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섯 아이 키우던 마흔 살 주부 박완서가 소설 쓰게 한 그림[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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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1950년대 중반, 하드보드지에 유채, 27x19.5㎝ 사진 박수근미술관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1970년 박완서(1931~2011)가 첫 소설 『나목』에서 묘사한 그림은 박수근(1914~65)의 ‘나무와 두 여인’. 다섯 아이 키우는 마흔 살 전업주부가 소설을 쓰게 만든 그림이다. 박완서는 『나목』이 '여성동아' 여류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76년 열화당에서 나온 박완서의 『나목』. 표지로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을 썼다. 박수근은 이 소재의 그림을 여러 점 남겼다. 그림은 그 중 가장 큰 작품. 사진 열화당

미8군 초상화부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박수근(왼쪽에서 세 번째). 중앙포토
실제 1951년 당시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에는 미8군 PX가 있었고, 여기서 박수근ㆍ박완서가 함께 일하고 있었다! 박완서는 1965년 박수근 유작전에서 PX 초상화가 아닌 박수근의 그림을 접한다.

나목, 2024년 세계사 출간 표지
화가라 하면 불행한 삶 속에서 자신을 소진하다 비명횡사한 이중섭(1916~56)이 유명하던 시절, 박완서는 박수근의 삶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 붓대 하나로 식구들을 부양하고, 때론 견디기 힘든 수모도 받으며 싸구려 그림을 몇십 장씩 그려 연명해야 했던,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
박완서는 박수근의 전기를 쓰려고 했다. 문방구에서 원고지도 사고 잡지 '신동아' 에서 공모하는 논픽션 마감일에 동그라미도 쳐놓았지만 쓰지 못했다. PX 시절만으로는 정보가 부족했다. 대신 자유로이 상상력을 보태어 쓴 소설 『나목』이 탄생했다.

서울 전농동집 마루에 앉은 만년의 박수근. 백내장으로 한쪽 눈은 의안이다. 화가의 오른쪽에 '나무와 두 여인'이 놓였다. 중앙포토
어쩌면『나목』도 ‘나무와 두 여인’도, 전쟁의 비극 속 서울이 낳은 우리 문화계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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