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상ᄉᆞ리·신샹…한글 표기는 달라도 편지가 전하는 건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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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반면 인터넷은커녕 교통수단도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편지가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수단이었죠.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전까지는 양반 계층이 주로 학습하던 한자가 유일한 글자였기 때문에, 편지를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어요. 훈민정음이 탄생한 후 다양한 계층에 보급되면서 편지로 서로 소식과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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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안(왼쪽)·이서준 학생기자가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던 조선시대 사람들처럼 한글편지를 적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사용된 조선시대 한글편지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 '한글편지, 문안 아뢰옵고'가 진행 중입니다. 이서준·장이안 학생기자가 황혜전 학예연구사와 함께 당시 한글편지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보기로 했어요. "이번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이 개관을 준비하던 시기부터 여러 시민이 기증한 한글편지를 정리 및 연구해 한자리에 모은 성과를 보여주는 기증유물특별전입니다. 편지와 같은 고문서 외에도, 보존 가치가 있으나 방치될 경우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여러 유물, 특히 서울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유물들을 기증받아 수장고에서 보관하고, 전시를 통해 시민과 공유하죠. 이번 전시에선 아들과 어머니, 시부모와 며느리, 사돈과 형제자매 등 다양한 관계의 안부인사, 물건 목록 등을 포함한 총 60여 건의 편지를 만나볼 수 있어요."

조선시대 당시 서로 안부·소식·용무를 전하는 편지는 간찰(簡札)이라 불렸어요. 한글로 쓴 편지는 언문간찰·언문편지·언서·언찰·내간(來簡) 등이라고 했죠. 전시실에 가득한 한글편지를 살피던 이안 학생기자가 "한글편지는 언제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으며, 주로 어떤 계층이 작성했나요"라고 물었어요. 황 학예사가 "당시 사대부 남성들은 한문에 익숙했기 때문에, 한글편지는 대개 사대부 여성이 많이 썼어요. 하지만 남성들도 어머니·부인·딸·며느리 등과 소식을 전하고 정을 나누기 위해 한글로 편지를 쓰곤 했죠. 또 18세기 상공업의 발달과 함께 부를 축적한 중인과 상민 사이에서도 한글편지가 널리 퍼졌어요. 편지를 쓰는 법을 담은 책이 나올 정도였죠. 이렇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널리 사용했고, 구어적 표현을 쉽게 쓸 수 있었기에 당시 물가 등 일상생활에 대한 내용도 편지를 통해 알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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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전(맨 왼쪽)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조선시대 한글편지의 보편화 과정을 설명했다.

황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을 조선 후기에 출간된 『언간독』 앞으로 데려갔어요. 한글편지의 서식을 모아놓은 책인데, 한문편지 형식을 '간독'이라 칭했기에 언문(諺文)인 한글편지 형식은 '언간독'이라 부른 거죠. 이 책에는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 형과 아우, 사위와 장인 등 받는 사람과 상황에 맞춰 쓸 수 있는 편지의 예시가 담겨 있어요. 또 계절과 상황에 따른 용어, 편지봉투를 쓰는 방식 등이 자세히 소개돼 있습니다. 『언간독』을 보완해서 『증보언간독』 또는 『징보언간독』이란 이름으로 증보 간행하기도 했어요. 이 책으로 당시 조선사람들은 편지를 쓰는 방법을 쉽게 배울 수 있었고, 이는 한글편지 대중화에 큰 도움이 됐죠.

그럼 조선시대 한글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볼까요. 먼저 어머니와 아들 간의 편지입니다. 사대부가의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한글을 읽고 적는 법을 배우며, 편지 쓰는 법을 익혔죠. 한양에 살던 해주 오씨 가문의 어머니가 1875년 12월 796리 떨어진 순천에 부임한 아들 오준영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를 살펴봅시다. "일긔 고ᄅᆞ디 못ᄒᆞ니 년ᄒᆞ여 신샹 무양ᄒᆞ 일 알고져 ᄒᆞ며 ᄒᆞ번 쇼식 드르면 다시ᄂᆞᆫ 듯기 묘연ᄒᆞ니 만니 타국이나 다름업ᄉᆞ니(날씨 고르지 못하니 내내 신상이 무탈한지 알고자 하며 한 번 소식을 들으면 다시 듣기까지 묘연하니 먼 외국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라는 구절에서 아들을 향한 깊은 애정과 그리움을 엿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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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 살던 어머니가 순천부사가 돼 멀리 떠난 아들에게 안부를 묻는 내용이 담긴 오준영 모친의 한글편지. ⓒ 서울역사박물관

이 편지의 수신인 오준영(1829~1894)은 1861년(철종 12) 문과에 급제한 뒤 부응교·사간·이조참의·승지·형조판서 등을 거쳐 경기도관찰사·황해도관찰사까지 역임한 인물입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오준영은 1874년(고종 11) 7월부터 1876년(고종 13) 8월 초까지 순천부사로 재직했는데, 이때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인 것이죠. 오준영 역시 1891년 3월 숙모에게 안부를 묻고, 공무로 바삐 지내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한글편지를 썼어요. 한문에 능한 사대부 남자임에도 받을 분을 배려해 한글로 편지를 쓴 거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살펴본 여러 한글편지 속 한글의 형태나 표기법은 오늘날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창제 당시 훈민정음의 자음과 모음 중 오늘날에는 쓰지 않는 글자가 있기 때문이에요. 훈민정음은 자음 ㄱ·ㅋ·ㆁ·ㄷ·ㅌ·ㄴ·ㅂ·ㅍ·ㅁ·ㅈ·ㅊ·ㅅ·ㆆ·ㅎ·ㅇ·ㄹ·ㅿ의 17개와 모음 ㆍ,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의 11개, 총 28자모로 창제됐어요. 하지만 점차 4자(ㅿ, ㆁ, ㆆ, ㆍ)를 사용하지 않게 되어 현재는 오늘날 우리가 24자모로 표기법이 많이 달라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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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며느리가 작은 아버님께 평안한 새해를 기원하는 인사가 담긴 조선 후기 한글편지. ⓒ 서울역사박물관

한글 표기법 외에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편지를 살피던 서준 학생기자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가로쓰기와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글자를 세로쓰기로 흘려 썼네요"라고 말했어요. "맞아요. 그게 큰 차이점이죠. 오늘날과는 달리 띄어쓰기도 없고요. 또 편지를 쓰는 데 필요한 종이·먹·붓은 당시 귀했기 때문에 편지를 쓸 때도 최대한 여백 없이 빼곡히 써 내려 갔어요."

참고로 조선시대 문안 편지에서 윗사람에게 쓰는 편지글의 첫마디나 끝말에는 한문의 상서(上書)를 우리말로 바꾼 표현인 '상ᄉᆞ리/상ᄉᆞᆯ이'를 적었는데, '올리는 말 또는 글'이란 뜻이죠. 또 본문에서는 윗사람의 몸을 '몸과 마음의 형편'이란 뜻의 기체후(氣體候)·기후(氣候)로 지칭하며, 강녕(康寧·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함)·안녕(安寧·아무 탈 없이 편안함) 등의 표현과 함께 건강 상태를 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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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수단도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정성스럽게 적어 내려간 편지가 소식을 주고받는 수단이었다.

안부를 묻는 내용 외에 필요한 물건이나 돈 등을 보내달라는 실용적인 내용도 썼어요. 1881년 작성된 김사성 간찰에는 "엿길금 닛거던 조곰 보ᄂᆞㅣ시고 읍거덧 보리 ᄒᆞ 영계와 가로난 보ᄂᆞㅣ실 편 읍거덧 보ᄂᆞㅣ시지 마시ᄋᆞᆸ(엿기름이 있으면 조금 보내시고, 없으면 보리 1영을 개어 가루로 보내시는데 인편이 없으면 보내지 마세요)"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당시 엿기름은 보리에 물을 부어 싹이 트게 한 다음에 말린 것으로 식혜나 엿을 만드는 데 쓰였죠.

조선시대 한글편지에는 개인적인 내용뿐 아니라 정치·사회 소식과 시대 변화에 대한 생각도 함께 담겼어요. 1882년(고종 19) 8월 작성된 한글편지에는 "곤젼은 복위되셔나니 신민의 경ᄉᆞ오이나 대쳬 서울 소요ᄂᆞᆫ 엇더ᄒᆞ온지 들을 길 업ᄉᆞ니(곤전이 복위되셨으니 신민의 경사입니다만, 대체 서울의 소요는 어떠한지 들을 길이 없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중궁전을 뜻하는 곤전(坤殿)의 복위라는 표현과 서울의 소요라는 표현을 통해 1882년 6월 급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임오군란으로 피신한 명성황후가 7월 다시 궁으로 돌아온 일을 언급한 걸 알 수 있죠. 이 편지의 봉투에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적혀있지 않은데요. 어수선한 시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생략한 걸로 보입니다.

어머니의 정이 듬뿍 담긴 안부편지부터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는 편지까지. 조선시대 한글편지는 마음을 잇는 다리이자 소식을 전하는 글이었어요. 또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기도 하죠. 요즘은 모바일 메신저와 e메일 등으로 주로 소식을 주고받기 때문에, 정성스럽게 써 내려 간 한글편지가 귀한 시대인데요. 전시실에서는 편지 한 통에 담긴 소식이 귀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직접 한글편지를 써볼 수 있는 코너도 마련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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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한글편지 서식을 모은 『증보언간독』. 『언간독』의 증보판으로, 한글편지 보편화에 큰 역할을 했다. ⓒ 서울역사박물관

이안·서준 학생기자는 평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담임 선생님에게 편지를 적어보기로 했죠. 이안 학생기자는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게 지도해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서준 학생기자는 중학교 1학년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편지로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소중 독자 여러분도 새해를 맞아 한글편지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따뜻한 인사를 나누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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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안(왼쪽)·이서준 학생기자가 전시 '한글편지, 문안 아뢰옵고'를 찾아 조선시대 한글편지에 대해 살폈다.

동행취재=이서준(경기도 평촌중 1)·장이안(서울 사대부초 5) 학생기자

한글편지, 문안 아뢰옵고

기간 3월 2일(월)까지
장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B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30분 전 입장 마감),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회 '한글편지, 문안 아뢰옵고'를 관람하며 약 300년 전쯤부터 사람들에게 널리 사용되어온 한글편지 유물들을 감상했어요.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모바일 메신저나 e메일 같은 실시간 소통 수단이 없어 주로 편지로 소통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꽤 재미있고 신선할 것 같았죠. 또 당시 한글이 지금이랑 정말 다르고 읽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에 체험코너에서는 담임 선생님께 드릴 편지를 썼는데,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편지라 그런지 쓰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편지를 쓰는 게 어렵기도 했죠. 그래도 써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빨리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보내는 사람으로서도, 받는 사람으로서도 편지는 의미 있고 소중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고마운 일이 있거나, 깊이 있는 대화가 필요한 사람과는 편지로 대화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서준(경기도 평촌중 1) 학생기자

이번 취재는 한글편지의 역사와 유물들에 관한 전시였어요. 옛날에는 문자나 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멀리 사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모두 편지로 이루어졌다고 해요. 전시에는 문안 인사를 드리는 편지와 안부를 묻는 편지 등이 있었는데, 여러 편지를 보며 그 시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봤어요. 한글편지를 직접 써서 우체통에 넣는 체험도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이 전시를 보고 나니 저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일 년 동안 즐거운 수업을 준비해 주신 담임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거든요. 부끄러워서 평소에는 전하지 못했던 감사한 마음을 글로 전할 수 있어 뿌듯했어요. 덕분에 말로는 전하기 어려운 마음도 글로 표현하고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어요.

장이안(서울 사대부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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