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이란 끝없는 것을 시작하는 일”…단색화 거장 정상화 별세, 9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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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경기도 여주 작업실의 정상화. 사진 갤러리현대

화가로서 하고 싶은 거 다 했어요. 그런데 조금 더 잘해야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아요. 만족이란, 완성이란 있을 수 없어요. 예술이란 뭐랄까, 끝없는 것을 시작한다. 내가 끝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것을 한다….

정상화는 2023년 세계적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족을 모르던 완벽주의자, 단색화의 거장 정상화가 28일 오전 3시 40분 끝없는 세계로 떠났다. 9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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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의 정상화. 사진 갤러리현대

정상화는 1932년 경북 영덕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마산중학교 2학년 때 미술반에 들어가 석고 데생을 접한 게 시작, 3학년 때 경상남도 학생미술전람회에서 1등 상을 받았다. 고교생 신분으로 문신ㆍ최영림 등이 참여한 제1회 마산미술전에 출품, 마산 최초 미술 단체인흑마회의 일원으로도 활동했다. 피란지 부산에서 운영되던 서울대 미대에 1953년 입학했고, 1957년 인천사범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대 전위 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던 ‘현대미협’과 ‘악튀엘’ 주축 멤버로 전후의 상실ㆍ불안ㆍ두려움의 정서를 비정형의 앵포르멜식 회화로 구현했다. 1962년 서울중앙공보관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고, 이듬해 건축가 김중업의 기획으로 프랑스 파리 랑베르 갤러리에서 박서보ㆍ김종학ㆍ권옥연과 한국 청년작가 4인전에 참여했다. 1967년 파리, 1969~77년 일본 고베에서 활동하며 격자 구조의 모노크롬 회화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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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 때의 정상화. 사진 갤러리현대

캔버스 천을 자르고, 그 천을 틀에 메고, 고령토를 바르고, 굳히고, 또 바르고, 굳히고, 캔버스를 다시 틀에서 벗겨 수직ㆍ수평으로 접었다 펴 균열을 일으킨 뒤 들어내고 메꾸고 물감을 겹쳐 바르기를 반복하며 깊이와 공간감을 창출, 백색 위에 백색을 얹는 식이다. 비슷한 듯해도 어느 하나 같지 않은 그의 그림은 과정이 곧 작품이자 살아온 여정의 시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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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갤러리현대 개인전 당시의 정상화. 사진 갤러리현대

1977~92년 파리에서 활동 후 영구 귀국,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며 여주 작업실에 틀어박혔다. 2011년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2020년 대한민국 예술원 미술분과 회원이 됐다. 작품은 리움미술관, 미국 스미스소니언의 허쉬혼 미술관, 홍콩의 M+ 미술관 등지에 소장돼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은 30일.

자르고 메우기 반복, '과정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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