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시간을 구부린 연주…임윤찬은 ‘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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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중앙음악콘서트에서 임윤찬(위 사진)은 지휘자 정명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슈만의 협주곡을 연주했다. 김성룡 기자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신중하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로베르트 슈만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은 인상적인 네 개의 음을 첫 주제로 삼는다. ‘도’에서 시작해 아래로 ‘라’까지 내려가는 음형이다. 임윤찬은 네 개의 음 사이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려 연주하며 서정적인 노래를 시작했다.

27일 오후 중앙음악콘서트가 열린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임윤찬은 지휘자 정명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슈만의 협주곡을 연주했다. 임윤찬이 2023년부터 연주하기 시작한 이 협주곡을 한국 무대에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슈만의 협주곡을 북미·유럽 등에서 지속해서 연주하며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슈만은 이 협주곡을 35세에 완성해 초연했다. 화려한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부상으로 좌절했던 그는 “기교적인 협주곡은 쓰지 못하겠다”는 편지를 아내인 클라라에게 남기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내밀한 대화를 그려냈다. 독주자가 기량을 과시하는 대신 마치 작은 규모의 실내악처럼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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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이 한국 무대에서 슈만의 협주곡을 연주한 건 이번 공연이 처음이다. 김성룡 기자

임윤찬은 슈만의 정신을 이해해 화려함 대신 짜임새를 선택했다. 음 사이를 정밀하게 조정해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췄고, 악단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며 함께 진행했다. 특히 슈만이 평생의 사랑인 클라라의 이름을 음표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첫 주제, 네 개의 음은 속도를 자유롭게 조절하며 의미를 더했다. 임윤찬 특유의 시간을 구부리는 해석이었다.

이 곡은 본래 환상곡이었다. 슈만은 ‘환상곡’이라는 제목으로 1악장을 작곡했고 훗날 여기에 두 개 악장을 덧붙이면서 협주곡으로 명명했다. 임윤찬은 많은 장르의 작품에서 환상성을 발견하는 피아니스트다. 슈만의 협주곡에서도 그는 일정한 규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환상곡의 특성을 자유롭게 살려냈다. 특히 1악장 제시부 이후의 갑작스러운 느린 부분(안단테)에서 환상의 요소가 제대로 살아났다. 오케스트라 없이 연주하는 카덴차 또한 자유롭게 흘러가는 하나의 환상곡과 같았다.

임윤찬은 충분히 노래하고 음악에 머물면서 상상하고 꿈꾸는 피아니스트다운 해석을 제시했다. 슈만 협주곡의 기존 음반들과 비교해 보면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현대적인 해석보다는 알프레드 코르토의 시적인 표현에 가까운 연주였다.

8분음표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3악장에서도 임윤찬은 민첩하되 과장하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의 스타카토가 반복되는 부분에서는 국제 콩쿠르의 젊은 우승자다운 면모로 완벽하게 악보를 소화해냈다.

이날 공연의 전반부는 드레스덴의 전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슈만은 라이프치히에서 드레스덴으로 이주해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했고 1845년 이 도시에서 클라라 슈만이 이 작품을 초연했다. 27일 공연에서 첫 곡으로 연주된 ‘마탄의 사수’ 작곡가인 카를 마리아 폰 베버 역시 드레스덴의 상징적인 음악가다. 181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드레스덴 오페라의 감독으로 일하며 독일 오페라의 부흥을 이끌었고 훗날 바그너 오페라의 탄생에도 영향을 줬다. ‘마탄의 사수’는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독일 오페라의 정수이며 47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단골 연주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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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지휘자(가운데)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 김성룡 기자

지휘자 정명훈은 오랜 전통의 오케스트라와 특별히 드라마틱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호흡으로 풍성하고 깊은 소리를 만들어냈다. 특별히 유명한 2악장의 ‘고잉홈’ 멜로디는 보다 영적이었고, 4악장의 팡파르는 호전적이기보다는 따뜻했다. 3악장에서는 현악기의 소리를 날카롭게 다듬어 드레스덴 사운드로 극적인 드라마를 써냈다. 드보르자크와 같은 두텁고 웅장한 교향곡에 강한 정명훈은 한국 투어를 위한 작품으로 ‘신세계로부터’ 교향곡을 특별히 선곡했다고 한다.

정명훈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2001년 처음 연주했고 2012년에는 이 악단의 첫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됐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미국 등의 투어에 함께 했고 8번의 내한 공연 중 5번을 지휘했다.

이번 공연에는 특히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의 젊은 단원들이 함께해 특별함을 더했다. 오랜 전통을 가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미래 세대 음악가들을 양성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인다. 1923년부터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으며,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와도 협력을 계속한다. 이번 내한 공연 투어에는 현악기 단원 10명이 합류해 역사적인 악단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정명훈, 임윤찬은 같은 프로그램으로 한국 연주를 이어나간다. 28일 롯데콘서트홀, 30일 평택아트센터, 31일과 다음 달 1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한국 투어 이후 임윤찬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보스턴, 또 홍콩에서 슈만 협주곡을 다시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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