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84년 맞이했지만…‘신원 확인’ 기다리는 한·일 희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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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물이 탁해서 매우 고전했습니다.”
3일 오후 1시 30분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 앞바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잠수복 차림의 일본인 잠수사 이사지 요시타카(伊左治佳孝)가 착잡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한때 탄광지역으로 번성했던 우베시에서도 조선인이 가장 많아 ‘조선 탄광’으로도 불렸던 조세이(長生) 탄광. 84년 전인 1942년 2월 3일 새벽, 해저탄광인 이곳에선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총 183명이 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조세이탄광 수몰사고가 발생한지 84년째가 되는 3일 올해 첫 잠수 조사에 나선 일본인 잠수부 이사지 요시타카 씨가 유골 수습에 실패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사지씨 뒤로 보이는 작은 물체가 탄광 환기구로 쓰인 피야(pier)로 그는 이곳을 이용해 잠수 조사를 실시했다. 우베=김현예 특파원
당시 회사는 사고를 축소, 은폐하기에 급급했고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 잊혀졌던 이곳은 1990년대 들어서야 시민단체들의 의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1년 결성된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水非常)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이 30년 넘게 이어진 조사 및 유해 발굴 시도 끝에 지난해 8월 두개골 등 총 4점의 유골을 발굴했다. 지난달 13일 나라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발굴된 유골들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유전자) 감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정상회담 후 처음 이뤄진 이날 잠수 조사는 한·일 양국 취재진 30여명이 몰릴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새기는 모임으로부터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2024년부터 유해 수습에 참여하고 있다는 잠수부 이사지씨는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시작한 잠수 작업에 앞서 “DNA(유전자) 감정에 가장 중요한 것이 치아라고 한다”며 “두개골 수습이 될 수 있도록 해볼 생각”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갱도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그가 들어간 곳은 갱도 입구에서 약 400m 떨어져 있는 두 번째 배기구(pier). 보트를 타고 배기구 안으로 들어가 3시간에 걸쳐 조사에 나섰지만 복병이 생겼다. 좁은 갱도 안은 시계(視界)가 10cm도 안 될 정도로 물이 탁했고, 산소를 공급해주는 장비까지 이상을 일으켰다. 자칫 잘못하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이었다.
지난 2일 찾아간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의 갱도 입구. 1942년 2월 3일 발생한 수몰사고로 조선인 136명을 포함한 183명이 희생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 1월 나라에서 한일정상회담을 갖고 희생자 유해 감정에 합의한 바 있다. 갱구에서 약 400m 떨어진 곳에 우뚝 솟은 환기구(피야)가 보인다. 우베=김현예 특파원
이날 잠수에선 희생자 유골을 수습하지 못했지만 이노우에 요코(井上洋子) 새기는 모임 공동 대표는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양국 정상의 DNA 감정 추진 발표 다음 날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엔 후생노동성과 지진·광산·잠수 등 전문가 5인이 처음으로 현장을 찾았다.
오랜 시간 안전 문제를 들어 지원을 거부했던 일본 정부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우에다 게이시(上田慶司) 새기는 모임 사무국장은 “일·한 정상 합의 뒤에 이어진 큰 움직임”이라며 “잠수 조사 안전성 확보를 설명하고 유골 수습의 현실적 가능성을 전문가들에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새기는 모임은 6일부터 재차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자발적으로 나선 인도네시아·대만·핀란드·태국의 잠수사들이 함께 한다. 이 밖에도 희생자 유골을 수습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조사를 위해 새롭게 갱도 옆측 통로 진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모두 한·일 양국 정부 지원 없이 크라우드 펀딩 등 민간의 힘으로 이뤄진다. 이노우에 대표는 “이 바닷속에는 구출되기를 기다리는 많은 유골이 있다”면서 “이것을 알면서도 방치할 수는 절대로 없기에 많은 분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는 별개로 6일에는 대한불교관음종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위령제가, 7일에는 희생자 추도식이 현지에서 열린다. 이번 추도식에는 10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이탄광은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 해안가에 비쭉 솟아 있는 두개의 환기구(pier)가 있던 곳에 수몰된 희생자 183명이 있다는 사실을 찾아낸 이는 우베시의 역사 교사인 야마구치 다케노부(山口武信)다.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水非常)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에 따르면 향토사학자이기도 했던 야마구치는 1976년 우베시 지방사 연구를 내놨다. 당시 우베시엔 60여개 탄광이 존재했는데, 해저탄광이 많다보니 수몰사고가 잦았다고 한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주택가에 있는 조세이탄광 희생자 추도비. 당시 수몰사고로 목숨을 잃은 한일 양국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의 이노우에 요코 공동대표가 추도비를 들여다보고 있다. 우베=김현예 특파원
1911년부터 1948년까지 조세이탄광을 비롯해 이 지역에서 수몰사고가 일어나 희생된 이들은 528명. 야마구치는 이 가운데서도 1942년 2월 3일 오전 9시30분경 조세이탄광에서 발생한 사고에 주목했다. 183명의 희생자 가운데 136명이 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새기는 모임에 따르면 조세이탄광은 지역 사람들이 일하기를 꺼리는 위험한 곳이었다고 한다. 자주 누수가 반복됐던 터였는데, 당시 야마구치현에 있는 탄광에서 일하는 조선인이 9.3%였던 데 반해 조세이탄광은 조선인이 75% 이상을 차지했다.
수몰사고 84년째를 맞이한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의 흔적. 바다 한가운데에 솟은 두개의 환기구(pier) 아래에 있는 탄광에서 1942년 2월 3일 조선인 136명을 포함한 총 183명이 수몰 사고로 희생당했다. 우베=김현예 특파원
1991년 야마구치를 대표로 새기는 모임이 결성되면서 조세이탄광은 세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순직자명부와 절에 안치된 위패를 토대로 한국 유족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2013년 인근 주택가에 추모비와 함께 추모광장을 설립했다. 유골 반환을 목표로 하는 새기는 모임은 추모비에 ‘강제연행’이란 단어를 기재했다. 이노우에 요코 새기는 모임 공동 대표는 “희생자 중엔 30세 이상이 80명이나 있는데 대부분 강제연행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탄광 갱구로 가는 길은 잡목이 우거져있는 상태지만 합숙소(수용시설)와 사무소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새기는 모임이 추모광장에 전시한 옛 조세이탄광 사진엔 탄차가 이동하는 선로위로 치마 저고리를 입은 여성의 모습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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