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어려운데 왜 계속 읽힐까…교과서 밖에서 만난 시인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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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과 연으로 이뤄졌으며,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등을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을 시(詩)라고 하죠. 시는 산문에 비해 함축적이고 은유가 많아 많은 사람이 어렵게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해당 시가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그 맥락을 살펴보면 시상(詩想)에 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죠.
기형도 시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세계 각지에서 사랑받고 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 엄마 /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기형도(1960~1989) 시인의 어린 시절이 반영된 작품이자, 시장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의 애틋한 마음을 그려낸 '엄마 걱정' 중 일부입니다. 청소년에게 교과서에 등장하는 시를 쓴 시인으로 많이 기억되는 기형도는 한국 현대시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며, 그의 작품은 교과서뿐만 아니라 영화·연극 등 여러 예술 장르에 영감을 주고 있어요.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꾸준한 스테디셀러죠. 왜 많은 사람이 기형도 시인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서진하·최수혁학생기자가 경기도 광명시 기형도문학관에서 김미연 학예사, 박용갑 광명시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했어요.

서진하(왼쪽)·최수혁 학생기자가 경기도 광명시 기형도문학관을 찾아 그의 일생과 작품세계를 알아봤다.
먼저 박 해설사와 기형도 시인의 생애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연대표를 살펴봤죠. "기형도 시인은 1960년 연평도에서 태어났는데, 이후 가족과 함께 1964년 광명시(당시에는 경기도 시흥군 서면)로 이사했어요. 이후 기형도 시인은 학창 시절과 20대를 이곳에서 보내면서 많은 시를 썼습니다. 기형도문학관이 2017년 광명시에 건립된 이유죠."
전시실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기형도 시인의 학업과 관련된 여러 유품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반장 임명장, 중학교 2학년 우등상장, 고등학교 입학 당시 신체검사 결과표 등을 보니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쓴 사람으로 멀게만 느껴졌던 기형도 시인 역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죠. 기형도 시인은 중학교 3학년 때 바로 위 누나를 불의의 사고로 잃고 충격을 받은 뒤,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청소년기부터 발현된 시인의 뛰어난 문학적 재능은 중앙고 재학 당시 교내 글짓기 대회 상장을 통해 짐작할 수 있어요.

기형도 시인은 1985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면서 시인으로 정식 등단했다.
신림중학교와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1979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해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기형도 시인은 연세문학회에 가입해 숲길을 걷거나 돌층계에 앉아 책을 읽곤 했는데요. 전시실에서는 그의 대학 학우들과 지인들의 인터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기형도 시인은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고, 상대방이나 남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멋진 구석이 있는 친구였죠.
기형도 시인은 연세대 재학 당시 교내 신문 '연세춘추'의 박영준문학상에 소설 '영하의 바람'이, 교지 '연세'의 백양문학상에 시 '고독'이, '연세춘추'의 윤동주문학상에 시 '식목제'가 당선되는 등 시와 소설에서 빼어난 재능을 보였죠. 하지만 당시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및 비상계엄령 확대 선포, 언론 통폐합 조치로 여러 일간지와 『문학과지성』 등 잡지가 강제 폐간되는 등 암울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문학인이자 기자였던 기형도 시인이 썼던 만년필.
진하 학생기자가 "교과서에 실린 '엄마 걱정'이 청소년에게 가장 친숙한 기형도 시인의 작품일 것 같은데요. 이외에 기형도 시인의 대표작은 무엇이 있나요"라고 질문했어요. 김 학예사가 "'정거장에서의 충고', '질투는 나의 힘', '입 속의 검은 잎' 등 유명한 시들이 많아요. '안개'의 경우 기형도 시인의 등단작이죠. 시인은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1985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가 당선돼 시인으로 등단했어요"라고 설명했어요.
전시실 벽면에 실린 '안개'를 언뜻 살펴보니 흔히 생각하는 짧게 짧게 끊어 쓴 시라기보다는 산문에 가까운 길이의 시였죠. 진하·수혁 학생기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를 읽어봤습니다.
'안개'에 등장하는 새벽안개가 낀 안양천변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전시 공간을 살펴본 서진하 학생기자.
'안개'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려면 시인이 태어나서 자란 1960~70년대가 어떤 시기였는지를 먼저 알아야 해요. 당시는 우리나라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대로, 전국 곳곳에 공장들이 집결된 공단이 들어섰고 물질적으로도 한국전쟁 직후였던 1950년대보다 비교적 풍요로워졌죠. 하지만 그 풍요로움 이면에는 일부 자본가들만 부를 누리고, 다수의 국민은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죠.
기형도 시인이 어린 시절부터 걸어 다니던 안양천 주변에도 공단이 있었는데, 새벽이면 안양천의 짙은 안개가 검은 굴뚝들이 하늘을 향한 공단을 덮곤 했어요. 시인은 자신이 살던 집과 안양천 주변을 '안양천의 안개'라는 환경으로 내면화해 '안개'와 같은 시를 남겼죠. '안개'의 일부 구절을 살펴볼까요.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기형도문학관에서는 시 '안개'를 솜이라는 독특한 재료를 사용해 표현한 현대미술작품도 만날 수 있다.
여공들의 얼굴이 흰 것은 영양가 있는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장시간 노동을 했기 때문이에요. 사실만 기술하자면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운' 게 아니라 '핏기없고 핼쑥한' 거죠. 생계를 잇기 위해 어린 나이에 공장으로 가 일을 해야 하는 아이들의 처지에는 순조롭고 힘차게 잘 자라는 모양을 뜻하는 부사 '무럭무럭'을 더했습니다. 이렇게 역설적인 이미지의 배치는 기형도 시인의 작품에서 자주 드러나는 특징이에요.
"기형도 시인은 1960년에 태어나서 80년대에 20대를 보냈으며, 민주화 운동과 산업화 등 한국 현대사에서 변화가 많은 시기에 활동했어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안개'에도 잘 드러납니다. 산업화로 인한 환경 파괴와 인간성 상실을 주제로 한 작품인데요. 시 구절에 산업화 시기 연기로 자욱한 안양천변이 묘사돼 있죠."(김)
기형도문학관 전시실 코너인 '기형도를 읽다'에서는 기형도 시인의 대표작을 낭독으로도 만날 수 있다.
기형도 시인은 중앙일보 입사 후 처음 배속된 정치부에서 이듬해 문화부로 옮기면서 문단의 선후배와 더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억압하던 독재정권이 집권하며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공권력의 폭력에 의해 짓밟히던 시기였죠. 이러한 상황은 '정거장에서의 충고' '입 속의 검은 잎' 등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시인의 시에는 화자가 암울한 현실 안에서도 희망을 노래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죠. 예를 들어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전시실에서는 기형도 시인의 시가 발표된 여러 문학 잡지들도 있었어요.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던 기형도 시인은 시집 발간을 준비하다가 1989년 3월 7일 새벽 서울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어요. 시인에게는 발표작 외에도 여러 편의 시와 노트 기록이 남아있었는데요. 친구들이 그것을 정리해 출판사로 넘겼고, 해설을 쓰고, 시집 제목을 달았죠. 시인이 세상을 떠나고 두 달 뒤, 1989년 5월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발간됐어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당대 상황을 담은 시까지 기형도 시인의 여러 작품을 살펴본 소중 학생기자단.
장래가 촉망되던 시인의 죽음은 뜨거운 추모 열기로 이어졌습니다. 사후 1주기 추모행사에서는 그를 기리는 추모사와 추모시가 쏟아졌으며, 5주기인 1994년 초에는 시·소설·산문과 문우들의 추억담을 실은 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가 발간됐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물론, 1주기부터 20주기까지 시인을 추모하는 문집을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형도 시인의 작품 세계를 꾸준히 사랑하고 아꼈는지 체감했어요. 『입 속의 검은 잎』은 현재까지도 증쇄를 거듭해 읽히고 있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돼 해외 독자들과도 만나고 있죠. 기형도 시인의 작품 세계를 연구하는 평론·소논문·학위논문도 해마다 꾸준히 발표되고 있습니다.
기형도문학관 외부에는 기형도의 대표 작품이 곳곳에 설치돼 직접 읽으면서 산책할 수 있는 기형도 문화공원이 있다.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는 명소다.
수혁 학생기자가 "기형도 시인은 활동 기간이 다른 시인들에 비해 짧은 편임에도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어요. "'엄마 걱정'이나 '안개'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자신이 겪은 가난이나 당시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작품을 통해 드러냈고, 역설적인 화법으로 희망과 긍정을 노래했어요. 그러한 태도가 현대인에게도 힘을 주는 것 같아요. 또 역설적 이미지를 활용한 특유의 은유법은 문학적으로도 높은 가치가 있죠."(김)
기형도 시인의 생애부터 그가 활동한 시대적 배경까지 살펴보니 그의 작품에 대한 거리감도 줄어들지 않나요. 앞으로 시를 읽을 때는 '이 사람은 어떤 일로 영감을 받아 시상을 떠올린 걸까'라는 궁금증을 먼저 가져보세요. 시를 감상하는 일이 훨씬 재미있어질 테니까요.
동행취재=서진하(경기도 홈스쿨링 중1)·최수혁(서울 위례초 5) 학생기자
기형도문학관 취재 며칠 전, 국어 문제를 풀다가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이라는 시가 나와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기형도 시인은 짧은 삶을 살다 돌아가셨지만 사후에도 시집이 나온 것을 보면 그 시들의 가치가 계속해서 인정받은 것이니 더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문학관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기형도 시인의 시를 나의 글씨로 필사하는 체험,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체험 등 알찬 경험을 할 수 있었죠. 또 기형도 시인이 학교 재학 중 쓴 글씨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정말 명필이었어요. 당시 성적표도 있었는데 공부도 엄청나게 잘해서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죠. 시인의 누나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릴 때 많이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그런 멋있는 시를 쓸 수 있게 만들었다는 설명을 듣고 놀라웠습니다. 시 속의 글에 시인이 살던 시대적 배경이 잘 전달되어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서진하(경기도 홈스쿨링 중1) 학생기자
이번 취재로 기형도 시인이 쓴 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기형도 시인은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여러 가지 상장을 받을 정도로 글쓰기 실력을 타고났다고 해요. 시인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의 시를 모아 만들었다는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시실에서 기형도 시인의 시들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안개'라는 시가 기억에 남아요. 소년중앙 학생기자로서 기형도 시인이 중앙일보 기자로 일한 적 있다는 것도 반가웠어요. 시에 관심이 있다면 기형도문학관에 가보길 추천합니다.
최수혁(서울 위례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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