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50세 때 ‘절뚝’ 아이 일으킨 홍순덕씨, 73세엔 골목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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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소속 수화골목문화해설사인 홍순덕(73)씨가 지난 9일 오후 제일교회에서 관광객들에게 역사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어진 일에 감사합니다.”

지난 9일 대구 중구 약령시관광안내소에서 만난 홍순덕(73)씨의 말이다. 홍씨는 관광객들과 제일교회 등 중구의 역사가 담긴 골목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중구 소속 골목수화문화해설사다. 청각장애인이 신청하면 수어해설도 지원한다.

홍씨는 “고교 졸업 후 대구대(당시 한국사회사업대학) 무역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이어가는 동시에 대구대 학교법인 영광학원 산하의 특수학교 여러 곳에서 정식 교사로 근무했다”며 “낮에는 교사로 일하고, 밤에는 대학 수업을 들으며 시간 날 때마다 각종 특수교육 자격증을 취득해 광명학교(시각장애)·보명학교(지적장애) 등에서 교사 생활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홍씨는 특히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화학교에서 6년을 교사로 근무하면서 수어를 제대로 익혔다. 야무진 성격에 성실하게 근무하는 홍씨를 눈여겨본 당시 대구대 총장이 전국 장애인 행사에 홍씨를 데리고 다니면서 수어 동시통역을 맡겼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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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대구 중구의 약령시관광안내소 앞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역사 해설을 듣고 투어 스탬프를 찍기 위해 모여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일과 학업, 두 자녀를 돌보는 일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열심히 살았던 홍씨는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2002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홍씨는 “허탈감을 극복하기 위해 임용을 본 뒤 국공립교사로 전환하기로 결심했다”며 “퇴근 후 저녁에 시간을 내 공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응시자격이 당시 대구시교육청은 40세 이하, 경북도교육청은 45세 이하였기 때문이다. 49세였던 홍씨는 전국 교육청 응시조건을 알아봤고, 52세까지 지원 가능한 강원도에 원서를 넣어 바로 합격했다. 그리고 2003년 3월 50세에 강원 정선군 사북초교에서 특수학급 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홍씨는 학기 초 급식실에서 6학년 남학생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식판을 들고 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물어보니 어릴 때 소아마비로 한 다리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았다고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홍씨는 장애인 단체와 복지회관을 다니며 도움을 청했다.

“특수학급 아이도 아닌데 왜 난리냐”는 시선도 있었지만, 수소문 끝에 당시 한림대 체육과 교수님의 기부금으로 한림대병원에서 아이가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술 후에도 다리 길이가 완벽히 맞춰지지 않자, 홍씨는 학부모들과 교육청 앞에서 바자회를 열고 80만원을 벌어 키 높이 맞춤 구두를 선물했다.

홍씨는 “학생 어머니가 감사한 마음에 내가 토요일 대구 가는 버스를 탑승할 때면 뛰어와서 김밥 두줄을 건넸다”며 “학생도 잘 자라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고 스승의 날마다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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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소속 수화골목문화해설사인 홍순덕(73)씨가 지난 9일 오후 제일교회에서 관광객들에게 역사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이후 원주시 관설초교에서도 다리를 절뚝이던 9살을 발견했다. 물어보니 어렸을 때 아버지가 다리를 부러뜨려 2층 창문에서 던지고 도망갔다고 했다. 수술은 받았지만, 이후 고아원에 입소하면서 재활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홍씨는 “원주기독병원에 찾아가 교수님의 도움으로 치료를 해 정상적으로 걷게 됐다”고 말했다.

홍씨는 강원도에서 근무하며 공부도 놓지 않았다. 2003년 임용과 동시에 대구대 초등특수교육 대학원에 입학해 3년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활용해 수업을 받고 석사과정을 마쳤다. 홍씨는 “강원도에 근무하며 공부했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전환점은 2015년 12여 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한 끝에 찾아왔다. 우연히 중구의 수어해설사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6개월간 교육을 받은 후 2017년 64세에 정식으로 발령받았다. 홍씨는 “골목을 누비면서 역사를 해설하고 장애인을 돕는 데에 뿌듯함을 느낀다”며 “75세 정년까지 즐겁게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평생을 장애인과 함께 한 홍씨는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그날까지”를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왔다고 한다. 홍씨는 “내 인생이 특별하진 않다”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주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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