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조현 외교장관 "美, 비관세장벽 진척 없으면 관세 올린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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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관세 재인상을 막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비관세 장벽’ 해소를 내걸었다고 9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밝혔다. 이는 같은 날 “3월 대미투자특별법 통과 시 미국이 관세 인상을 유예할 듯하다”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의 관측과는 온도 차가 있다. 당장 국회 입법을 통해 급한 불을 끄더라도 농산물 수입과 디지털 규제 등에서 진전이 없다면 언제든 다시 관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 장관은 이날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미국이 한국과의 비관세 장벽 관련 협상에서 진척이 없을 경우 한국에 대한 관세를 인상해 무역 적자를 개선하려고 한다”며 미국 출장 중이던 지난 4일(현지시각)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 대표(USTR)와의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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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외교부 장관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정치ㆍ외교ㆍ통일ㆍ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조 장관에 따르면 그리어 대표는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의 무역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국 정부에는 투자 요청과 함께 비관세 장벽 개선을 요청했다”며 “그런데 투자는 (정상 간) 합의 이후 진척이 느리고, 비관세 분야는 추가 협의키로 했는데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리어 대표는 이어 “(한국 외) 다른 나라와도 비관세 장벽 협상을 해야 하므로 바쁘고, 한국 시장에 많은 (시간을) 쏟을 수가 없다”며 “만약 (협상) 진척이 안 되면 ‘감정 없이’ 관세를 높여서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 적자를 개선하려는 것을 한국이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조 장관은 전했다. 그리어 대표는 각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적자를 정리한 표를 조 장관에게 보여주면서 "이 문제에 대해 빨리 협의해주길 바란다"고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의 관세 인상 조치는 순전히 입법 지연이라는 게 정부 공식 입장이었는데, 미 측의 불만은 더 광범위하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이와 관련, 김정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3월 국회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되면 미국이 관세 인상을 유예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지난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의 두 차례 화상 회의 결과를 인용하며, 미 측이 우리 국회의 신속한 입법 합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다만 그리어 대표의 입장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투자를 위한 법적 기반 마련과 별개로 비관세 장벽 철폐도 요구 조건에 얹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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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무역 정책을 총괄하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0일(현지시간) 애틀랜틱 카운슬이 주최한 대담에서 연방대법원이 관세 부과를 위법이라고 결정하더라도 “대체 수단을 통해 관세 수입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틀랜틱 카운슬 홈페이지

미국이 제기하는 비관세 장벽은 농축산물과 디지털 규제 두 축으로 요약된다. 미국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해당 분야에서 한국이 높은 무역 장벽을 세워 적자가 발생한다는 게 미국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이다.

실제 합의를 이룬 뒤에도 이와 관련해선 한·미 간 말이 다른 상황이 반복됐다. 지난해 7월 31일 관세 협상 타결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에 “한국은 미국에 무역을 완전히 개방할 것”이라며 농산물을 특정했고,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튿날 쌀을 예로 들었다.

이는 “식량 안보와 농업의 민감성을 감안해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7월 31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는 정부 입장과는 상반되는 이야기였다.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이 최종적으로 협상을 타결한 직후에도 러트닉 장관은 곧바로 엑스(X·옛 트위터)에 “한국은 자기 시장을 100% 완전히 개방하는 데도 동의했다”고 올렸다. 역시 농업 분야 추가 시장 개방은 없다는 정부 발표와는 달랐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양 측 정상 간 합의문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 시트)에 “한국은 식품 및 농산물 교역에 영향을 미치는 비관세 장벽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건 미 측의 이런 불만을 반영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묘한 기류가 여러 차례 포착됐다.

팩트시트 이행을 위한 후속조치로 비관세 분야 협력 이행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말 열릴 예정이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가 무산된 게 대표적이다. 정부는 의제 조율을 이유로 들었는데, 미 측이 한국의 디지털 규제를 문제 삼았다는 미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팩트시트에는 “한국과 미국은 망 사용료, 온라인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 있어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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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관세 인상 방침과 관련한 한미간 통상 현안을 논의하고 돌아온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3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실제 트럼프가 관세 재인상 방침을 밝힌 이튿날인 지난달 27일 그리어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은 농업에 대한 비관세 장벽 일부를 제거하며, 우리 디지털 기업들을 공정하게 대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들은 투자를 위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고, 디지털 서비스에 관한 새로운 법을 도입했으며, 농업에 대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미 농축산물 시장의 99.7%가 미국에 개방돼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미국이 지속적으로 이를 문제 삼는 건 공화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인 농축산업 종사자들을 의식한 압박이라는 해석도 있다. 국내 정치적 상황과 연관돼 있다면 미국 입장에서도 물러설 여지가 적다.

이는 향후에도 미국이 비관세 장벽을 이유로 ‘실력 행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국무부는 지난해 말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대해 이례적으로 “심각한 우려”를 표했고, 제임스 헬러 주한 미 대사대리가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다시 디지털 규제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미 측이 대표적인 ‘디지털 장벽’으로 지목한 망 사용료와 고정밀 지도 반출은 국내외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단기간에 해결이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망 사용료를 두고 ‘이중 과금’이라 주장하는 미국 빅테크와 ‘무임승차 방지’를 내세운 국내 통신사 간 논리가 맞서는 가운데 구글의 ‘1대 5000’ 지도 반출 요구 역시 안보 이슈와 맞물려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팩트시트에는 “한·미는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하여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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