 넘게 지났지만, 지난해 발생한 정책적 모순의 희생양이 돼 사실상 추방됐다가 재입국한 한국인 근로자들은 지금까지도 “비참하게 끌려가는 장면을 한국에 있는 가족들까지 다 봐버렸다”며 한사코 실명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민단속으로 체포됐던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애틀랜타 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지난해 9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을 나서며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익명을 원한 A씨는 “구금 사태 이후 ESTA(전자여행 허가제)를 제시해도 ‘LG공장 간다’고 하면 프리패스 입국이 된다”며 “이럴 거였으면 그 사태가 왜 났던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B씨는 “전문 인력이 한국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쫓겨났던 사람이 어차피 돌아와야 한다”며 “불안하게 일을 하는 상황은 사실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8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직원들이 수감된 포크스턴 수용시설에 근로자들이 푸른색 수용복 차림으로 줄을 서서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의 손에 서류를 들고 있었다. 포크스턴=강태화 특파원
지난해 구금됐던 한국 근로자 317명 중 170명이 ESTA로 입국했고, 146명은 B1(사업)·B2(관광) 비자로 일했다. ICE는 이를 “불법으로 일한 것”이라며 무차별 체포 작전을 벌였다. 한·미는 비자 개선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만 뚜렷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현지 여론 갈려…“모순” “고용 적어”
현지인들도 당시 상황을 비판했다. 특히 외국 기업의 투자를 종용한 뒤, 투자 기업이 건설 중인 공장에 대해 벌인 대대적 단속은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란 주장이 많았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 다운타운에서 만난 카일은 자신을 현대차의 직원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의 회사 ID카드를 자랑스럽게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그는 한국 기업이 지역 사회에 좋은 일자리를 공급하고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다운타운에서 만난 카일은 현대차(HMGMA) 마크가 적힌 ID카드를 꺼내보이며 “나는 현대차 직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서배나에는 항만 관련 일자리밖에 없는데 외국 기업의 투자로 좋은 일자리가 늘어났다”며 “서배나엔 공장을 지을 기술자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아는데 일자리를 만들어줄 공장을 짓는 기술자를 추방한 건 완전한 모순”이라고 말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에 위치한 인력공급 업체. 20년 넘게 서배나에서 인력 공급 사업을 해온 이 업체는 한국 기업들이 공장을 완공한 뒤에도 현지 인력 채용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있다는 말을 전했다. 이 업체는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글 브로셔를 제작하고 있었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반면 투자 규모에 비해 외국 기업의 현지 고용이 저조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인력 업체의 대표 보니 산체스는 “항만 산업에 집중된 서배나엔 첨단공장을 지을 인력이 없다”면서도 “우리는 서부 조지아와 앨라배마 등에서 인력을 이미 확보했지만 (현대차 등) 공장 가동 뒤에도 현지 채용 관련 요청이 거의 없다”고 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에 위치한 인력공급 업체. 20년 넘게 서배나에서 인력 공급 사업을 해온 이 업체는 한국 기업들이 공장을 완공한 뒤에도 현지 인력 채용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있다는 말을 전했다. 이 업체는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글 브로셔를 제작하고 있었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그는 이어 “관세 정책으로 항만 산업이 침체를 맞은 상황에서 지역 사회는 한국 기업에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향후 적극적 협력이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위해 만들고 있다는 한글 브로셔를 보여주기도 했다.
‘전화위복’ 노력…장학금·공헌 강화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도 이러한 불만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구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는 노력이다. LG엔솔은 “현지 일자리를 뺏는다”는 주장과 관련 구금 사태 전 200여명 수준이던 현지 채용 규모를 두배 이상 늘렸다.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돕는 다수의 사회공헌 활동도 시작했다.
15일(현지시간) 기자가 도착한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 공항엔 이 지역에 초대형 생산시설을 구축한 현대차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가 전시돼 있었다. 차량엔 '조지아산'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현대차도 구금 사태 직후인 지난해 10월 서배나주립대에 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서배나주립대는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 미래’라는 현대차의 비전을 실천하겠다”며 교육대의 이름을 ‘현대교육대학’으로 개편했다.
임태환 조지아 동남부 연합한인회장은 “한인 사회도 구금 사태를 계기로 지역에 대한 공헌과 공존의 필요성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며 “한인회의 지역 공헌 활동을 시작했고, 특히 2월부터는 공공부문 인사들과 정기적 소통 채널을 개설해 대화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국계 하원의원 도전…“韓 입지 확대해야”
이런 가운데 구금 사태를 겪은 서배나엔 한국계 유진 유(한국명 유진철) 후보가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장을 냈다.
15일(현지시간) 한국계 유진 유(한국명 유진철)가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의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나설 공화당 후보 경선을 위한 선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유진 유가 출마한 서배나에선 지난해 9월 한국인 근로자를 포함한 400여명이 미 이민당국에 구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유 후보는 “구금 사태는 공장 건설 인력을 위한 비자 등 한국 상황을 이해하고 구체적 절차를 챙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했다”며 “조지아도 한국 기업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추가 투자를 받을 수 있는데, 이해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불상사는 지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인과 한국 기업의 지원을 받는 정치인이 있었다면 최소한 지난해처럼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태는 막고 지역과의 공생을 고민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후보는 공화당원들을 상대로 열린 정견 발표회에서도 한국의 추가 투자가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단순한 한국 기업이 아닌 조지아에 정착한 기업이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발언에 당원들 사이에선 큰 박수가 나왔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 몽고메리 카운티에서 열린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 후보자 정견 발표회에 켄 야스거 공화당 조지아 주지사 선거 후보자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지아에선 지난해 9월 한국인 근로자를 포함한 400여명이 미 이민당국에 구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조지아 주지사 선거에 도전하는 켄 야스거 후보는 중앙일보에 “작년 구금사태는 연방 정부가 주의 대한 권한을 넘어 개입한 사례”라며 “당적과는 무관하게 외국인 노동자들이 조지아의 경제를 이끄는 상황에서 지난해 9월에 발생한 부끄러운 일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반면 서배나를 지역구로 둔 현직 하원의원인 버디 카터는 “조지아에는 전국에서 6번째로 많은 50만명의 불법이민자가 살고 있고, 국토안보부에 더 많은 지원 병력을 요청했다”며 강성 지지층을 자극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 몽고메리 카운티에서 열린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 후보자 정견 발표회에 이 지역의 현직 하원의원인 버디 카터가 참석해 지역 공화당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서배나 지난해 9월 한국인 근로자를 포함한 400여명이 미 이민당국에 구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카터 의원은 11월 중간선거 때는 상원의원직에 도적할 예정이고, 그의 후임 하원의원 선거엔 한국계 유진 유(한국명 유진철)가 후보로 등록하고 당내 경선을 치르고 있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그는 지난해 구금 사태 직후에도 이민당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공장 건설이 중단되고 트럼프 대통령의 질책성 발언이 나오자 “한국 근로자들이 빨리 돌아와야 한다”며 입장을 바꿨다. 10년간 이곳에서 5선을 한 그는 11월 선거에선 하원 대신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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