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펜 하나면 준비 끝…자신 있게 선 긋다 보면 작품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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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활용해 특정 이미지를 그려내는 행위를 드로잉(drawing)이라고 합니다. 펜을 이용해 화폭에 그림을 그린다면 펜 드로잉, 펜 드로잉을 통해 완성한 그림이 바로 펜화예요. 아무리 화려한 디자인의 옷을 사더라도 자주 손이 가는 건 결국 흰색 면티에 청바지인 경우가 많죠.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색깔로 그림을 구성한 유화·수채화도 좋지만, 단순한 선으로 그린 펜화는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담백한 매력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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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왼쪽)·김지우 학생기자가 초보자를 위한 펜 드로잉의 기초를 배웠다. 펜 드로잉은 익숙해지면 펜과 종이만 있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또 펜화는 붓·나이프·물감·팔레트·물통 등을 구비해야 하는 유화·수채화와 달리 종이와 펜만 있으면 그릴 수 있기 때문에 편의성도 훨씬 높아요. 그림 그리기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미술 공포증' 친구들에게도 펜화는 도전해 볼 만한 장르랍니다. 종이에 밑그림 없이 즉석에서 붓펜으로 그림을 그려 완성하는 라이브 드로잉(Live Drawing)의 대가였던 고(故) 김정기 화백, 펜으로 전통 건축·기왓장·소나무 등을 그려온 ‘기록 펜화’의 대가 고(故) 김영택 화백 등이 펜화 하면 떠오르는 국내 예술가들이죠.

펜화에는 어떤 매력이 있어 이처럼 많은 사람을 사로잡았을까요. 김보경·김지우 학생기자가 서울시 관악구 은천로에 있는 화실 크래프트 하우스를 찾아 펜화를 그리기 위한 드로잉의 기초와 그 매력을 알아봤어요. 백연숙 작가가 사람·동물·건물·풍경 등 다양한 소재를 펜 드로잉으로 그린 여러 펜화 앞에서 이들을 맞이했죠. 작품 중에는 화실에서 백 작가와 함께 소중 학생기자단을 맞이한 그의 반려묘를 그린 것도 있었어요.

10년째 펜화 작가로 활동 중인 백 작가는 도시에 살던 다람쥐와 숲속에 살던 사슴이 각자의 성향과 성장 배경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내용의 동화 『같이 사는 이야기』를 독립 출판으로 출간하기도 했죠. 백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우화로 구성한 이 동화에는 그가 직접 그린 펜화가 삽화로 담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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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숙 작가가 그린 '온기가 남은 곳'. 하나의 화폭 안에 사슴·다람쥐·생쥐 등 여러 동물이 입체감 있게 표현돼 있다. ⓒ백연숙

백 작가가 동화책에 수록된 펜화 몇 점을 소개했습니다. 숲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이미지인 '큰 눈보라'는 바람이 부는 방향과 빛의 방향, 주인공인 사슴과 다람쥐가 나아가는 방향을 통일해 역경을 극복하려는 주인공들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인데요. 펜으로 그린 흑백 그림임에도 채색한 그림 못지않은 역동적인 분위기와 자세한 묘사가 눈에 들어왔죠. 사슴과 다람쥐가 동화 속 또 다른 등장 캐릭터인 생쥐 부인에게 찾아간 내용이 담긴 '온기가 남은 곳'에서는 사슴·다람쥐·생쥐 등 여러 동물의 생김새와 털의 질감이 매우 정교하게 표현됐어요. 이 모든 작업은 펜으로 그린 결과물이랍니다.

물론 초보자가 처음부터 이렇게 섬세한 형태의 펜화를 그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지속적으로 연습하면 펜 드로잉과 친해질 수 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백 작가의 조언을 받아 탄생화 그리기를 통해 펜 드로잉의 기초를 배우기로 했어요. 생일이 8월 31일인 보경 학생기자의 탄생화는 토끼풀, 8월 29일인 지우 학생기자의 탄생화는 꽃담배죠. 백 작가가 이들 앞에 펜 드로잉에 필요한 재료인 연필·지우개·펜·종이와 각자의 탄생화 사진을 놓아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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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숙 작가의 동화책에 실린 삽화 중 하나인 '등나무 아래'. 만개한 등나무꽃을 배경으로 다람쥐와 사슴이 섬세한 선으로 표현돼 있다. ⓒ백연숙

"초보자용 펜 드로잉의 소재로 탄생화가 적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탄생화인 토끼풀 사진을 관찰하던 보경 학생기자가 질문했어요. "식물이 다른 소재보다 그릴 때 난도가 낮아요. 형태를 선으로 잘 구현하면 되고, 명암을 깊이 있게 넣을 필요도 없거든요. 또한 자신의 탄생화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죠."

이렇게 식물의 형태만 자세히 관찰해 그린 그림을 보태니컬 아트(Botanical Art)라고 해요. 보태니컬 아트의 출발점은 사진 기술이 발달하기 전 식물도감·의학서적·생태서적 등 학술서적에 식물의 생김새를 상세하게 묘사한 삽화(Botanical Illustration)인데요. 사진으로 식물의 모습을 간편하게 찍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보태니컬 아트는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했죠.

백 작가는 펜 드로잉 도전을 위한 소재가 꼭 식물일 필요는 없다며, 자신에게 제일 익숙한 물체부터 시작해도 된다고 조언했어요. 예를 들어 제일 아끼는 곰 인형이나 캐릭터 등은 이미 눈에 형태가 익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리기가 훨씬 수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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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숙(뒷줄) 작가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펜 드로잉의 기초를 설명했다. 초보자는 대상을 바로 펜으로 그리기보다 연필 스케치를 먼저 하는 게 좋다.

많은 사람이 스케치 단계에서 그리는 대상의 형태나 비율을 화폭에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아 어려워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백 작가가 보경 학생기자의 탄생화인 토끼풀 사진을 가리키며 대상을 화폭에 옮기는 단계를 설명했어요. "여기 두 장의 토끼풀 사진이 있어요. 첫 번째 사진은 꽃·줄기·잎 등 토끼풀의 전체 모습이 다 보이고, 두 번째 사진은 토끼풀의 꽃을 클로즈업했죠. 스케치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옮기고 싶은 토끼풀의 모습이 어디까지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해요. 그다음 대상을 부분별로 나누고, 그게 화폭에서 어느 정도의 비율을 차지할 것인지를 대략 선을 그어 표시하는 게 시작입니다."

보경·지우 학생기자는 토끼풀·꽃담배의 꽃·줄기·잎을 모두 그리기로 하고, 이를 감안해 화폭에 연한 선을 그어 각 부분의 비율을 표시했죠. 화폭에 옮길 대상의 비율을 선으로 구획했으면 이제 연필로 형태를 구체적으로 그리면 돼요. 심이 너무 진한 연필을 쓸 경우 스케치도 어렵고, 나중에 지우개로 지우기도 힘들기 때문에 4B 정도의 연필이 적당합니다. 최대한 상세하게 그려야 나중에 펜으로 그릴 결과물도 자세하게 나오죠.

펜 드로잉에 익숙해지면 펜으로만 그림을 그릴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외출했을 때 본 풍경을 빨리 스케치하고 싶을 때는 펜으로 바로 그릴 수도 있죠. 반면 대상을 더 정확하게 그리려면 연필로 스케치하는 단계를 거치는 게 좋아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백 작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연필로 탄생화의 형태를 자세히 묘사하는 단계를 마쳤습니다. 이제 펜으로 연필로 그린 스케치 위를 덮을 차례인데요. 백 작가는 종이에 선을 그었을 때 일정한 굵기로 나오며 잉크가 잘 마르고, 지우개로 지울 때 화폭에 자국이 남지 않는 수성펜을 추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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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화는 대상의 형태를 표현한 선과 그 위에 여러 방향의 선을 겹쳐서 명암을 표현한 에칭으로 이뤄진다. 선과 명암을 잘 활용하면 채색화 못지않은 입체감이 드러난다.

주의할 점은 펜으로 선을 그을 때 자신감 있게 그려야 한다는 겁니다. 연필로 그린 스케치에 너무 집착해 펜으로 그 위에 선을 여러 번 그리면 나중에 연필 자국을 지웠을 때 지저분한 선만 남게 되죠. 또 연필선이 너무 진하게 그려진 경우 펜이 그 위에 잘 안 묻을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지우개로 표면을 '톡톡' 두드려서 연필선의 농도를 조절한 뒤에 펜으로 덮으면 됩니다.

꽃담배를 스케치한 연필선 위를 펜으로 열심히 덮던 지우 학생기자가 "펜은 연필과는 달리 수정하기가 어려운데 선을 그을 때 실수하면 어떻게 하나요"라고 궁금해했어요. 이럴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명암 넣기랍니다.

펜 드로잉에서 쓰는 명암을 에칭(etching)이라고 해요. 백 작가가 칠판 위에 분필로 세로로 된 선을 일정한 간격으로 그었어요. 이것을 명암①이라 합시다. 이렇게 면 위에 선을 그리는 것을 '톤을 쌓는다'라고 해요. 두 번째로 명암① 위에 방향을 대각선으로 바꿔서 선을 일정한 간격으로 또 반복해 그립니다. 이것을 명암②라고 할 거예요. 세 번째로 선의 방향을 가로로 바꿔서 명암①과 명암② 위에 또 그어봅시다. 이것을 명암③이라고 합시다. 밝기의 농도로 따지면 명암①이 가장 밝고, 명암③이 가장 어둡겠죠. 이렇게 톤을 여러 겹 쌓아서 명암을 표현하는 에칭에 익숙해지면 훨씬 입체감 있는 펜 드로잉을 그릴 수 있어요. 또 펜으로 선을 그리다 실수하더라도 명암을 쌓아 만회할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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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화는 스케치 단계에서 사물을 화폭에 어떻게 옮기는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기 때문에 그림 그리기의 기초를 배우기에도 적합하다.

펜으로 연필선을 따라 그리는 단계가 끝나면 펜의 잉크가 마를 때까지 조금 기다린 뒤, 지우개로 연필 자국을 지웁니다. 그러면 펜으로 그린 선만 화폭에 남겠죠. 이때부터 에칭을 활용해 펜으로 그린 형태에 입체감을 줍니다. 대상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부터 명암을 표현하는 게 좋아요. 예를 들어 보경 학생기자가 그린 토끼풀에서는 잎맥, 그리고 꽃잎과 꽃잎 사이의 그늘진 부분이 가장 먼저 명암을 넣어야 하는 부분이죠. 또 지우 학생기자가 그린 꽃담배에서는 꽃의 중앙 부분이 검붉은색으로 가장 어두워요. 그 부분을 명암①로 대략적인 에칭의 범위를 잡아주고, 명암②→명암③ 순으로 톤을 쌓으면서 어두운 정도를 표현하는 거죠.

백 작가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흰색 빈 화폭 위에 검은색 선과 면으로 구현한 토끼풀과 꽃담배 그림이 생겨났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자신이 그린 탄생화 옆에 생일과 이름을 적고 펜화 그리기를 마무리했습니다.

"펜 드로잉은 대상의 형태를 펜으로 그리고, 그 위에 에칭으로 톤을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이 과정에 집중하면 명상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오랜 시간 그림에 집중해야 하므로 차분한 성격을 가진 친구들에게 잘 맞을 겁니다. 또 검은색 펜으로 흑백 그림을 그릴 경우 컬러로 된 그림보다 보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넓어지기 때문에 그런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백연숙 작가의 펜 드로잉 초보를 위한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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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드로잉을 처음 접한 초보자가 연습할 때는 화폭에 선을 그었을 때 일정한 굵기로 나오는 수성펜을 추천해요. 사실 펜 드로잉을 연습할 때 쓰는 펜은 어떠한 정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필기할 때 일반적으로 쓰는 볼펜으로도 펜화를 그릴 수 있죠. 다만 잉크의 점성이 강한 펜은 선을 그릴 때 뭉침이 생기는 단점이 있어요. 그래서 종이에 선을 그었을 때 잉크가 잘 마르고, 지우개로 지울 때 화폭에 자국이 남지 않는 수성펜이 좋아요. 수성펜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자신이 가진 펜의 성질이 어떤지 미리 테스트해보고 펜 드로잉을 해보세요.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이번 펜 드로잉 취재를 통해 제 탄생화인 토끼풀을 펜 드로잉으로 그리는 법을 배웠어요. 처음에는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그리기 위한 단계별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연필과는 달리 펜으로 선을 그리거나 명암을 넣을 때 지우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걱정이 됐어요. 백연숙 작가님은 차분한 성향의 어린이가 펜 드로잉에 잘 맞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오랫동안 앉아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주기적으로 5~1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거나 산책하면서 작업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없거나 자신이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하더라도 한번 도전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은 친구들이라면 펜 드로잉을 한번 해보세요.

김보경(서울 북성초 5) 학생기자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요. 펜 드로잉 취재 소식을 듣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크래프트 하우스에 들어가자마자 본 백연숙 작가님의 여러 작품과 작가님의 사랑스러운 강아지·고양이가 기억에 남아요. 백 작가님이 직접 그리신 반려묘 그림을 보니 정말 예뻐서 펜 드로잉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 연필로 스케치를 시작했을 때는 생각보다 어렵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백 작가님이 단계별로 중간중간 팁을 알려주셔서 쉽게 그릴 수 있었어요. 연필로 대상의 형태를 스케치한 뒤, 그 위로 펜을 따라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펜으로 톤을 쌓아 명암까지 더했어요. 저는 명암을 칠하는 단계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백 작가님이 톤을 쉽게 쌓는 방법도 알려주셔서 잘 완성할 수 있었어요. 화실을 방문하기 전에는 어려워 보였던 펜 드로잉을 체험해 봐서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다른 친구들에게도 펜 드로잉을 배워보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김지우(서울 대치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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