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집 밖 나오지 말라" 사실상 계엄령…장갑차 누비는 공포의 이란

본문

지난해 말 시작된 이란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2주가량 이어진 끝에 보안군의 대규모 유혈 진압으로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수도 테헤란은 무장 병력과 친정부 민병대가 도심을 장악한 상태로, 외신들은 현재 상황을 ‘비공식 계엄령(unofficial martial law)’에 가까운 강경 통제 체제로 평가하고 있다.

bt244d5533a6bd6b561e72284421d95476.jpg

지난 8~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반정부 시위 도중 전소한 버스. 사진 X캡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테헤란 동부 하프트호즈 광장 등 주요 시위 거점에 검은 제복의 진압 경찰과 친정부 바시즈 민병대, 장갑차가 상시 배치돼 있다고 전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저격수가 장갑차 위에 배치된 모습도 포착됐다. 한 이란 블로거의 X 계정에 올라온 영상에선 거리 한쪽에 전소한 시내버스와 빌딩이, 테헤란 육교엔 ‘국왕 만세. 이것은 나라를 위한 팔레비의 마지막 싸움이다. 국왕 만세’라는 문구의 허름한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bt509f876d47b9910fc7588a009de9b421.jpg

이란 호메이니 거리와 코쉬 거리 교차로에 위치한 아얀데 은행 건물이 18일(현지시간) 화재로 인해 전소됐다. 사진 X캡처

bt9ffbf1aa091db659bbdac223d6a52183.jpg

이란 테헤란 육교에 '국왕 만세. 이것은 나라를 위한 팔레비의 마지막 싸움이다. 국왕 만세'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 X캡처

시민들의 일상은 여전히 정상화되지 못했다. 인터넷은 1주일가량 차단된 상태이며, 현금 인출을 막기 위해 ATM 기기에는 금속 차단막이 설치됐다. 대학들은 휴교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민들의 증언을 인용해 “도시 전체에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테헤란과 인근 도시 곳곳에선 무장한 군인들이 확성기로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경고하며 사실상 통행을 통제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한다. FT는 “유혈 진압 이후 테헤란의 거리는 조용해졌지만, 주민들의 분노와 상실감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고 전했다.

btb8dd77fc713bdc77d3b7cab1af30da4a.jpg

지난 8~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거리에 나온 반정부 시위대들 행진. 사진 X캡처

인명 피해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날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시위 과정에서 3919명이 사망했고 2만40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도 수천 명의 사망 사실은 인정했지만,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정부는 시위 배후로 미국과 이스라엘 등 외세를 지목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이스라엘, 미국과 연계된 세력이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고 수천 명을 죽였다”고 주장했으며,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도 “최고지도자를 향한 공격은 전면전과 같다”고 했다.

btf2fa7c85d800d78e0c990fad14bc3c66.jpg

1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친정부 집회 도중 사람들이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던 이란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은 일단 보류됐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가 이날 전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을 진지하게 검토했지만, 중동 내 미군 전력 부족과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의 우려, 이란 측의 비공식 진정 메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적으로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실제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 측과의 비공개 소통에서 시위대 처형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이후 “(공격에) 아주 가까운 순간까지 갔지만 스스로 판단해 멈췄다”고 밝혔다고 한다.

btdf4a3c0ab02efe0b2ba42f7e5daa228d.jpg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이란 반정부 연대 시위 도중 한 시위자가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아돌프 히틀러의 얼굴을 겹친 모습의 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편 고국이 사실상 계엄 상태에 놓인 상황에서도 정권과 밀접한 일부 부유층 이란인들은 해외에서 전혀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란 국경과 가까운 튀르키예 동부 휴양도시 반(Van)에 최근 부유한 이란인들이 몰려와 술자리와 파티를 즐기고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클럽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은 입장료와 술, 안주, 물담배 등을 포함해 이란 평균 월급(약 11만원)에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한 이란인은 매체에 “최근 튀르키예에 온 부유층 인사들은 정권으로부터 혜택을 받아온 사람들”이라며 “이란에 머무는 것이 불안해 잠시 떠난 것이고, 이란에서 번 돈을 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 이란 대통령 “최고 지도자 공격은 전면전과 같아”

  • "도움의 손길 간다"던 트럼프 돌변…이란 시위 나선 가장 숨졌다

  • “이란군, AK소총에 칼도 휘둘러”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9,770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